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재정위기와 미국의 `상대적` 경기회복이 맞물리면서 미국 달러화가 오랜만에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 26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는 달러당 92엔대 후반까지 오르며 엔화 대비 2개월 반 만에 가장 높은 시세를 형성했다.
25일(현지시간) 뉴욕외환시장에서 전날 유로당 1.3338달러에서 한때 1.3269달러까지 하락하면서 달러화 가치가 올랐다. 달러화가 이처럼 유로당 1.33달러 밑으로 하락한 것은 지난해 5월 1.3269달러를 기록한 이후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날 달러 강세는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집행위원장이 "그리스 재정적자 문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개입하지 않고 유럽 단독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촉발됐다. 달러화 가치는 유럽발 재정위기가 불거진 최근 2개월간 유로화 대비 6% 이상 오르는 강세를 보였다.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달러캐리 트레이드가 청산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달러캐리 트레이드가 급격하게 청산될 경우 신흥시장 증시와 원자재 시장의 조정 장세를 초래하는 등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가능성 역시 커지고 있다.
◆ 버냉키, 위기대응 정책 점진적 회수 시사
=유로존 위기에 이어 최근에는 미국의 경기지표 회복 추세도 달러화 강세의 모멘텀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 노동부는 25일(현지시간)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44만2000건으로 집계돼 직전 주에 비해 1만4000건 감소했다고 밝혔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이날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특정 시점이 되면 모기지담보증권(MBS)을 점진적으로 매각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 FRB가 MBS 매각에 나서는 것은 금융위기에 따른 위기 대응 정책을 회수하는 의미로 미국 경제가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났음을 시사한다.
애덤 보이튼 도이체방크 통화애널리스트는 "미국 경제가 (유럽이나 일본 등)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경제지표가 좋은 가운데 그리스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 때문에 미 달러화는 향후 수개월 동안 유로화와 엔화에 대해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 더 가파른 엔화 약세 관측도
=엔ㆍ달러 환율 동향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달러화 강세에 일단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일본의 경우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해 시중은행에 대한 고정금리 대출 규모를 20조엔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추가적인 양적완화 조치를 실시한 가운데 미국 국채금리가 꾸준하게 상승하면서 달러 대비 엔화값이 지난 1월 초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92엔대 후반까지 밀려났다.
특히 3월 말 회계연도 결산 시기를 앞두고 일본 대기업들의 본국 송금이 늘고 있는 가운데서도 엔화 약세가 지속되자 4월 초 회계연도 결산이 종료되면 더 가파른 엔화 약세가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의 등급 하락 경고 등 일본의 재정위기 촉발 가능성도 엔화 강세 반전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다케나카 고이치 미즈호은행 애널리스트는 "유럽발 신용위기의 향배와 미국의 경기회복 속도 등을 현재 시점에서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며 "엔ㆍ달러 환율은 3월 말 회계결산기까지 달러당 92~93엔대에서 공방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뉴욕 = 김명수 특파원 / 도쿄 = 채수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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