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의 고립된 섬' GP장, 24시간 북한군 동태 감시
후임 구타하는 선임… 담배 피는 병사 다 보여
"GP생활, 특히 ○○○GP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한 조각 배와 같다. 불안감과 폐소감(閉所感)이 때로 엄습하지만, 반복훈련을 통해 심적 부담을 떨쳐낸다."○○○GP를 포함해 3개 GP에서 총 6차례 GP장을 지낸 유창민(가명) 수색중대 부중대장(중위)을 만난 건 그가 결혼휴가를 다녀와 부대에 복귀한 첫날이었다. 그는 2008년 4월부터 ○○○GP장을 7개월간 지냈고, 현재 GP 지원업무를 맡고 있다. 곧 대위로 진급한다.
―○○○GP는 어떻게 다른가?
"최동북단에 있는 GP 중의 GP, 왕 중의 왕, 폭풍전야의 성이자 한편으론 무릉도원이다. 북한 GP 3개와 대치하며 상대가 언제 어디서든 도발할 수 있고 그럴 때 우리가 가장 먼저라는 심적 부담이 있다."
―GP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가?
"대한민국 최전방 감시 초소다. 모든 일이 GP에서 시작되고, 거기서 잘 봐야 후방을 사수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눈(眼), 제1의 파수꾼이며, 선택받은 엘리트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한없이 우러나오는 조국에 대한 충성심, 반드시 이기겠다는 자신감이 요구되는 곳이다."
- ▲ 우리의 동쪽 최일선을 지키는 GP 대원들이 비무장지대 내에서 작전을 수행하 고 있다. (Canon 1D Mark Ⅳ 24~70㎜ ISO400 1/250 F22 촬영) /DMZ 특별취재팀
―금강산의 사계를 눈으로 경험해본 소감은?
"봄엔 푸름과 꿈틀꿈틀한 생동감, 코 안에 빨려드는 짙은 풀냄새가 있다. 여름엔 어마어마한 매미 울음과 엄청난 비·번개가 교차해 변화무쌍하고, 가을엔 운치있는 단풍이 있으며, 겨울엔 남극 한복판에 있는 듯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눈보라가 몰아친다. 무척 아름답다."
―철책 너머 북한도 계절마다 다른 모습일 텐데.
"봄엔 비무장지대(DMZ)에서도 영농활동을 하고, 여름엔 DMZ 내 규정을 무시하고 웃통을 벗거나 흡연하는 모습이 보여 '군 기강이 상당히 이완됐구나'하는 느낌을 받는다. 가을엔 차량으로 땔감을 나르거나 문풍지를 바르면서 월동 준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관측이 잘 안된다. 선임이 후임을 구타하거나 폭언하는 상황도 감시 장비로 관측했다."
―선장(船長) 역할에 따르는 고뇌는 어떤 것들인가?
"전장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훈련한 대로 실전에 쓸 수 있을까, 완전작전을 할 수 있을까, 실전에서 병사들이 지휘 통제를 잘 따를까, 정확히 사격할 수 있을까 그런 불안이 없지 않다."
―임무가 특수하고 위중하다. 군기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GP 투입 첫날 '절대로 너희들에게서 인기를 사지 않겠다. 다만 상황이 발생하면 나를 따르라, 그러면 다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대한 반응은) 표정이 각양각색이다. 끄덕이기도, 피식거리기도 한다."
―부하 병사들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근무주기·수면주기 바뀐다는 점, 불확실·불안정성에다 갇혀 지내야 한다는 점에서 정서적으로 무척 힘들다. 체육대회를 하거나 본부 협조를 얻어 다독이는 편이다."
―에피소드가 많았을 텐데.
"새벽 초소 순찰 중 부스럭 소리만 나도 가슴이 요동치고 실탄·수류탄을 어루만지게 된다. 어떻게 조치할까, 병사들을 모두 깨워 출동시킬까, 찰나에 오만 생각이 다 난다. 민감한 소리 하나까지 마음을 뒤흔든다. GP장 하는 동안 실제 상황이 있었다면 멋지게 해내고 싶었는데 하늘이 안 도와줬다."
―외딴 섬의 최고 수장으로서 고독감은 없는가?
"외롭고 쓸쓸하다. 병사들은 여자친구·가족·복학·사회 적응 같은 고민거리를 꺼내놓고 서로 상의도 하지만, 정작 내 고민은 말할 대상도 없고 해결방법도 못 찾는다. '자기 컨트롤도 못하고 참 나약하구나'초라함을 느낄 때가 있다."
―대원들에게 못해줘서 마음 아픈 일은 없었는가?
"겨울에 영하 25도쯤 되면 규정된 복장을 하더라도 밖에 서면 5분 만에 귀가 잘려나가는 듯하다. 바람막이도 없는 곳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한 마리 고독한 매로 전방을 바라보는 소대원들이 정말 대단하고, 보온병에 커피 한 잔 타주는 게 고작인 점이 미안하다. 밤중에 복통이 심한 소대원이 있어도 후송 치료해야 하는데 야간엔 통행할 수가 없어 의무병 응급조치 밖에 할 수 없을 때엔 무력감이 든다."
―여름과 겨울, 날씨 편차가 심한 곳인데.
"겨울에 눈이 조금만 내려도 불안하다. 작전도로는 생명줄과 같은데 제설이 안 되면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장비도 제한돼 있어 잘해야 하루 700~800m 제설하는데, 복귀해서 눈이 내려 결국 허탈하게 제설률 0%가 된 적도 잦다. 여름엔 비가 너무 내려 철수날이 미뤄지기도 한다. 사람인지라 짜증이 난다. '이게 바로 운명이다. 낙석 맞아서 귀한 몸 다치는 것보다 낫지 않냐'고 위로하지만, 한편으론 한숨 나오고 결재서류 보면서 나도 모르게 짜증내기도 한다."
―통문 들고 날 때, GP 임무를 시작하고 끝낼 때 소회는?
"GP 투입 때 실탄 1발씩 장전하는데 한숨도 나오고 참 착잡해진다. 안 좋은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투입 이튿날 인수인계하고 지휘권 교대 신고를 하는 순간부터 모든 게 내 책임이 된다. 작은 것 하나하나 신경써야 하니까 가슴이 무거워진다. 철수할 때, 지휘권 이양하고 작전도로를 따라 내려올 때는 이제 책임을 벗었구나 싶어 상쾌해지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특별취재팀이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인터넷(dmz.chosun.com)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 ‘아! 6·25’,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기념 ‘Inside the DMZ 사진영상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