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감은사지부터 감포항에 이르는 31번 국도 드라이브 코스
드라이브 하면 동해안을 따라 펼쳐진 7번국도가 떠오른다. 그 길엔 크고 작은 해수욕장과 포구들이 해안선을 따라 포진해 있다. 풍광 좋은 곳이 나오면 차를 세우고 푸른하늘의 노랫말처럼 모든 괴로움과 응어리진 가슴을 열어 파도에 던져버리기만 하면 된다.
7번 국도는 부산에서 함경도에 이르는 총 513.4km의 길이다. 우리나라 국도의 끝자락인 고성 화진포해수욕장부터 남쪽으로 가진, 속초, 하조대 등 이름만 들어도 너무나 유명한 해수욕장이 늘어섰다.
화진포에서 바닷길을 따라 내려오면 포항에서 31번 국도에게 바닷길을 내주고 7번 국도는 경주시를 통과하게 된다. 바닷길을 이어받은 31번 국도는 경주 동쪽 끝을 지나가는데 감포항에서 문무대왕릉에 이르는 구간은 유홍준 교수(前 문화재청장)가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극찬한 길이다. 또한 삼한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 ▲ 경주시의 전체지도를 보면 동쪽으로 바닷길이 나있다. /지도출처:네이버
경주시내에서 토함산 자락에 있는 추령재를 넘어 감은사지를 지나면 그 길을 만날 수 있다. 감은사는 부왕(문무왕)이 죽은 뒤 그 화신인 용이 출입 할 수 있도록 건립된 사찰로 682년(신문왕2)에 완공되었다.
감은사지에 있는 삼층석탑(국보 제112호)은 높이가 13.4m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신라탑 뿐만 아니라 삼층석탑 중에서도 가장 크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탑을 보고 있으면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언이 가슴 속에 전해지는 듯하다.
회갑을 맞아 경주를 찾은 곽옥순(60, 고양시)씨는 "옛날 교과서에서 본 기억 때문에 이곳을 찾았는데 실제 규모도 놀랍고 탁 트인 도로 때문에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 ▲ 봉길해수욕장에서 만난 문무대왕의 수중릉
감은사지에서 5분정도 동쪽으로 나가면 탁 트인 바닷길이 시작된다. 그 초입에 위치한 봉길 해수욕장에는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던 문무왕의 납골이 뿌려진 문무대왕릉이 있다.
그 때문인지 용왕이나 문무왕에게 치성을 드리는 무속인들이 매일 찾아온다. 이곳을 찾은 김길녀(65)씨는 "손자가 몸이 좋지 않은데 여기가 신통하다고 하여 대구에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문무대왕릉 옆에 이견대(利見臺)가 있다. 이견대란 `용을 본 곳`이라는 뜻. 이곳에서 신문왕은 만파식적을 얻었다. 세상의 파도를 없애고 평안을 얻는 피리다. 용이 된 문무왕이 건네준 보물이다.
이견대에는 4,135㎡ 크기의 정자가 세워져 있다. 정자 위에서면 봉길 해수욕장과 문무대왕릉이 한눈에 펼쳐진다. 여기서는 아침일출도 장관이다.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많은 사진작가들이 이 곳에 몰려든다고 한다.
- ▲ 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은 장소인 이견대
이견대에서 감포항까지 이어진 40㎞의 31번 국도는 동해 바다의 낭만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바닷길 곳곳에서 나타나는 포구에는 오징어와 멸치, 말린 생선, 미역, 김이 쌓여 있다. 감포항 가는 길에는 갓 잡아 올린 생선을 맛 볼 수 있는 횟집들이 줄을 지어 늘어섰다.
포구 한편에서는 과메기와 오징어를 해풍에 말리고 있다. 방파제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만선을 기다리는 하얀 등대가 서 있다. 방파제에는 바다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이 잔뜩 몰려 있다.
감포항에서 50년 이상 살고 있는 엄경순(76)씨는 "우리집이 바로 바다 앞이에요~ 매일 아침마다 동해 일출을 보고 있는데 이런 것이 복 아닌가~"라며 열심히 미역을 손질했다.
감포항까지 바닷길을 만끽했다면 다시 4번 국도를 타고 보문관광단지로 진입할 수 있다. 오는 길에는 기림사에 들려 약수 한 모금으로 여행길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 ▲ 다섯가지 약수가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 유적지인 기림사
643년(선덕여왕 12)에 창건된 기림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 유적지라 할 수 있다. 기림사 사적지에 나와 있는 오종수(장군수, 오탁수, 초안수, 화정수, 감로수)는 차샘으로 유명하다.
오종수는 각 약수물마다 특징이 있다. 오탁수는 물의 맛이 으뜸이고, 초안수는 눈이 맑아지며, 화정수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감로수는 하늘에서 내린는 이슬과도 같다고 한다. 현재는 일제에 의해 막힌 장군수와 우물이 사라진 오탁수를 제외한 3가지 물만 만날 수 있다.
기림사를 나와 4번국도를 달리면 어느덧 경주엑스포광장이 보이는 보문관광단지에 도착한다. 보문관광단지를 끝으로 문무왕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바닷길 드라이브는 마침표를 찍는다. 보문관광단지에는 보문호를 중심으로 숙박시설과 온천이 잘 되어 있으니 여독을 풀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시내쪽으로 조금만 더 나가면 순두부마을도 있으니 요기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