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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복지' 내미는 진보 진영

화이트보스 2010. 6. 8. 16:00

'꿈같은 복지' 내미는 진보 진영

입력 : 2010.06.08 03:07

"전면 무상급식" 이어 이번엔 "의료 무한 서비스"
진보측 주장… "1인당 건강보험료 月 1만1000원 더 내면 병원비 걱정 사라져"
정부측 반론… "정부·기업 추가부담 전제 유럽식만 강조한 포퓰리즘 환자 몰려 진료받기 힘들어"

"건강보험료를 1인당 월(月) 1만1000원만 더 내면 병원비 걱정, 의료 불안 사라집니다"

'전면 무상급식'에 이어 '의료 서비스 무한 제공'주장이 제기되는 등 진보 진영의 '복지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의료 서비스 무한 제공'주장은 9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진보적 의료단체 등이 중심이 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준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본격 제기될 예정이다.

준비위원회에는 서울대 의대 이진석 교수,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 대표,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 대표, '88만원세대' 저자 우석훈씨,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 조국 서울대 교수 등 33명이 참가했다.

시민회의는 7일 일부 언론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매달 1인당 평균 1만1000원 정도 보험금 부담을 늘리면 OECD 선진국처럼 각종 의료 서비스 비용의 90% 이상을 정부가 부담하도록 할 수 있다"면서 "아무리 큰 중병에 걸려도 연간 개인 의료비 부담금 총액이 100만원을 넘으면 초과분은 전액 건보공단이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의료 무한 서비스가 가능해지려면 개인의 추가 부담과 별도로 6조3000억원에 이르는 정부와 기업(사업장)의 추가 부담이 전제로 돼야 하며, 의료계가 반대하는 총액계약제 도입이나 현행 의료전달체계의 전면 개편 등이 해결돼야 가능한 문제다.

특히 비용은 싸지만 병원 가기가 훨씬 힘든 유럽식 모델로 가려면 환자들의 불편 감수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과 무한 서비스 제공에 따른 일부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대책도 없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더 많은 부담, 더 많은 의료 복지

"MRI(자기공명장치), 초음파 등 현행 본인부담금이 60%인 서비스 전액 보험 처리, 모든 병원의 간호 인력을 서울 대형 병원 수준으로 확충, 간병 서비스 공짜 제공, 입원환자 본인 부담률을 20%에서 10%로 낮추기, 연간 본인부담금 총액이 100만원을 넘기면 초과하는 비용은 건보공단이 전액 부담하기…. 꿈같이 들리겠지만 이들 서비스는 OECD 국가 국민이 이미 누리고 있는 서비스다. (중략) 1인당 평균 1만1000원만 더 내면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자체적으로 만든 설명자료에 나오는 문구다. 스스로도 '꿈같이 들린다'고 말할 만큼 환상적인 복지 혜택이다. 1만1000원은 의료비 국가 부담비율을 지금 62%에서 90% 수준까지 올리는 데 필요한 12조원 중 개인이 부담할 비용을 추산한 것이다. 시민회의측이 예시한 OECD 국가 중 입원비용 전액을 보험으로 처리해주는 11개국 중에는 포르투갈·그리스·아이슬란드 등 경제 파탄 위기에 몰린 5개국이 포함돼 있다.

이번의 문제 제기는 전면 무상 급식 때와는 달리 수급자들이 일정 부분 부담을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부담을 가져가는 이상의 엄청난 혜택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생활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 듯 병원 비용은 공짜에 가깝지만 병원 예약하기는 엄청나게 불편한 곳"이라며 "1시간 이내에 어떤 병원이든 예약 없이 찾아갈 정도로 편리한 우리 현실은 외면한 채 유럽의 의료비용만 강조해 왜곡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정부·기업 추가 부담 6조원

지금 건보 시스템은 직장인이 건보료 1만원을 내면 기업주가 1만원을 내고, 여기에 합친 2만원에 대한 20%인 4000원을 정부가 보태 재원을 마련하는 구조다. 따라서 개인이 1만1000원씩 매달 추가 부담을 해도 정부는 2조7000억원, 기업은 3조6000억원의 추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문제는 추가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것이다. 재정 부담은 세금으로 바로 이어지는 문제인데, 현재 2만7000원대인 1인당 건보부담금을 40% 이상 높이는 데 국민들의 동의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금도 건보 재정의 적자를 메우느라 매년 담뱃값에 부과되는 건강증진기금의 3조원 이상을 빼내 보태고 있는데, 여기에 연간 2조원 이상을 추가로 보태라는 것은 무리"라며 "장기적인 아젠다를 정치적 구호처럼 만들어 주장하고 나선 셈"이라고 주장했다.

A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에 연간 3조원 이상의 세금을 더 걷겠다는 발상인데, 안 그래도 경영에 허덕이는 중소기업들은 부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과잉 진료' 문제는?.

전면 무상급식처럼 의료 서비스 무한 지원 구상은 여론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재원문제뿐 아니라 무한 의료 서비스가 가져올 '도덕적 해이'도 문제로 지적된다.

모든 의료 서비스가 건강보험으로 커버될 수 있다면 환자의 종합병원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한번 입원한 환자들은 퇴원하려 하지 않으며 온갖 검사를 다 받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의료 적체'가 심해질 것이라고 비판론자들은 지적한다. 유럽 모델처럼 진료비는 싸지만 의료 공급 부족(수요 과잉) 때문에 병원 진료받기가 힘들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시민회의측은 "종합병원 쏠림을 막기 위해 동네 병원에도 간호사를 서울 대형 병원 수준으로 배치하는 등의 근원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회의 이진석 교수(서울대 의대)는 "부작용은 장기적으로 검토할 문제이고 지금 당장 논의하기엔 지나치게 세부적인 사안"이라고 한발 비켜나갔다. 이 교수는 "건보 재정 건전화를 요구하면서도 재정 부담은 정부나 기업 탓으로만 돌리던 상황에서 이번엔 국민 개인 부담부터 촉구하고 나선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