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신문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아남는다”
[오늘 ‘신문의 날’ 특별 인터뷰]
WP 편집국장 23년간 지낸 ‘영원한 신문인’ 벤 브래들리
[중앙일보]2010.04.07 00:46 입력 / 2010.04.07 01:13 수정
그는 후배 기자들이 써 온 기사를 놓고 검사처럼 따지고 들었다. 어떤 질문에 어떤 소식통이 어떻게 말했는지 있는 그대로 말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그는 결국 “가자”고 말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쫓아낸 워싱턴포스트(WP)의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그 뒤 살아 있는 권력의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향해 줄기차게 밀어부쳤다. 그가 바로 23년간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WP의 위상을 크게 높인 벤 브래들리(89·사진)다. 7일 신문의 날을 맞아 ‘영원한 신문인’ 브래들리 WP 부사장에게 신문의 역할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3일 워싱턴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그는 고령에도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이야기로 시작하자. 올 초 닉슨 대통령의 특별고문을 지낸 찰스 콜슨의 비망록이 공개됐다. 워터게이트 보도를 막기 위해 WP에게 재정적 압박을 가하고 방송국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협박하며, 벤 브래들리 편집국장의 해임을 요구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운이 좋았다. 결국 그들이 나를 자르는 데 실패했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나보고 닉슨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닉슨은 그릇된 행동과 거듭된 거짓말 때문에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닉슨에 대해서 가슴 속에 연민이 있긴 하지만 그는 편치 않은 사람이었다.”
-워터게이트 보도 당시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젊은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기사 취재와 보도에 매우 공격적이었다. 나는 그런 자세를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도청과 미행을 피해 새벽에 몰래 만난 우드워드가 ‘모두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딥 스로트(당시 기사를 제보했던 비공개 핵심 정보원의 암호명으로 성인영화의 제목에서 따왔다)의 말을 전했을 땐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끝까지 완강하게 한 방향을 고집하며 지휘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당시 백악관은 물론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WP 보도에 비판적인 여론과 압력이 적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한결같은 입장을 유지했나.
“한치도 숨김없는 진실, 그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취재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확인, 또 확인할수록 우리가 맞았고 그들(닉슨 행정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게임에 무승부는 없다.”
-당신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 워터게이트 보도인가.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좀 그렇긴 하지만(웃음) 역시 그렇다.”
-요즘 신문의 위기를 거론하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가 출현하면서 신문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신문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 손을 높이 들어 가볍게 쥔 주먹을 흔들며) 물론이다. 좋은 신문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아남는다. (당일 아침 WP를 펼쳐 보이며) 오늘도 백악관 관리들, 정부 중요 부처의 공무원들이 모두 WP를 읽을 것이다. WP가 보여주는 깊이있는 분석과 주장, 오늘의 미국 사회를 보여주는 다양한 스토리들이 정부의 정책 결정에 중요한 기초가 된다. 그러니 신문 제작은 거대한 책임이 따르는 행위다. 현재 미국에는 8~10개 정도의 좋은 신문이 있어 대도시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신이 말하는 좋은 신문이란 뭔가.
“정말로 좋은 신문은 정직한 신문, 공정한 신문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새롭고 정확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기자 모두가 시간과 에너지를 총동원해 헌신하는 신문이다. 91년 편집국을 떠난 뒤엔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 그전까진 일주일 내내 일했다. 제작하기 훨씬 힘든 일요판 신문을 만드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정직하고, 공정하고, 헌신하는 신문 이 세가지가 좋은 신문의 필수요건이다.”
-특히 한국에선 공정한 신문이란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같은 평가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첫째, 공정한 신문을 만들려면 절대로 편견에 빠져서는 안된다. 기자가 가지고 있는 편견, 신문사 조직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행히 미국의 언론인들은 어떤 문제에서도 편견에 그리 많이 빠져 있지 않다. 둘째, 그 바탕 위에서 철저하게 확인하고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대로 알면 알수록 편견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직업적 회의주의’ 랄까, 그 누구도 쉽게 믿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오늘 나를 인터뷰하는 당신도 나에 대해 선입견이 있을 것이다. 브래들리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고 등등... 그런 걸 다 버리지 않고서는 나를 제대로 분석할 수가 없게 된다. 명심하라. 기자는 아무도 그냥 믿어서는 안된다.”
-고(故) 캐서린 그레이엄 전 사주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책상 옆 벽에 붙은 그레이엄의 사진을 가리키며) 그는 좋은 동료이자 팀메이트였다. 그는 다른 신문사 사주들이 비즈니스에만 관심을 기울일 때 일류신문 만들기에 온 정성을 다했다. 하루에도 3~4번씩 편집국에 들러 좋은 기사가 없는지를 확인했을 정도였다. 우리는 의기투합했고, 좋은 신문을 만들어 냈다.”
-역사에 어떤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은가.
“미국 사회가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 세계가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언론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당신같은 워싱턴 특파원들이 한국민들에게 미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에 기자가 아니었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은가.
“오, 정말 대답하기 힘들다. 나는 지금도 언론인이 가장 위대한 직업중의 하나라고 믿는 사람이다. 진실을 발견하고 이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 치열하게 사는 삶, 그 매력에서 나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즘 근황을 들려달라.
“편집국을 떠났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도 없어졌지만, 오늘처럼 매일 워싱턴포스트에 출근한다. 신문을 읽고, 사내외에서 강연도 한다. 점심 때가 되면 회사 내 카페테리아에 가서 먼저 앉아 있는다. 그러면 젊은 기자들이 나에게 찾아온다. 그들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그들의 고충, 세상의 변화, 그리고 여전히 좋은 신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시간이 즐겁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벤 브래들리=미국 보스턴 출신으로 하버드대를 졸업했다. 해군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1946년 ‘뉴햄프셔 선데이 뉴스’ 기자로 언론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파리 주재 미국대사관 공보관, ‘뉴스위크’ 파리 특파원과 워싱턴 지국장을 거쳐 68년부터 91년까지 워싱턴 포스트(WP) 편집국장을 지냈다. 철저한 기자정신을 바탕으로 한 탐사보도로 WP가 일류신문의 위상을 얻는 데 크게 공헌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의 국장 재임기간동안 WP는 언론인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상’을 18회나 수상했다.
◆워터게이트 사건=1972년 6월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있던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던 괴한들이 잡히면서 불거졌다. 괴한들은 공화당 소속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위원회와 관련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닉슨과 주변 사람들의 권력남용, 탈세 등 다양한 비리가 밝혀졌다. 닉슨은 그해 11월의 재선에서 승리했고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74년 8월 결정적인 증거인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두 손을 들었다.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탄액안을 가결했고, 그 나흘 뒤인 74년 8월9일 닉슨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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