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 불량행위는 중국이 돕기 때문…
대북 정책 바꿔야 한다고 중국에 말해야 한다
정당한 요구 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요구해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에겐 천안함의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한이 의심받는 것을 꺼리는 듯했다. 실제로 정부의 대응은 재판에 대비한 법의학적 자료를 수집하는 것처럼 보였다.그렇게 자료를 수집하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안보는 여러 해가 걸리는 국제적 여론이나 사법(司法) 기구의 재판에서 이기는 일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안보의 핵심은 우리 영토와 국민들에 대한 위협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천안함이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추정되었을 때, 우리 정부는 북한의 소행임을 선언하고 응징을 천명했어야 했다. "늦어진 정의는 거부된 정의다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법언(法諺)이 안보보다 더 절실한 분야는 없다.
사건 바로 뒤에 그렇게 하지 못했으므로, 군함이 침몰해서 많은 피해자들이 생겼는데도 용의자는 없는 상황이 나왔다. 우리 시민들의 가슴마다 끓어오르는 분노는 향할 곳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엉뚱하게 함장(艦長)과 군대로 향했고, 궁극적으로 국군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사악한 죄를 저지른 북한으로 향해서 우리 사회를 결집시킬 시민들의 정의로운 분노가 오히려 안으로 향해서 분열을 깊게 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비정상적 상황을 빨리 수습해야 한다. 북한의 소행임을 가리키는 증거가 나오자마자 북한이 용의자임을 선언하고 응징을 천명해야 한다. 물론, 북한을 응징할 길이 마땅치 않다는 반론(反論)이 이내 나올 것이다. 군사적 보복은 실제적이 아니다. 국제적 제재도 신통치 않다. 이미 여러 제재 조치들이 시행되는 참이라 추가 제재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제재가 효과를 내려면 중국의 참여가 필요한데, 중국은 결코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지나치게 패배주의적이기도 하다.
위의 반론을 살피면 북한 문제의 궁극적 장애는 중국임이 드러난다. 중국이 제재에 참여하면 북한이 계속 불량국가 노릇을 할 여지는 없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중국에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던가. 중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을 터이기 때문에 요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중국이 화를 낼 것이 두려워서 감히 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그저 묵종(默從·acquiescence)의 길을 걸었다. 중국 정부가 티베트와 신장에서 무자비하게 독립운동을 탄압해도 우리는 입을 열지 못했다.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을 북한으로 송환하지 말라고 요구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 대통령이 중국을 찾았을 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모욕적 발언을 해도 우리는 항의하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중국에 말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북한 정권처럼 사악(邪惡)한 정권을 돕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국제적 제재에 참여하라고. 무엇보다도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도운 나라인 만큼 중국은 북한 핵무기를 없앨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이런 요구는 본질적으로 도덕적이고 그래서 강력하다. 사람은 도덕적 동물이므로 궁극적으로 가장 강력한 주장은 도덕에 바탕을 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그런 요구를 해야 하는 것은 당장의 실질적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기 위해서 요구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시민들의 정의로운 분노가 부여한 도덕적 권위가 있다. 그것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훨씬 큰 외교적 비용을 치러야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대한 이웃과의 관계는 늘 '미끄러운 비탈'이다. 한번 미끄러지면 다시 올라서기 힘들다. 할말을 제때에 하지 못하면 비탈에서 몇 걸음 더 미끄러지는 것이다.
지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그를 초청함으로써 중국은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꿀 뜻이 없음을 드러냈다. 이제 우리는 지적해야 한다, 그를 초청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고 북한을 감싸려는 시도는 부도덕하다고. 중국 외교관들이 얼굴을 붉히고 위협하고 회담장에서 나가는 사태를 각오하고서 할말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번 위기에서 이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