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17일간 국가정보원의 조사를 받고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로 송치된 김 씨와 동 씨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자리에 꼿꼿이 앉은 채 좀처럼 경계를 풀지 않았다. 검찰은 한 달간 이들의 얼어 있는 마음을 녹이는 데 주력했다.“검사님, 거기 컵라면 나도 좀 줘보세요.” 매일 조사 도중 함께 식사를 하며 이들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검사가 컵라면을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이들이 부탁했다. 컵라면 하나를 다 비운 뒤 “지금까지 여기서 먹었던 음식 중 라면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한국의 생활상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이들에게 영화와 뮤직비디오를 보여줬다. “저 친구가 그 아이 맞지요?” 이들은 유명 걸그룹에 속한 멤버 하나를 가리키며 기억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들은 가족에 관한 질문에는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표현하면서도 가족이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으려 했다. “꿈에 다섯 살배기 딸이 나타났습니다. 자기를 버려두고 간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겠다고 합디다.” 김 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검사의 질문엔 “우리 조국은 그렇게 너절한 곳이 아니다. 우리 임무가 성공했든 실패했든 우리 조국이 가족들을 잘 보살펴 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검찰도 마음을 열었다. 지난달 23일 검찰은 구형 논고를 통해 “이들은 뛰어난 명석함으로, 순진무구한 유머 감각으로 검사들을 놀라게 했다”며 “남북이 갈라진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적대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이들도 공감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 ‘감정을 가진 터미네이터’하지만 이들의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심은 무서울 정도였다. 두 사람은 조사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이 거론되면 급히 부동자세를 취하는 등 맹목적인 충성심이 몸에 배어 있었다. 이들은 ‘체포는 곧 변절’이라는 표현을 썼다. 두 사람은 “우리가 체포돼 조국을 배신했지만 조국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수사 과정에서 “지금이라도 세상 밖으로 나가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살해하라는) 임무를 완수할 것”이라며 “한국 정보기관을 허술하게 보고 준비를 완벽하게 해오지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사기관이 가장 우려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검찰 관계자는 “인간적인 면모를 갖고 있으면서도 폐쇄적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관을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 연민을 느꼈다”며 이들을 ‘감정을 가진 터미네이터’라고 표현했다.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