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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15> 라마 야드

화이트보스 2010. 3. 22. 19:56

[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15> 라마 야드

프랑스를 매료시킨 흑진주… 그녀는 '프랑스의 오바마'가 될수 있을까
세네갈 출신 아홉살때 프랑스 이주
2007년 사르코지 캠프 대변인
대선후에 인권 국무장관으로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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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흑인, 여성이라는 3중의 소수자의 굴레를 벗어나 31세에 장관으로 발탁된 후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으로 떠오른 라마 야드.

1976년 12월13일 세네갈 다카르에서 출생. 부모는 교사. 아홉 살 때 프랑스로 이주. 파리정치대학(시앙스 포) 졸업. 2007년 5월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인권담당 국무장관.

라마 야드라는 흑인 여자의 간략한 이력이다. 국제정치에 관심이 적은 독자들에겐 낯설 법한 이름이다. 사실 두 해 전까지 여느 프랑스인들의 귀에도 이 여자 이름은 설었다.

그러나 현재, 라마 야드는 프랑스 각료 가운데 여론 지지율이 가장 높은 인물이다. 지난 3월 말, 진보 성향의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라마 야드의 경우 -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자의 수수께끼들'이라는 표지 제목을 내걸고 라마 야드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본문 기사에 따르면 이 달 라마 야드의 지지율은 71%에 이르렀다. 반면 그녀를 발탁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지지율은 38%에 머물렀다.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가 "프랑스인들이 인종주의자라고 누가 말했던가"라며 호들갑을 떨었을 정도다.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대학 졸업 뒤 여기저기서 자그마한 공직들을 맡긴 했지만, 라마 야드라는 이름이 프랑스인들에게 각인된 것은 그녀가 2007년 대통령 선거 때 사르코지 캠프의 대변인을 맡은 뒤이기 때문이다.

보스의 지지율은 떨어지는데, '부하'의 인기는 계속 치솟는다. 기시감(旣示感ㆍ데자뷰)이 어른거린다. 시라크 정권 당시 시라크 대통령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관계를 다시 보는 듯하다.

이런 유비(類比)가 그럴듯한 것은 사르코지가 시라크에게 대듦으로써 대중의 인기를 얻었듯, 라마 야드의 인기에도 그녀의 정치적 독립성향이 어느 정도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국무회의에서 사르코지에게 대드는 유일한 국무위원이다. 그 자리에서 가끔은 조는 유일한 국무위원이기도 하다.

첫 눈에 라마 야드에게 반해 그녀의 후원자가 된 사르코지는 지난해 말 이래 자신의 '검은 요정'과 최악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올 여름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하라는 사르코지의 제안을 라마 야드가 텔레비전 포럼에서 공개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유럽의회에 진출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며 겸양의 언사를 내비쳤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 정치인들에게 유럽의회로 가는 것은 일종의 '귀양'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또 자신이 국제문제보다는 국내문제에 더 관심이 많다는 이유도 내놨는데, 이것 또한 설득력이 크지 않았다. 그녀의 현직인 인권담당 국무장관이라는 자리는 외국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게 일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교부장관 밑에서 일하는 인권담당 외교부 부(副)장관이다.

사르코지가 라마 야드를 유럽의회로 보내려 했던 이유에 대해 사람들의 관측은 엇갈린다. 그녀의 인기가 자신을 위협하자 스트라스부르(유럽의회 소재지)로 쫓아내려 했다는 관측도 있고, 선거로 뽑힌 정치인만이 진짜 정치인이라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그녀를 진짜 정치인으로 키워주겠다는 호의에서 그런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상원을 비롯해 입법부에서 행정관으로 일해 본 경험은 있지만, 라마 야드는 지금까지 선거직을 수행해본 적이 없다.

어느 것이 진짜 이유든, 대부분의 정치 관측통들은 라마 야드가 사르코지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정치적 패착이라고 보고 있다. 벌써 다음 개각 때 외교부에서 인권담당 부장관 자리가 없어질 거라는 풍문도 나돌고 있다.

그만큼 라마 야드에 대한 사르코지의 분노가 크다는 것이다. 외교부 안에 인권담당 부장관 자리를 만들자고 대통령에게 처음 제안한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교부장관조차 "라마 야드가 일을 훌륭히 해내곤 있지만, (외교부 안에 외국 인권을 다루는 부장관을 두자는) 내 제안은 잘못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사르코지가 라마 야드를 쉽게 내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관측자들은 드물다. 그 자신이 시라크 밑에서 경험했듯, 대통령으로부터 경계를 받는 여당 정치인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높은 인기를 유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불화를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사르코지가 라마 야드를 내친다면, 상처를 입는 것은 라마 야드가 아니라 사르코지일 가능성이 더 크다. 게다가 정치는 생물이다. 상대적 약자인 라마 야드가 최근 대통령과의 불화를 씻어내려고 애쓰고 있다니, 두 사람이 예전처럼 다시 굳건한 동지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라마 야드는 인권담당 국무장관으로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를 적절히 뒤섞어 왔다. 2007년 10월 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가 프랑스를 공식 방문했을 때, 그녀는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 대령이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이 있다.

프랑스는 다른 나라의 어떤 최고지도자가, 테러리스트이든 아니든, 자기 발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신바닥 털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라마 야드는 카다피의 프랑스 방문을 반대했었다. 이밖에도 그녀는 여러 자리에서 여러 나라의 인권 상황에 대해 공적 발언을 수다스러울 정도로 늘어놓았다. 그 점에서 그녀는 이상주의자다.

그러나 외국 인권에 대한 라마 야드의 결기가 늘 똑같은 기준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러시아중국의 인권에 대해 얘기할 때 어조가 낮아진다. 러시아가 가스를 팔지 않으면 프랑스의 겨울은 북유럽처럼 추울 것이고, 중국이 프랑스에 토라지면 프랑스의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녀는 티베트 문제에 대해서도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라는 것이 프랑스 정부의 공식 입장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문화적 독립성과 자치영역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 정도로 말을 얼버무린다.

그 점에서 그녀는 현실주의자다. 야박하게 얘기하면, 그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결합은 가장 나쁜 의미의 실용주의, 기회주의인지도 모른다.

라마 야드는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자지만, 정작 정부 내에는 적이 많다. 그녀를 질투하는 동료들은 그녀의 '일'이 그녀 '인기'의 비밀이라고 투덜댄다.

그녀가 괴롭히는 것은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외국 정부들이나 사르코지 대통령이지, 프랑스 시민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나라를 개혁하고 경영하려면 시민들과 맞부딪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라마 야드는 그 미묘하고 귀찮은 일에서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그녀 인기의 근거를 정치적 독립성이나 일의 성격 외에 미모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철학자 파스칼 브뤼크네르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어느 사회에서나 미모는 귀중한 신체 자산이지만, 프랑스인들은 특히 정치인들의 외모를 중시한다는 것이 이 철학자의 견해다.

라마 야드의 사적 이력에는 흥미로운 점이 많다. 그녀는 무슬림(이슬람교도)이면서도 가톨릭 중등학교를 다녔고, 좌파에서 출발해 우파에 안착했다. 남편은 유대인이자 사회당원이다. 대학시절과 정치 입문 시절에 라마 야드에겐 사회주의자나 환경주의자의 면모가 있었다. 공산당 활동가들에 대한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을 늘어놓기도 한다.

사적 친구들도 대개 좌파다. 그렇다고 그녀를 변절자라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은 것 같다. 그녀의 사회주의나 환경주의가 근본적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사르코지의 개혁적 보수주의에서 그녀가 '다양성'이라는 '좌파적' 가치를 발견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르코지가 이민자의 자식이라는 점이 그녀 맘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열정적인 아프리카 옹호자이자 애국적인 프랑스인이라는 그녀의 정체성에 이미 다양성이 내재해 있다. 그녀의 몸은 우파에 있지만, 그녀의 마음은 적당히 사회주의적이고 적당히 환경주의적이다. 다만 사회주의나 환경주의를 미래의 전망으로 여기지 않을 뿐이다.

31세에 장관이 되는 것은 독일이나 북유럽에선 흔한 일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더구나 당사자가 열 살이 다 돼서 이민 온 흑인이고 여자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불가능한 일이 라마 야드라는 여자에게 일어났다.

소수자적 성격에서 그녀는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을 합쳐놓은 격이다. 사실은 그들보다 사정이 훨씬 더 나쁘다. 라마 야드는 날 때부터 미국인이었던 오바마와 달리 귀화 프랑스인이고, 남편의 후광을 이용할 수 있었던 클린턴과 달리 유대인 사회당원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라마 야드에겐 분명히 정치적 야심이 있을 것이다.

그녀가 프랑스의 버락 오바마나 프랑스의 힐러리 클린턴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미리 단정하지는 말자. 어디 한 번 젊디젊은 그녀를 위해, 그녀처럼, 낙관주의자가 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