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 수장으로서 18대 전반기 국회를 700일간 이끌어 온 김형오(63) 국회의장은 5월 말로 임기를 마치고 의사봉을 놓게 된다. 김 의장의
공식 사이트는 ‘세상을 보는 큰 눈, 만사형통 김형오’로 시작한다. 18대 국회 전반기 의장으로서 임기 막바지를 맞은 김 의장은 최근 <주간현대> 창간 13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에서 입법부 수장으로서의 담백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또한 김 의장은 최근 중동과 중남미 등을 돌면서 의회외교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가 원자력 수출국이 되는 밑거름 역할을 하면서 국위선양에 한몫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는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 의회외교 비하인드를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김 의장은 특히 정치권 안팎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는 개헌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개헌은 정략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국가백년대계를 생각하는 비전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하고, 국회운영과 관련해 “상시 국감제도를 도입해 효율적인 국회운영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김 의장과의 일문일답.
▲ 입법부 수장으로서 18대 전반기 국회를 700일간 이끌어 온 김형오 국회의장. 그는 5월 말 임기를 마치고 국회의장 의사봉을 놓게 된다. | |
입법부 수장으로 700일간 18대 전반기 국회 이끌다 5월말 임기 마무리
차기 대권주자 가시권 드러나기 전에 국가비전 새로 담은 헌법 만들어야
―개헌과 관련한 현재 상황과 개헌의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국회의원 절대 다수가 개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 지도부도 6월 지방선거 이후에 하겠다는 것으로, 개헌의 불필요성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차기 대권주자가 가시권에 드러나기 전에 공명정대하게 국가백년대계를 생각하는 비전과 철학을 담은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5명의 대통령 중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한 4명은 전부 불운했다. 이는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무한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통령 단임제로는 안 된다. 대통령제를 하려면 미국식 대통령제, 그렇지 않으면 서구유럽의 선진국 형태로 가야 한다.
개헌을 정략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개헌은 국회 제적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고 국회에서 통과하더라도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특정 정파만으로의 개헌은 있을 수가 없다. 누구를 의식해서 하는 개헌은 있을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1987년 체제의 헌법은 두 달 만에 만들었는데 현재 국회의장 자문기구에서는 1년여에 걸쳐 개헌에 대한 연구를 했다. 여야 당 지도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많은 시간을 소요하지 않고 개헌을 빨리 진행할 수 있다.
0.1g의 핵무기 용납해선 안돼
―북한의 핵보유 문제 해결 대안은.
▲북한의 핵무기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단 한 방울의 핵도, 0.1g의 핵무기도 한반도에서는 결코 허용돼서도 용납돼서도 안 된다. 비핵화 원칙은 분명히 지켜지고 달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북한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정부가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에 가담하게 된 것도 불가피한 자위적 조치였고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 유엔안보리가 1874호(선박
검색, 무기수출
금지,
금융제재)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나라의 공통된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
국제적 공조 속에 원천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과 핵포기가 이뤄진다면 한반도의 안정 속에 남북이 함께 윈윈(win-win)할 수 있고 평화적 공영을 도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토대 위에서 남북통일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세종시에 대한 국회의장의 입장은 무엇인가.
▲세종시 문제로 인해 국론이 분열돼서는 결코 안 된다. 모든 갈등과 대립은 국회에서 종식돼야 한다. 세종시
관련법이 국회에 제출되면 각 상임위에서는 차분하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원전 수출국으로 도약했다. 원전 수출국의 의미와 원전과 관련해 국회의장으로서 펼친 활동을 소개해 달라.
▲60년 전 전쟁을 겪었던 우리나라는 이제 공식적인 원자력 수출국이 되고 원자력 발전소를 외국에 수출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원자력 관련 기업의 국제 협의체인 세계원자력협회(WNA)는 한국을 5번째 원자력 발전소 수출국으로 분류했다.
2009년 1월16일부터 1월28일까지 13일간의 일정으로 요르단·아랍에미리트연합(UAE)·터키 등 중동 3개국을 공식 방문했다. 요르단·UAE는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서는 첫
공식방문이었다.
첫 번째 순방지는 요르단이었다. 1월17일부터 19일까지 머물렀다. 요르단 압둘라 국왕과의 면담에서 홍해~사해 대수로, 원자력 발전소, 담수화 설비
건설 등 50억∼80억 달러 규모의 3대 국책사업에 한국이 3대 프로젝트 참여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요청했다. 순방 이후 한국 대사로부터 자세한 보고를 받아 구체적 협력을 진행하는 단계로 진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두 번째 순방지는 UAE였다. 1월20일부터 1월22일까지 머물렀다. UAE 군 부총사령관 겸 최고행정관으로 UAE를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아부다비의 실권자인 모하메드 왕세자와의 면담 자리에서 우리나라 T-50 고등 훈련기의 UAE 구매 문제를 논의했다. 원전 건설과 T-50 고등 훈련기 제작 분야에 대한 한국의 경쟁력을 설명하고 정부와 국회가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UAE가 태양열 발전 기술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 착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 중인 태양열 발전단가 절감 기술에 UAE가
공동 투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같은 노력이 원전 계약에서 협조를 얻어내는 데 주효했다고 본다.
정치가 국격 떨어뜨려선 안돼
―우리나라 정치 현실 그리고 국회운영 시스템 문제점과 개선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치가 국격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으로 꼽히고 국회가 오히려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고 분열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정치 환경과 풍토를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
세계가 변화하는 가운데 대한민국도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다. 100년 전 일제 치하에 있었던 우리가 올해 G20 세계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국회는 시대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시대변화의 외톨이가 되지 않도록 대한민국 국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국격이 올라간다.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껍데기가 아닌 진실한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제 정당정치가 국회를 압도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개개인이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들이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성실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막강한 정당정치와 정당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위상이 부정당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선배 의원들이 피와 땀과 온몸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켰다.
국회운영 제도개선은 선진국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필수요건이다. 혼란과 무질서로 점철된 국회를 바로잡기 위해
국회법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상임위 중심으로 민주적 절차가 확실히 보장되고 의안 자동상정제를 도입해 논란이 많은 직권상정은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정치권 안팎에서 상시 국감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 주장이 당위성이 있다고 보나.
▲국정감사가 지난 20년간 많은 성과를 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형식화되고 있다. 국회의원의 정부에 대한
감시 및 감사라는 본연의 기능 외에 과도한 경쟁양상이 벌어지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들이 노출되고 있다. 10월에 20여 일 동안 500여 기관에 대해 실시하다 보니 각 위원회가 하루에 위원회별로 2~3개 많게는 5~6개 기관의 국정감사를 하게 된다. 하루에 보도자료만 500건 이상일 때도 있는데 어떤 기자가 모든 자료를 제대로 다 읽겠는가.
이렇게 되니 기자들은 적당히 읽다가 포기하고 싸움하는 위원회가 없나 찾고 그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만 한다. 그래서 국회가 국정감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싸움하는 국감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장관들도, 피감기관도 그 기간만 적당히 답변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다. 제대로 국감을 준비하는 의원이나 위원회는 항상 여론이나 국민의 시각에서 벗어나 있다.
이것을 고치려면 상시 국감이 필요하다. 각 위원회별로 매달 나누어서 국정감사를 하면 된다. 상시 국감을 효율적으로 하게 되면 위원회도 준비를 제대로 하게 될 것이고 각 기관도 성실히 답변을 하며 언론도 취재를 제대로 할 것이다.
중남미 돌며 의회외교 펼쳐
―올해 의회외교 차원에서 벌인 중남미 해외 순방활동에 대해 소개해 달라.
▲지난 5월4일부터 17일까지 10박14일 일정으로 중남미 거점국가인 브라질과 코스타리카를 공식 방문했다. 이춘식·배은희 의원(한나라당), 이용경 의원(창조한국당), 김용구 의원(자유선진당)이 동행했다. 뉴욕 맨해튼 박인국 주 유엔대사
관저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도 오찬형식으로 환담을 나누었으며, 이 자리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논의도 깊이 있게 이뤄졌다.
5월8일(현지시간) 코스타리카 라우라 친치야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친치야 대통령을 만나 면담도 했다. 전자정부 및 풍력발전 사업에 대한 한국 기업의 진출 지원 방안을 협의했다.
5월10일(현지시간)에는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를 방문했다. 이는 국회의장으로서 26년 만에 브라질 첫 방문이다. 이날 브라질리아 주재 한국 대사관으로 고속철 사업 관련 핵심 인사들을 초청해 환담을 나누었다. 한국 고속철의 기술적 우수성과
경제적 효과를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브라질에 대한 운영 노하우 및 기술이전을 약속했다.
이에 대해 파소스 장관은 “한국은 사업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 많은 열정을 보여주었고, 한국이 수주한다면 양국의 협력 관계가 크게 확대·발전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5월11일에는 조제 사르네이 상원의장과 미셀 테메르 하원의장을 만났다. 미셀 테메르 하원의장은 한국의 기술이전 의지와 공기 단축 능력에 대해 신뢰를 표시하면서 수주 지원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와 올해 두 권의 책을 잇따라 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해 달라.
▲지난해 가을 국정감사 기간 동안 우리나라 곳곳을 순례한 소감을 편지형식으로 써서 두 권의 국토 탐방기 수필집을 출간했다. 국정감사 기간에 관례인 외국 순방을 하는 대신 국토순례에 나섰다. 국토 곳곳을 돌아본 뒤 우리 민족과 역사·문화에 대한 깊은 사랑과 자긍심을 갖게 됐다.
첫 번째 수필집으로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를 발간했다. 2008년 10월11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방문을 시작으로 새만금과 창녕 우포늪, 삼성중공업, 현대제철, 한국원자력연구원, 안동 하회마을까지 12일간 국토를 순례한 소감을 수필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자연·문화·역사·미래를 테마로 우리 국토를 순례하며 느낀 감상을 42편의 편지형식으로 적어 엮은 순수 에세이집이다.
올해 4월23일에는 두 번째 수필집 국토 탐방기 <김형오의 희망편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를 출간했다. 길 위에서 띄운 편지의 속편이다. 백령도·울돌목·반구대 암각화·평화의 댐 등 전국 40여 곳을 순례한 후 소감을
기록한 것이다. 방문지의 역사 유물과 유적 등에 대한 얘기와 감상을 틈틈이 메모하고 사진도 직접 찍었다. 방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설명, 느낀 소감을 편지 형식으로 담았다.
수신인은 ‘열여섯 살 가야 소녀에게’ ‘정순왕후님에게’ ‘서동설화에 관심 있는 분’ ‘선묘 낭자에게’ 등 다양하다. 우표 대신 초록색 잎사귀를 붙였다. 총 8장의 주제로 나눠진 가운데 각 장의 끝에 ‘젊은 벗들에게’라는 8통의 편지글(사랑과 희생, 나눔과 배려, 창의와 역발상, 정직과 신뢰, 웃음과 눈물, 생명과 죽음, 열정과 도전, 꿈과 희망)을 수록했다.
책 판매와 관련된 수익금은
결식아동지원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