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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중국의 빗나간 민족주의

화이트보스 2010. 6. 11. 13:23

우리는 피해자"… 강대국 중국의 빗나간 민족주의

  •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입력 : 2008.05.16 13:44 / 수정 : 2008.05.16 13:44

중국의 신민족주의: 자부심, 정치 그리고 외교
(China's New Nationalism: Pride, Politics, and Diplomacy)

Peter Hayes Gries 지음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215쪽|19.95달러

4월 27일 서울에서는 희한한 사태가 벌어졌다. 티베트의 유혈진압과 탈북자 강제송환에 대한 항의표시로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가로 막으려던 한국인 시위대가 백주의 서울 시청 앞에서, 유학생 중심의 중국 시위대에 폭행을 당한 것이다. '신성불가침'의 주권이 침해 당했다고 느낀 한국 언론이나 네티즌들의 분노는 능히 짐작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국 언론의 '과장 왜곡 보도'가 중국 네티즌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 언론의 '과장 왜곡 보도'에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적반하장 격인 비판의 이면에는 흥미로운 논리의 전도가 목격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뒤바뀌는 것이다. 폭행의 주체인 중국인 시위자들이 폭력의 가해자에서 '과장 왜곡 보도'의 피해자로 둔갑하는 대신, 폭행 당한 한국인들은 '과장 왜곡 보도'의 가해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는 '서양'의 올림픽 보이콧 운동에 대해 서양상품 불매 운동으로 맞서고 서구 언론의 '편파 왜곡 보도'를 규탄해 온 중국 민족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올림픽 보이콧은 중국의 눈부신 발전에 놀란 서양 제국주의자들이 중국을 음해하려는 음모라는 생각이 중국인들 사이에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 국가권력의 선전선동 결과로만 보기엔 그 열기가 너무 뜨겁다. 때때로 밑으로부터의 민족주의가 관변 민족주의를 압도하기도 한다.
▲ 지난 8일 중국 젊은이들이 경제특구 선전(深 土+川)시의 덩샤오핑(鄧小平) 초상화 앞에서 올림픽 성화를 환영하고 있다. /로이터

그리스(Gries) 의 이 책은 오늘날 중국의 민족주의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저자에 따르면, 주로 80년대 생이거나 리버럴한 80년대에 유·소년기를 보낸 중국의 신세대 민족주의는 '희생자 의식'을 그 특징으로 한다. 4개 현대화 이후, 80년대의 눈부신 물질적 번영의 수혜자인 이들 신세대의 몸에 각인된 '희생자 의식'은 다소 뜻밖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선포 이후 중국의 민족주의는 '승자 의식'에 기대어 있었다. 중일전쟁과 국공(國共) 내전의 잇단 승리, 그리고 한국전에서 미국을 혼내준 민족적 자부심은 아편전쟁 이후 '백년국치(國恥)'를 씻기에 충분했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내전의 희생자였던 혁명 세대의 민족주의는 오히려 '승자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서양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는 '희생자 의식' 민족주의가 등장한 것은 중국이 국제무대에 급부상한 1990년대의 일이었다.

그 계기는 1989년의 천안문 사태였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서양의 제재는 1900년 의화단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북경에 진주한 제국주의 군대의 잔인한 보복과 비견되었다. 1990년 의화단 봉기 90주년을 기념하면서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백년국치'라는 단어를 불러냈다. '희생자 의식' 민족주의가 공식적인 역사담론으로 부상한 것이다.

'희생자 의식' 민족주의는 1999년 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의 '오폭' 사건과 2001년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공중충돌로 전투기 조종사가 사망한 사건 등을 거치면서 더욱 고조되었다. 국제적 인권단체들이 주도하는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운동과 서양 언론의 '편파 왜곡 보도'에 대한 중국인들의 분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승자 의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990년은 한국전쟁 발발 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한국전쟁에서 중국은 자비로운 승자였다. 한국 전쟁은 오욕으로 점철된 '백년국치'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중국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세계 최강인 미국을 혼내준 중국은 '최강'보다 더 위대한 나라인 것이다.

'승자 의식'과 '희생자 의식'이 나란히 공존하는 것은 비단 중국 민족주의만의 특징은 아니다.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영웅적 투쟁과 제국주의 지배에 고통 받는 민중의 희생은 민족주의적 역사서술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특징은 중국 민족주의의 이 보편적 이중성을 '체면'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수교 당시 중국은 닉슨의 방중 요청을 수락했을 뿐 정식 초청을 한 적이 없다는 외교부 통역의 회고나 닉슨이 주은래와 악수할 것이라는 키신저의 확약을 받아낸 당시 외교부장 황화의 노력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적 체면'을 세우기 위한 중국 지도부의 집착을 잘 드러낸다. 중국 민족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이른바 '키신저 콤플렉스'는 '체면'의 이중성을 잘 드러내준다.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을 비롯해 중국의 민족주의 저작들은 모택동과 주은래를 존경하고 중국의 미래를 밝게 그린 키신저를 반복해서 인용한다. 세계적 정치학자이자 외교관인 키신저를 한 수 가르친 중국은 미국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이 우월성은 키신저와 같은 위대한 서양인의 말과 글을 통해서만 입증될 수 있다는 생각이 그 저변에 깔려 있다. 중국의 민족적 체면을 서양으로부터 인정 받으려는 인정투쟁이 '키신저 콤플렉스'로 나타난 것이다.

1999년 베오그라드의 중국대사관 피폭 사건이나 2001년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공중충돌 사건에서 중국 측이 미국과 나토의 사과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도 '체면'의 관점에서 저자는 해석한다. 많은 중국인들이 대사관 폭격을 중국의 민족적 존엄성에 대한 공격이라 간주하는 상황에서, 중국 지도부는 실추된 체면을 되찾기 위해 계속 사과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체면'의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이기는 더 어려운 것이었다. 중국적 세계관에서 볼 때, 일본 제국주의의 중국 침략은 자식이 부모를, 제자가 스승을, 동생이 형을 공개석상에서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과학기술이 발전된 서양 제국주의가 중국을 짓밟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국의 체면이 깎인 것이다. 중국의 체면이 더 많이 깎인 만큼 일본의 사과는 서양의 사과보다 더 절절해야 마땅하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훨씬 격렬했던 서양의 성화봉송 저지시위를 제치고 유독 한국의 시위대에만 중국인들의 폭력이 행사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국의 시위이기 때문에 중국의 체면이 더 깎였다고 생각한 것일까? 일부 루머처럼 중국 대사관이 주도한 관변 민족주의의 결과라면 차라리 다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