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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한·미 정상 만날때

화이트보스 2010. 5. 10. 13:49

지금이 한·미 정상 만날때

입력 : 2010.05.09 23:26

1968년 4월 17일 오후 3시 53분 미 하와이호놀룰루 공항. 'US Air Force' 마크가 찍힌 비행기의 문이 열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트랩을 내려왔다. 도열한 미 행정부 인사들의 맨 앞에서 박 대통령을 맞은 이는 린든 B. 존슨(Johnson) 미 대통령.

존슨 대통령은 자신이 보낸 전용기를 타고 온 박 대통령의 손을 잡았다. 21발의 예포(禮砲) 발사와 미군 군악대의 애국가 연주가 이어졌다. 존슨 대통령은 이날 공항에서 박 대통령을 영접하는 파격(破格)으로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했다.

그때는 북한의 위협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 그해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까지 침투, 나라가 뒤집히다시피 했다. 바로 이틀 뒤인 1월 23일에는 원산 앞바다에서 대북 정보를 수집하던 미 해군 함정 푸에블로호가 나포됐다. 한미 양국은 베트남전 논의 외에도 북한의 잇따른 도발행위에 대해 강력한 대응태세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박정희와 존슨은 이틀간의 회담 끝에 4월 18일 총 8개 항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1·21 및 푸에블로호 사태를 거론하고, 3항에서 "북괴의 침략행위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가장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도발 및 침략 행위에 대한 신속한 대응에 합의했다. 양국은 이 회담을 토대로 북한에 대한 방어태세를 새롭게 했다. '호놀룰루 성명'을 모태로 한·미 국방장관들의 연례안보협의회(SCM)도 시작됐다.

42년 전 호놀룰루에서 열렸던 '원 포인트' 정상회담은 천안함 사태의 '출구전략'을 고심하는 양국 정부에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이 사태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된 직후에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이 만나 단호한 입장을 천명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정책은 없을 것 같다. 이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기습적인 중국방문에 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장소가 1968년처럼 서울워싱턴 DC의 중간지점인 호놀룰루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도시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천안함 사태가 한국을 향해서만 경계경보를 울린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지난해 12월 성탄절의 노스웨스트 비행기 테러 기도와 지난 1일 뉴욕시 타임스퀘어에서의 폭발물 발견으로 확인됐듯이 미국은 끊임없이 테러 위험에 노출돼 있다. 북한은 마약과 위조지폐를 포함,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국가가 나서서 불법행위를 해 온 전력(前歷)이 있다. 하버드대 그레이엄 엘리슨(Allison) 교수의 지적대로 북한은 발각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 물질과 핵 프로그램을 팔 가능성이 있다. 철저한 대비책을 만들어 북한의 호전성(好戰性)을 제어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미국인들도 북한에 의해 심각한 인명 피해를 입을 수 있다.

11개월 전인 지난해 6월 양국 대통령은 한·미동맹사에서 기념비가 될 말한 합의서에 서명한 바 있다. 당시 발표된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 비전'은 "우리는 어깨를 맞대고 다음 세대를 위해 양국이 직면한 도전에 함께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이 성명서를 토대로 양국의 정상이 다시 만나 단호하고도 확고한 입장을 분명히 밝힐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