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연 권태진 본부장 “’고난의 행군’ 때와 상황 비슷”
북한이 중국에서 부족한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5,6월께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에 비견할 정도로 심각한 식량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북한 식량문제 전문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권태진 글로벌협력연구본부장은 3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작년 북한의 작황 등을 고려할 때 올해 100만t 내외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권 본부장에 따르면 북한의 2009년 곡물 생산량(감자 포함)은 정곡 기준 380만∼400만t으로 전년보다 9% 감소했다. 올해 북한의 식량 수요(약 523만t)와 비교하면 최대 143만t이 부족한데 상업적 식량 수입을 감안해도 대략 100만t 정도가 부족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권 본부장은 “사실 북한의 올해 식량 수급은 중국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여러가지 설이 나돌고 있지만 소문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대규모 식량 지원 약속을 받아내지 않는 한 북한의 상당수 취약계층은 이번 식량위기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북한 식량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수백만명이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진 ’고난의 행군’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 내에 시장이 작동하고 있고, 식량이 부족한 정도가 조금 덜하다는 정도”라면서 “하지만 중국도 올해 식량 수급이 불안해 쉽게 대규모 식량 지원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북한의 식량 사정은 2007년부터 3년 연속 악화된 상태여서 올해 초 아사자가 나왔다는 얘기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면서 “이대로 가면 ‘고난의 행군’ 정도는 아니더라도 정말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최근 북한 내 쌀값 동향과 관련, “현재 북한의 쌀값이 이달 초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북한 당국이 쌀 배급을 늘리고, 농민들도 영농자금 확보를 위해 쌀을 시장에 내놓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하지만 근본적으로 쌀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4월말부터는 급격한 반등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북 소식지들에 따르면 이달 초까지만 해도 북한 쌀값은 ㎏당 1천200∼1천300원이었으나 지난 23일 현재 600∼700원으로 떨어졌다.
그는 또 “일시적이나마 북한의 쌀값이 이처럼 안정된 것은 북한 당국이 화폐개혁 이후 강력히 통제했던 시장을 다시 허용하고, 비축미를 풀면서까지 배급량을 늘렸기 때문”이라면서 “이 자체가 북한 당국이 식량 문제에 그만큼 다급하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식량 사정이 다급해지면서 중국에 의존하려는 관성도 커지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을 견제하는 차원에서라도 쌀은 일단 제외하고 옥수수나 밀가루를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차제에 북한에 지원된 식량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충실히 모니터하는 시스템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아울러 민간단체들의 못자리용 비닐, 비료, 종자 등 지원도 전향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남북관계 개선에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