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추모본부 제안으로 전쟁기념관에 실물 모형
총탄 구멍 등 그대로 재현… "안보 소중함 상징물 활용"
'357'이란 숫자가 뱃머리에 선명했다. 함교(艦橋)에는 날개를 활짝 편 참수리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함체(艦體) 곳곳에는 적의 함포와 소총 사격에 맞아 뚫린 구멍 258개가 보였다. 20㎜ 부포(副砲) 자리에는 '고(故) 황도현 중사가 전사한 자리'라는 팻말이 'NLL(북방한계선)을 사수한 용사'라는 글귀와 함께 붙어 있었다.호국보훈의 달 6월을 하루 앞둔 31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전시관 옆에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교전 중 침몰한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실제 크기 모형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이날 참수리 357호의 재탄생을 지켜보기 위해 이 배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7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고(故)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36)씨와 당시 갑판병이던 권기형(29)씨 그리고 평범한 시민으로 8년째 제2연평해전 추모본부 회원으로 활동 중인 김상길(38)·권준혁(44)·김남훈(54)·박경원(40)·김진욱(42)씨다.
- ▲ 31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제2연평해전 전사자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왼쪽 두번째)씨와 추모본부 회원들이 완공을 앞둔 참수리 357호 모형 앞에 모여 연평해전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작년 7월부터 지난 2월까지 전쟁기념관 안내데스크에서 일한 김종선씨는 참수리 357호 모형을 보고 감격했다. 그는 "늘 가까이 두고 보고 싶지만, 볼 때마다 가슴이 에이고 눈물을 쏟게 하는 배"라고 말했다. 김씨 남편은 참수리 357호 조타장으로 연평해전 때 실종됐다가 41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평택에 있는 참수리호는 군부대 안에 있어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는 없잖아요. 기초공사할 때만 해도 언제 다 지을까 했는데…."
김씨는 평택 2함대사령부에 전시된 참수리 357호를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이전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었다. 장렬히 산화한 6명의 용사를 추모하고, 전쟁의 참혹함과 안보의 소중함을 국민들에게 생생하게 알리는 데 벌집이 된 참수리 357호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을 중심으로 네티즌 서명운동이 벌어졌고 국회의원 40여명이 이전촉구 결의안을 발의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평택에서 용산까지 옮기려면 함체를 여러 조각으로 절단해 운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산화한 357호가 어떤 이유에서든 조각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유가족도 있었다.
김종선씨는 2007년 당시 서해교전 추모게시판에 "용산 이전만 고집하지 말고 참수리 357호 모형을 떠서 (용산 전쟁)기념관에 두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았다. 그는 2003년 11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스터에서 열렸던 한국전 참전기념탑 제막식에 갔을 때 퇴역 함정을 전시관으로 활용하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었다.
김씨는 그뒤 청와대와 해군 관계자 등을 만날 때마다 "모형이라도 지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해군은 지난 1월 모형 건조공사를 시작했다. 30여억원이 투입돼 5개월 만에 길이 37m, 폭 6.5m, 높이 10.7m로 실제 참수리호와 똑같은 모양의 배가 모양을 갖췄다. 선체 내부에는 고(故) 윤영하 소령 등 전사자 6인을 기리는 공간과 가상 전투 체험장 등이 설치됐다.
제2연평해전 당시 왼손 관통상을 당한 권기형씨 심경은 복잡했다. 그는 "모형이지만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힘을 보탠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면서도 "동료 고속정과 함께 서해 NLL을 사수하고 있어야 할 배가 왜 평택과 여기에 있는지…"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제2연평해전 추모본부 창단 멤버로 8년째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권준혁·김상길씨는 "그동안 '역사적 상징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애써 감추려고 한 정부와 해군에 대해 아쉬움이 많았다"면서 "늦었지만 환영한다"고 했다. 공주대 김남훈 교수는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홀대한 나라를 원망하며 가슴을 친 시간이 많았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참수리 357! 우리 결코 잊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