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북한 모두 김정일의 중국 방문 사실조차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이 중국 어디를 방문해 누구를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눌지는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김정일은 북한 지도자 자격으로 5번 중국을 찾았지만 단 한 번도 그 일정이 중국과 북한 당국의 입을 통해 공개된 적이 없다. 지금 국제 외교무대에서 최고지도자의 방문과 회담이 이런 식으로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경우는 북한과 중국 사이밖에 없다. 그만큼 중국과 북한 간의 관계가 국제 관행이나 상식과 동떨어져 있다는 증거다. 중국측은 "경호상의 위험 때문에 김 위원장의 일정을 공개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김정일이 지금 중국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중국에게서 대규모 경제지원 약속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북한은 작년 말 화폐개혁을 실시했다가 실패한 이후 북한 주민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심각한 체제 위기를 맞고 있다. 식량은 올해만 100만t가량이 부족한 상태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으로 굳어지면 중국 외의 다른 나라나 국제기구에서 부족한 식량을 얻어내기 어렵게 될 것이다.
북한은 지난 1년 5개월간 북핵 6자회담을 외면해 왔다. 천안함 사태가 없었더라면 중국이 경제지원을 약속하고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끌어내는 것만으로도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미는 천안함 사태 진상 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 추궁이 이뤄진 뒤에야 6자회담 재개(再開)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정일이 후진타오 주석 등에게 천안함 사태에 북한이 관련돼 있는지 여부에 대한 진실을 고백할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 중국이 북한의 말만 믿고 6자회담 복귀의 대가로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한다면 그것은 책임있는 지역국가, 책임있는 세계 지도국가의 행동이 못 된다. 중국의 대규모 대북 경제 지원은 지난해 북한의 2차 핵실험 후 발동된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決議)를 무력화시킬 것이고, 천안함 진상 규명 후 시행될 가능성이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시작도 하기 전에 우습게 만들어버리게 될 것이다.
중국은 이번에 세계와 한국 국민들에게 중국이 세계와 지역에 책임을 다하는 국가라는 사실을 명확히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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