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대우
뤼순 감옥 뒷길로 들어서 안내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을 때 숨이 탁 멎는 듯했다. 군사보호구역이라 언제 중국 공안(公安)이 쫓아올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만은 아니었다. 야산(野山)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누군가 땅을 완전히 파헤쳐 놓았고, 한쪽에서는 계속 포클레인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2008년 3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2년 앞두고 순국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중국 뤼순 감옥 일대를 찾았다. 가장 중요한 장소는 남북이 유력한 안 의사 유해 매장지로 추정하고 발굴을 시도하기로 한 장소였다. 그런데 발굴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예정지를 마구 파헤치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당시 본지 보도를 계기로 정부는 중국 당국에 공사 중지를 강력히 요청하고 서둘러 발굴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발굴단이 최우선 발굴지로 꼽은 곳의 흙은 이미 산 아래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3~12m까지 땅을 파 기반암이 드러난 곳도 많았다. 발굴단은 흙의 원래 위치를 추정하는 방식으로 조사했지만 끝내 유해 흔적도 찾지 못했다. 중국이 훼손하기 전에 작업에 착수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기자는 지난해 7월 대학생 탐방단과 함께 다시 뤼순 감옥을 찾을 기회를 가졌다. 뤼순 감옥에서 바라본 발굴지에는 이미 고층 아파트가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1차 발굴이 끝나자 중국 건설업자가 아파트 공사를 서두른 것이다. 현장을 찾아가 보니 2개 동은 이미 20층 이상, 나머지 4개 동도 3~5층 높이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층 올리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더 이상 현지에서 발굴작업을 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지금은 아파트 공사를 거의 마쳐 입주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올해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유해발굴을 위해 보훈처 등 관련 부처와 학계·전문가 등으로 합동유해발굴추진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26일 "늦었지만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모셔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 생각엔 뤼순 감옥 부근에서는 사실상 더 이상 찾을 곳이 마땅치 않은 듯하다. 일제는 안 의사 사형 보고서에서 '오후 1시 감옥서의 묘지에 매장했다'고 기록해 안 의사가 감옥 인근 어딘가에 묻힌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정부가 가장 유력하다고 본 곳은 이미 20층 아파트가 올라가 있다.
일부는 '참배했다'는 증언 등을 근거로 감옥에서 500m 정도 떨어진 '뤼순 감옥 공동묘지' 터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유해발굴단은 이미 그곳은 감옥에서 너무 멀고 안 의사 순국 이후인 1920년대 조성한 묘지라는 점을 들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현장을 가보면 100년 전 현장이 그대로 있지 않고 최근까지 지형 변화가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이제 새로운 자료가 나와야만 발굴을 시도할 수 있다", "기록문화가 철저한 일본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양 보훈처장은 "그간 뤼순 감옥 주변에 대한 조사에 중점을 두었지만 이제부터는 일본이 소장한 자료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의사는 순국하면서 "국권이 회복되거든 나를 고국 땅에 묻어 달라"고 했다. 유해 찾기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순국 100주년을 보내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영웅을 넘어 영원히 기억될 존재 '안중근'
100년 전 안중근 의사를 실제로 만난다면…
[플래시뉴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