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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푸는 나라 KOREA] KOICA, 베트남에 '희망의 학교'를 짓다꽝남(베트남)

화이트보스 2010. 6. 30. 16:47

베푸는 나라 KOREA] KOICA, 베트남에 '희망의 학교'를 짓다

입력 : 2010.06.29 03:12

전쟁의 아픔은 너희 몫이 아니야…
민간인 피해 컸던 지역에 40개교 건립… 처음엔 反韓 감정 때문에 어려움 겪기도… 사업 9년… '한국' 이미지 많이 좋아져…

작열하는 태양이 베트남 땅에 내리쬐었다. 베트남의 5개 시(市) 중 하나인 다낭(Da Nang)에서 두 시간 정도 차를 내달리면 나오는 꽝남(Quang Nam·면적 1만438㎢)성. 점점 베트남 중부지역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동안 햇볕은 더 따갑게 쏟아졌다.

온통 넓은 들판과 우거진 수풀, 허름한 집들이 시선을 채웠고 베트남 전통 모자인 논(Non)을 쓴 사람들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지나쳤다. 푸르지만 습한 논두렁에는 단단한 뿔을 가진 물소들이 지나가고 윗옷을 벗은 베트남 농부들이 뜨거운 태양 열기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면적이 32만9560㎢로 남한의 3.5배지만 1인당 GDP가 1080달러(2008년말 기준)에 불과한 베트남. 그 중 중부지역은 영락없는 1960~70년대 한국의 모습이었다. 이 지역은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피해가 가장 컸던 곳으로, 아직 전쟁의 상흔이 많이 남아 있다.

지난 9일 오전 9시 30분, 꽝남성에서 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한 시간 정도 달려 인구 8만4477명이 사는 마을인 푸닌(Phu Ninh)에 닿았다. 이곳 '판 딘 풍 초등학교(Phan Dinh Phung Primary School)'에는 방학 중임에도 새까맣게 탄 30명의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모여 특별 수업을 받았다.

"고마워요, 꼬레아." 지난 9일 베트남 중부지역의 푸닌마을에 있는 판 딘 풍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선물한 색연필 필통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학교는 국제협력단이 2001년 지어준 것 으로 6개의 교실, 1개의 양호실과 교무실이 있는 아담한 하늘색 학교다. / 김성민 기자 dori2381@chosun.com
◆참혹했던 전쟁의 한이 서린 중부지역

약 30㎡(9평) 크기의 교실 안에 놓인 15개 좁은 책상마다 베트남 국어 교과서가 펼쳐졌다. 흑칠판 위에는 베트남의 국부(國父)인 호찌민 사진이 걸려 있고, 좌우로 'DAY TOT'(잘 가르치다) 'HOC TOT'(잘 배우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아이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책을 읽고는 손을 번쩍번쩍 들어 발표했다.

학교 복도 한쪽 편에는 '양국의 우정과 협력을 위해 한국이 학교를 지어줬다'는 문구와 태극기와 베트남기가 새겨진 현판이 붙어 있었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20분 동안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왔다는 밍(Minh·10)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장소가 있어서 매우 좋다"며 웃었다.

이 학교는 지난 2001년 정부 차원의 대외무상협력사업을 전담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지어준 것이다. 한국이 이곳에 학교를 지어준 것은 베트남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면서도 35년 전 벌어진 끔찍한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중부지역의 몇몇 마을에는 위령비가 있을 정도로 전쟁의 '한'이 서려 있다.

민간인 피해자가 몇명인지 정확한 통계도 없을 정도로 전쟁은 참혹했다. 꽝남성에서만 수십 건에 달하는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고 추정될 뿐이다. 이 전쟁에 한국군도 참여했고, 북위 17도선 이남 중부지역에 여러 한국군 부대가 들어왔다. 다낭에는 십자성지원단, 호이안과 출라이에는 청룡부대, 빈케와 푸캇에는 맹호부대, 닌호아에는 백마부대가 주둔했다. KOICA는 "전쟁 후유증을 가장 많이 겪는 빈곤 지역이자 우리 군 참전지역이었던 중부지방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양국의 과거사 문제 해결에 기여하자는 뜻에서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KOICA는 2000년 베트남 정부의 공식 요청서를 받아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중부지역 5개성(꽝남, 꽝응아이, 빈딘, 푸옌, 카인호아)에 40개 학교를 지어줬다. 박흥식 KOICA 베트남사무소 부소장은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를 싸늘하게 봤다"며 "전쟁의 상처로 다리가 잘린 사람이 와 '무슨 지원이냐'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베트남전쟁은 베트남 현지인에게도, 참전국인 대한민국에도 치유해야 할 아픔을 여러 가지 남겼다.

◆학교를 통해 이미지 개선

그림은 한국이 지어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그려 교실에 붙인 그림. 전통모자인 논(Non)을 쓰고 물소를 몰고 농사를 지으러 가는 모습 등 베트남의 정취가 가득하다.
KOICA는 2001년 5월 200만달러로 먼저 20개교를 준공했고, 2002년 3월 나머지 20개 학교 공사도 완료했다. 교실 6개, 화장실 1개인 작은 규모지만 학교는 하늘색으로 정갈하게 지어졌다. 지난 2009년에는 다시 학교를 찾아가 깨진 유리창과 고장 난 수도꼭지를 고쳐줬다. 판 딘 풍 초등학교 교장인 깐(Can)은 "한국이 지어주고 고쳐준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면서 한국의 이미지가 좋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첫 번째 학교에서 40㎞쯤 떨어진 듀이스웬(Duy Xuyen)에 있는 듀이 푹 2 초등학교(Duy Phuoc 2 Primary School)에서도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 학교의 교장인 훙(Hung)은 "학생들이 학교를 '한국 교실'이라고 부른다"며 "베트남과 한국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느껴져 감사하다"고 말했다.

3학년인 막내딸을 기다리던 홍(Hong·47)은 "큰아들과 둘째 딸도 전부 이 학교를 나왔으니 우리 가족은 한국과 연이 깊은 셈"이라고 말했다. 3학년인 푸(Phu·10)는 "한국이 예쁘게 지어준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놀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KOICA는 1991년부터 현재까지 베트남에 1억863만달러를 지원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이어 전체 지원대상국 중 3위에 해당한다. 현재 한국이 베트남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식수개발사업, 중부지역 종합병원 건립사업, 마약통제 행정역량 강화, 환경교육센터 설립 등 14건이다.

우리나라는 과거 개발경험에 기초해 지원을 신속하게 했다. 특히 중부지방에 지원을 집중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작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원조에 치중했다. 작년 한국과 베트남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외교 관계를 격상시켰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위해 베트남은 한국에, 한국은 베트남에 서로 중요한 국가가 된 것이다.

수업이 끝날 때쯤 박 부소장이 교단에 올라 말했다. "옛날 옛적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살았대요. 그중에 반은 북쪽으로 올라갔고, 반은 남쪽으로 내려갔답니다. 북쪽으로 올라간 사람이 한국인이 됐고 남쪽으로 내려간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이 됐대요. 베트남과 한국은 한 형제랍니다." 까맣게 탄 얼굴에 흰 눈동자를 반짝이던 베트남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