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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조폭, 연변흑사파·베트남 하노이파 '동생' 될 날 온다?

화이트보스 2010. 4. 18. 20:48

국내조폭, 연변흑사파·베트남 하노이파 '동생' 될 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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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4.17 07:46 / 수정 : 2010.04.18 01:03

외국인 조폭이 몰려온다

대검찰청에 설치된 외국인조직범죄 합동수사본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외국인 범죄자 1354명을 적발해 이 중 157명을 구속하고 92명을 강제 출국시키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조선닷컴 4월 7일

지난해 8월 8일 새벽 서울 남대문로 5가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의 '세븐럭' 카지노 앞. 거한(巨漢) 여럿이 호텔에서 나오는 화교(華僑) 마모씨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했다. 마씨는 그들이 회칼을 꺼내들자 호텔 안으로 도망갔다.

거한들은 회전문 안 로비까지 마씨를 쫓아갔다. 그들은 조선족 조폭들이었다. 전치 2주 상처를 입은 마씨 역시 대만 출신 조폭 두목이었다. 조선족 조폭이 노린 것은 마씨가 가지고 있는 기프트카드 유통권이었다.

기프트카드는 카지노에서 VIP회원들에게 사은품으로 주는 것이다. 이 사건은 서울 남부와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해온 조선족 조폭이 서울 도심 진출과 함께 카지노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최근 서울 서초동 노래방 앞에서 접대부 일을 마치고 나온 베트남 여성(29)이 남자 3명에게 둘러싸였다. 괴한들은 여성의 머리채를 휘어잡더니 강제로 승용차에 태웠다. 괴한들은 이 여성을 부천의 가정집에 사흘간 감금했다.

이들은 "돈을 주지 않으면 성매매 업소에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해 베트남에 있는 여성의 가족에게 5000달러를 뜯어내고서야 여성을 풀어줬다. 그들은 베트남에 기반을 둔 '하노이파' 조직원들이고 국내에도 조직이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 110만명 시대,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조폭 규모는 어떻게 될까. 수사당국은 중국, 베트남,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러시아 등 14개국 65개파 조직 46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소규모 '지역 건달'이나 '불량배'가 포함돼 있지 않다. 이 숫자는 국내 조폭 200여개 5500여명과 비슷하다. 외국인 조폭은 서울 가리봉·대림·구로동과 경기도 안산·시흥·수원 같은 외국인 밀집지역에 어김없이 뿌리내리고 있다.

외국인 주먹들이 '조폭화'된 것은 2000년 전후다. 처음엔 불법체류자를 상대로 돈을 빼앗거나 환치기, 불법 도박장을 운영했다. 지금은 유흥업소 관리, 인신매매, 마약밀매, 보이스피싱, 청부폭력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휴일 외국인 수만명이 집결하는 안산 원곡동엔 유흥업소를 돌며 보호비를 받는 조직이 있다"고 했다. 외국인 조폭의 절반은 조선족을 주축으로 한 중국계다. 외국인 조폭 4600명 가운데 2300명이나 된다.

중국계는 본토 조폭인 '흑사회(黑社會)' 멤버들이 국내에 들어와 여러 파를 만들면서 분화했다. 흑룡강파·연변흑사파·뱀파·호박파 등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현재 가장 잘나가는 조폭이 '연변흑사파'다.

'연변흑사파'는 2001년 흑사회 행동대장 출신 양모(41)씨가 부산항을 통해 밀입국한 뒤 2005년 조선족 31명을 규합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들이 서울 가리봉 차이나타운을 장악하는 과정을 가리켜 '가리봉 잔혹사'라고 한다.

이들은 등에 칼, 다리에 도끼를 차고 다니면서 차이나타운 유흥업소와 도박장에서 돈을 뜯어냈다. '피를 뒤집어쓸 때까지' 싸우는 잔인함에 타 조직이 떨 정도였다. 한때 가리봉동 '맹주'였던 '흑룡강파'마저 맥없이 무너졌다.

2006년 12월 복수에 나선 흑룡강파 조직원이 가리봉동 호프집에서 연변흑사파 두목의 배를 칼로 찔렀다. 8일 만에 반격에 나선 연변흑사파는 흑룡강파 행동대장을 납치해 칼로 찌르고 발목을 부러뜨려 버렸다.

이를 고비로 서울 서남부와 경기 안산, 경남 창원, 인천 등 전국 차이나타운이 연변흑사파의 수중에 들어갔다. 연변흑사파는 2007년 두목 양씨 등 30여명이 한꺼번에 검거돼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내 조직이 재건됐고 현재 외국인 조폭 사회의 '넘버원'으로 군림하고 있다. 연변흑사파는 최근 서울 강남 룸살롱이나 카지노, 오락실 등에 조직원을 진출시키는 등 강남 유흥가 장악까지 시도하고 있다.

연변흑사파는 팔·다리 절단 250만~500만원, 살인 1000만원 식의 청부 폭력까지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변흑사파의 라이벌로 급부상하는 조직은 베트남 '하노이파'다. 베트남 북부 하노이 출신이 주축이다.

밀입국한 현지 조직원이 불법체류자, 근로자를 규합해 세를 불리고 있는데 서울 구로동과 포천·안산·안양·김해·마산 등 공단 밀집지역에서 활동한다. 고리사채·납치폭행·인질강도·성매매·마약밀매 등 손 안 대는 범죄가 없다.

최근엔 한국에 온 젊은 베트남 신부들을 꾀어 유흥가에 넘기거나 베트남 여성들을 위장결혼 수법으로 불법 입국시키는 데도 간여하고 있다. 일부 베트남 남자들은 외국인 사회에서 '하노이파'를 사칭하고 다닌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폭행 사건으로 들어온 베트남인들은 자신을 '하노이파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조사해보면 대부분 '뒷골목 건달'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 하노이파 위세가 대단해졌다"고 했다.

베트남 계열 조폭엔 '호찌민파'와 '하이세우파' 등이 있지만 하노이파에 비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한국 조폭과 가장 닮은 조직은 방글라데시 '군다'다. 군다는 방글라데시어로 '폭력배' '깡패'를 의미한다.

이들은 합숙생활, 90도 인사 등 국내 조폭 생활방식과 행동을 모방한 '한국형 조폭'이다. 방글라데시인 거주지마다 '안산 군다' '서울 군다'라는 조직이 있다. 불법 체류자를 상대로 돈을 뜯어내고 도박장을 운영해 먹고 산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외국인 조폭보다 세는 약하지만 국내 적응력이 뛰어나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문신이 클수록 고위 간부로 알려진 필리핀 '가디언스파'도 조직원이 200명에 이를 정도로 부쩍 몸집을 키우고 있다.

위장결혼 수법으로 국내 업소에 태국 여성을 공급하고 있는 태국 폭력조직 '싸만코차호타이파'와 태국인 업소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는 '딸라타이파'도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다. 반면 일본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는 이들과 달리 호텔 사업이나 벤처기업 인수,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다.

외국인 조폭들은 최근 국내 조폭들과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어에 능숙한 연변흑사파는 오래전부터 활동 무대가 겹치는 영등포·구로·대림동 일대 국내 '토종' 조폭과 연합전선을 펴고 있다고 한다.

조선족 종업원이 많은 오락실·유흥업소에서 사고가 터지면 국내 조폭과 연변흑사파가 긴밀히 협조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사고 친 조직원들을 서로 숨겨주는 식의 공생(共生)관계도 맺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은 외국 조폭이 토종 조폭을 '형님'으로 모시지만 머지않아 형님·동생이 뒤집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외국인 조폭이 국내 기반을 넓혀가고 있지만 이들을 퇴치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고 한다.

중국·베트남·필리핀 등 국가들은 주민등록 시스템이 취약하다. 신분 위장이 그만큼 쉽다는 것이다. 조폭이 들어오는지 근로자가 들어오는지 입국 단계에서 걸러내기가 어렵다. 외국인들이 지문 날인을 안 하는 것도 문제다.

여차하면 본국으로 도망가 수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대검 관계자는 "범죄자를 가려내 추방을 해도 이름을 바꾸거나 위조여권을 이용해 재입국하는 외국인이 연간 2000명을 넘는다"고 했다.

외국인 지문 확인은 2012년 7월 시행을 목표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 10월 27일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외국인조직범죄 합수부가 최근 6개월간 검거한 외국인 조폭은 19명이었다.

범죄자 1354명을 적발했지만 단독 범행이 많았고 마약사범이나 문서위조 사범이 대부분이었다. 합수부는 "외국인 조폭이 지금까진 자국민만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데다 잠복기에 들어가 쉽게 포착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외국인 폭력조직을 방치했다간 국내 조폭과 대등한 수준으로 커버릴 수 있다"면서 "장기간 기획수사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외국인 근로자뿐 아니라 내국인도 '외국산 주먹'에 떠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