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02. 암 잡을 수 있다
대전과학고, 서울대, 그리고 삼성 입사에 이르기까지 줄곧 엘리트 코스만 밟으며 승승장구하던 스물일곱 살 여성에게 갑자기 암이 찾아왔다. 누구나 이런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면 좌절과 분노를 갖게 될 터인데, 조수진(31) 씨는 ‘오방떡소녀’(얼굴이 동글동글하다는 의미로 만든 별명)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상에서 카툰을 그리며 자신과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오방떡소녀 조수진이 그리는 아름다운 세상 스케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암
“암에 걸리기 전까지 참 바쁘게 살았어요. 공부와 일 그리고 대인관계도 챙겨야 했어요.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하고 최고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요. 일을 악착같이 해냈고, 다른 사람의 장점까지 모두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했죠.”
조수진 씨는 지난 2005년 림프샘(임파선)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7세였다. 암 판정을 받기 전까지 그녀는 줄곧 좋은 학교를 다녔고, 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인 채 뭐든지 원하면 뜻대로 이뤄진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대학에서도 A학점 이하는 받아본 적이 없는 그녀는 결점 없는 완벽한 인생을 꿈꾸며 당차게 살아왔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당당히 입사했다. 하지만 그녀의 거침없는 쾌속질주는 거기까지였다.
회사에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 된 어느 날부터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침이 심해서 기관지염을 의심했고, 걷기 힘들 정도로 무릎이 아파 류머티즘 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임파선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금 의아하게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조금은 반가움을 느꼈어요. 그동안 ‘아픈 것 같지 않다’면서 수군거리고 병원 갈 때마다 ‘꾀병 아니냐’고 구박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거든요. 그동안 아프다는 말조차 제대로 못했기에 오히려 편하게 아플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웃으면서 암에 걸렸다고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암이래요’ 하려는 순간, ‘암’자도 미처 다 발음하기 전에 눈물을 쏟아냈어요.”
아직은 충분히 젊은 나이, 처음 병원을 찾아갔을 때는 착실하게 치료를 받으면 금방 나을 줄 알았다. 그러나 방사선치료까지 마친 2006년, 폐렴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암이 재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또 다시 지독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1주일 만에 몸무게가 7㎏이나 빠졌어요. 많은 약과 다양한 주사를 맞으며 무균실에 시체처럼 누워 있다 보니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사들은 퇴원하면 그해를 넘기지 못할 거라며 만류했지만, 대체치료를 받기로 하고 퇴원을 했어요.”
그녀는 전국 각지의 요양원을 찾아다니면서 조금씩 몸을 회복했다. 그리고 자신의 투병일기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녀의 언니가 투병일기를 인터넷에 올리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어릴 적 만화가가 꿈이었던 수진 씨는 언니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다.
“암이 재발한 뒤 웃을 수 있는 날이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요양원에서 다른 암환자들과 함께 좋은 공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으면서도 항상 우울했어요. 유기농돼지처럼 사육당하는 느낌이었죠. 나의 정신세계와 사회적 관계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인터넷에 그림을 올리고, 사람들의 격려의 리플을 보는 순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꾸준히 그림을 그려온 그녀는 지난해 6월, ‘암은 암 청춘은 청춘’이라는 자신의 투병기를 담은 카툰 책을 발간했다. 하지만 병은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허리와 골반뼈에 암이 전이되어서 지금도 항암치료 중이다.
“그래도 책을 내고 감사한 것은 젊은 암 환자들의 연락이 많이 왔다는 겁니다.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린 사람이 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척 외로웠지만 지금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또래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게 좋아요.”
오히려 삶이 풍요로워졌다
마냥 밝기만 한 조수진 씨. 하지만 얼마 전 위암을 선고받고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배우 장진영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남의 일로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가 처음 아프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연예인들의 자살이 많았어요. 하지만 장진영 씨는 살고 싶었지만 암 때문에 세상을 떠난 거잖아요. 그래서 그게 너무 슬펐어요. 당시 일기장에다가 ‘끝내’라는 수식어가 언젠가 나한테 붙을지도 모르니까 눈물을 아껴두려고 눈에 힘을 주었다고 썼어요. 언젠간 나도 세상의 끈을 놓아버리고 사람들의 입에서 ‘끝내, 결국’ 이런 말을 들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녀의 눈이 촉촉이 젖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밝은 표정을 지으며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인생은 짧고 긴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꽉 찬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
“사람들이 저를 보면 항상 밝아서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요. 심지어는 얼마 전 한 방송에 출연하게 되어 촬영을 준비하면서 화장을 하고 있는데 PD님이 암에 걸려도 화장을 하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웃음) 저는 화장도 하고 귀고리도 하고 건강한 사람처럼 똑같이 살고 있어요. 암이라는 병에 걸렸을 뿐 보통사람들하고 다른 게 전혀 없어요.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똑같죠.”
올해로 서른두 살이 된 그녀에게는 깜찍한 바람이 있다. 바로 듬직한 남자친구가 생기는 것이다.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유독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아프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의사를 소개시켜달라고 하곤 했어요. 하지만 병에 걸리면서 외형적인 조건은 한순간에 없어질 수 있고, 인생에서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사람은 됨됨이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은 마음이 넓고, 책을 많이 읽어서 자기만의 확실한 생각이 있는 사람이 좋아요.”
후회없이 알차게 살겠다
그녀는 최근 일본여행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열두 살이나 어린 남자들과 차를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차마 자신의 나이를 솔직히 밝힐 수 없어서 스물두 살이라고 속였다며 깔깔 웃었다.
“병에 걸리면서 정말 감사한 것들이 많아졌어요. 특히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어요. 대학에 입학할 때 저는 서울대, 언니는 카이스트를 갔거든요. 그래서 카이스트를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언니보다는 제게 기특하다는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데 언니가 카이스트에서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편입학했고, 사시까지 합격을 하니 분위기가 반전됐어요. 더군다나 저는 병까지 걸렸잖아요. 언니는 제가 항암치료를 할 때 연수원에 있었는데 거의 매일 병원을 찾아오느라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았음에도 판사가 되었어요. 언니는 저에게 모든 것을 다해주려고 해요. 언니가 나만 바라보니까 형부가 빨리 저한테 애인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예요. 언니한테 위탁해서 살아가려고요.(웃음)”
그녀는 비록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렸지만 부모님과 언니 덕분에 행복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지만 돈이 없어서 제때 치료 받지 못하고, 부모형제가 없어서 외롭게 투병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저 역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저는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번역도 하고, 그림 그리는 일까지 얻게 되어서 참 기뻐요. 불행 중 다행이죠. 또 감사한 일이 있어요. 항상 제 자신이 통통하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무려 5kg이 빠지면서 사람들이 말라 보인다는 말을 많이 해요. 이것도 아픔이 가져다준 선물이구나 생각해요.”
물론 그녀도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싶을 만큼 절망하고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암에 걸리고 나서 처음 알게 된 행복들도 많이 있다. 가족과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웃는 순간이나 봄꽃이 올망졸망 피어난 동네 산책길을 걸으며 달콤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제2의 삶을 준비하는 그녀는 앞으로 웃을 날이 더 많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허리까지 전이된 암세포가 사라졌는지 최근에는 통증이 없어져 의학의 발전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그녀. 그녀에게 암세포는 삶의 방향을 변화시킨 조그마한 계기가 됐다. 암은 그저 암일 뿐 그녀의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아가지는 못했다.
출처 오방떡 소녀의 상큼발랄 투병일기 http://blog.naver.com/obangdduk/
연재소설 <여자의 마음 4> 중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아니,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 일이고, 이제 정수리가 휑해져서 누가 봐도 머리가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머리카락이 수십 가닥씩 뒹굴고 있다. 나는 그것들이 가을이 오기도 전에 세찬 바람에 우수수 힘없이 떨어져버린 나뭇잎처럼 가엾게 느껴졌다가, 어느 순간에는 길고 까만 벌레들의 시체더미나 되는 것처럼 징그럽고 소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한다. 진공청소기가 끊임없이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나는 폭이 넓은 박스테이프를 꺼내어 손에 감았다. 짜악 짜악 짜악, 장판에 테이프가 끈끈히 붙었다가 머리카락과 먼지를 잔뜩 움켜쥐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이 테이프 접착력 참 좋다’라고 무심히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방바닥에 눈물이 투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시작해서 당황했다. 짜악 투둑 짜악 투둑. 눈물이 시야를 뿌옇게 가리는데도 테이프를 감은 손을 멈출 수가 없다. 짜악 투둑 짜악 투둑. 일정하게 반복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알 수 없는 소리가 어쩌면 내 삶이 연주하는 음악 가운데 잠시 지나가는 한 부분인지도 모른다고.
/ 여성조선
취재 백은영 기자 | 사진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