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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흘산 - 사람이 있어 아름다운 풍경

화이트보스 2010. 6. 3. 16:22

설흘산 - 사람이 있어 아름다운 풍경

사람으로 하여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 응봉산에서 본 설흘산 자락. 빛으로 연주하는 대지의 교향곡.

낙타를 몰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로 하여 사막의 황량함이 아름답다. 비로소 사막은 세계를 넓히려는 인간의 의지를 단단하게 어루만진다.

비탈 밭에서 김을 매는 아낙. 누대를 이어온 그 생명의 손길로 하여 비탈은 가쁜 숨을 누그린다. 비로소 산은 제 몸의 상처를 자랑스레 하늘에 내보인다.

소를 앞세워 논두렁을 걷는 농부. 그의 지게 위에 내려앉는 저녁 햇살은 온전한 노동의 투명한 무게다. 비로소 구불구불한 논두렁은 대지를 품에 안는다.

남해의 남쪽 바다와 맞닿은 설흘산(482m). 인간의 삶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는 곳이다. 설흘산은 가천다랭이마을(국가지정명승 제15호)을 풀처럼 나무처럼 기른다. 다랭이마을이 설흘산이고, 설흘산이 다랭이마을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천다랭이마을은 설흘산의 남서쪽, 응봉산의 남동쪽 자락에 안겨 있다. 두 산이 이루는 계곡은 마을의 가운데를 지난다. 대부분 집들은 응봉산 기슭의 논 가운데에 있다.

가천다랭이마을은 요즘 남해에서 가장 인기 좋은 관광상품이 되었다. 이건 하나의 역설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겐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었을, 노역에 가까웠을 삶의 흔적이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왜? 먹고살 만해지고 보니까 옛 시절이 그리워서? 그건 아닌 것 같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행색을 보면 지독한 가난을 경험해본 모습이 아니다.

다랑논의 이색적 풍광 때문에? 이곳 말고도 남해에는 다랑논이 많다. 아니 평야지대를 제외한 전국 어디에나 있다. 지역에 따라서 삿갓배미, 다랭이논, 봉답(奉畓), 봉천답, 천수답이라고 부른다. 오직 하늘에서 내려주는 빗물에만 의지해 농사를 짓는 논을 이르는 말이다. 일상적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하늘바라기나 천둥지기라는 시적인 이름도 있다.

어쨌든 가천다랭이마을은 이제 우리나라 산골짝 논배미를 대표하는 곳이 되었다. 특별한 입지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없이 넓은 바다와 농사 지을 엄두도 못 냈을 것 같은 가파른 산기슭 논의 극적인 대조, 족히 몇백 년은 가꾸었을 세월의 부피, 지척에 바다를 두고도 거의 전적으로 땅에 의지한 상식을 비껴간 선택, 논두렁의 수평성과 계단의 수직성이 이루는 조형미, 단순히 억척스럽다고 말하기에는 무사태평이 얼비치는 삶의 건강성,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그 무엇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자리에서 심미적 울림을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아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말을 하고 보니 오히려 본질을 벗어난 기분이다. 그렇다면 뭘까?

▲ 설흘산~응봉산 암릉길에서 본 남해 바닷가. 파도치고 구불거리는 삶의 노래.
▲ 생강나무

사람의 살림살이가 자연의 아름다움에 배경이 된 풍경

▲ 1 산벚나무 2 졸참나무 3 개다래 4 응봉산 암릉에서 만난 여수만의 저녁.
다랑논의 곡선은 등고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벗어나면 하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 여기에서 섣불리 인간과 자연의 조화 운운하는 수다를 떨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랑논의 곡선은 순응이다. 그렇지만 가천다랭이논은 가지 하나에 만족하는 뱁새의 순응과는 다르다. 그 규모가 상당하다. 억척은 보여도 악착은 느껴지지 않으니 욕심 사납지는 않다. 산비탈에 매달린 삶이지만 윤기가 흐른다. 순응과 체념, 둘 다 넘어섰다. 가천마을 사람들 스스로 창조해낸 ‘복’이다. 바다는 사철 온화한 기운을 실어 나르고, 산은 겨울 찬 바람을 막아선다. 하늘이 돕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천다랭이마을과 설흘산의 아름다움은 이렇게 ‘창조’되었다. 사람의 살림살이가 자연의 아름다움에 배경이 되는 풍경. 나에게 설흘산이 명산인 이유다.

나는 한국의 10대 명산이니 100대 명산이니 하는 말이 불편하다.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인정한다. 그래도 싫다. 위계적 시선에서는 폭력성마저 느껴진다. 만약 한국 최고의 명산 하나만을 꼽으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이에게는 어릴 적 동네 뒷산이 그것이다. 살아가면서 변하기도 한다.

설흘산은 한국의 몇대 명산식의 시선에는 들어오지 않는 산이다. <월간山>에서 펴낸 <440명산 정밀지도첩>에도 포함되지 않는 산이다.(여기에는 大자가 빠져서 다행이다.) 에베레스트의 높이에 견주자면 산도 아니고, 지리산의 넓이와 비교해도 보잘것없다. 그렇지만 나에게 설흘산은 명산이다. 그 이유는 이미 밝혔다. 이런 나의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동의를 구할 생각도, 설득할 생각도 별로 없다. 다만 나는 산행이든 여행이든 행위자 스스로가 즐거움을 만들어나가는 창조적 행위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설흘산이 언제부터 설흘산으로 불렸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雪屹山’으로 적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所屹山(소흘산)’이라 적고 “현 남쪽 30리 지점에 있다”고 설명한다. 소흘산이라는 지명이 현재의 설흘산을 가리킨다는 것은‘소흘산 봉수’를 설명한 데서도 확인된다. “동쪽으로 금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원산에 응한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소흘산이 현재의 설흘산과 같은 산임을 분명하게 한다.

소흘산이 언제 설흘산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글자 뜻대로 보자면 소흘산은‘우뚝 솟은 산’, 설흘산은 ‘눈 덮인 높은 산’이겠다. 눈 귀한 남쪽 산 이름 치고는 조금 의아하다. 억지 춘향격 상상을 해보자면, 조선시대까지 소흘산이 맡아오던 군사적 구실이 사라지고 산아래 마을이 커지면서 소흘산에서 응봉산으로 흐르는 암릉의 흰 모습을 보고 어감도 비슷한 ‘설’자로 바꿔 운치를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설흘산은 꼭대기의 봉수가 말해주듯이 정상의 조망이 좋은 곳이다. 동쪽으로 마주 보이는 금산 자락까지 깊숙이 들어온 앵강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의 입구에는 서포 김만중이 귀양 와서 생을 마감한 노도가 아득한 눈길로 인생무상을 말하고 있다. 남동쪽으로 여수만과 한려수도의 아기자기한 섬들도 즐거이 길동무를 해준다.

설흘산 산행의 실제는 설흘산~응봉산, 응봉산~설흘산 능선 걷기다. 가천마을에서 설흘산으로 올라 응봉산을 거쳐 육조능선을 따라 가천마을로 하산하거나 내처 선구리까지 걷는 것이 보통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설흘산 북쪽의 홍현마을에서 시작해 망산(406m)을 거쳐 오르는 방법도 있다.

설흘산에서 응봉산까지는 호젓한 숲길이다.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활엽수로 이루어진 젊은 숲의 가족들과 얘기를 나누며 걷기에 좋다. 바다를 보며 걷는 즐거움은 응봉산부터다. 그렇다고 서둘러 달려갈 일은 아니다. 응봉산 위에서 설흘산을 향한 산바라기의 즐거움을 놓쳐서는 안 된다. 멀리 구름을 이고 앉은 금산의 진중한 거동은, 진시황이 서불이라는 사람을 보내어 불로초를 구해오게 했다는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눈길을 더듬어 내리면 육덕 좋은 설흘산 자락이 숲의 향연을 펼친다. 비유컨대 최고의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대지의 교향곡이다. 요즘처럼 산색 고운 계절, 저녁 햇살에 반짝이는 그 빛의 소리는 축복이다. 숨을 가다듬고 그 소리를 새겨본다. 화장지 광고에 나오는 가문비나무 숲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세밀한 기교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올올이 선명한 산색은 우리 봄산의 정수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게으른 언사다.

응봉산 서쪽 능선은 날렵한 암릉이다. 해무에 지워진 수평선 위를 섬들이 소요한다. 나도 그들을 따라 암릉 위를 흐른다. 기분 좋은 긴장감 속으로 저녁 햇살이 스며든다. 저녁 바다 위로는 꿈처럼 어둠이 찾아들고, 산색은 대지로 내려앉는다. 낮과 밤의 경계를 밟고 가는 하산 길, 지금 이 순간의 안온으로 충만하다. 내일, 있어도 없어도 좋겠다.

▲ 설흘산에서 본 가천다랭이마을.


/ 글·사진 윤제학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