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만드는 미래… 국내 선진지를 가다 ■ 강진 초당림 |
뚝심으로 일군 조림… 헐벗은 산이 울창한 산으로 김기운 옹 45년간 강진 일대 1000㏊에 인공림 조성 편백 등 경제성 있는 수종 심어… 자체 제재소까지 목백합 한국 최대 조림지… '경영 모델 숲' 선정도 |
입력시간 : 2010. 07.08.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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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림 연수원에서 바라본 현재 초당림 모습. 강진군 제공 | |
"여기부터 저기 보이는 곳까지 모두 초당림입니다. 좌우를 보세요, 새까맣게 보이죠." 강진 초당림으로 가는 차안에서 동행한 강진군청 장경철씨가 칠량면 명주마을 입구에서 기자에게 한 말이다. 초당림의 초입부터 아름다운 전경을 속속들이 안내해주고 싶은 들뜬 기대감이 묻어났다. 사실 '저기'라고 가르킨 곳은 장흥 천관산 아래로 족히 10㎞ 떨어져 있을 듯 했다.
장 씨의 말대로 고개를 들어 좌우를 돌아보니 쭉쭉뻗은 삼나무와 편백이 장관이었다. 미끈미끈한 나무들이 지나가는 뭇사람들을 향해 몸매를 과시하는 듯 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상당한 거리에 있는 산의 형상은 들쭉날쭉 함 없이 녹색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온통 녹색이었다. 몇년전 독일 프랑크프루트 취재중 봤던 흑림이 연상됐다.
초당 제재소를 지나 초당 연수원쪽으로 가는 길은 더 운치가 있었다. 도로 변에서 보았던 것들보다 더 당당하고 우람한 편백이며 삼나무, 소나무들이 군의장대의 사열병처럼 도열해 있었다. 나무 아래 지나는 기자 일행은 사열을 받는 지휘관처럼 어깨가 들썩였다. 오랜만의 누려본 마음의 호사였다.
초당림은 강진 칠량면 명주리에서 장흥 관산읍 부평리와 성산리일대에 분포돼 있다. 면적으로는 1000㏊다. 이 일대에 들어선 초당림의 현재 모습은 대부분 인공림이다. 독림가인 김기운 백제약품 대표 회장의 땀과 눈물이 배인 결과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산에 미친 그의 집념에 의해 이뤄진 대역사였다.
올해로 92세인 김기운 회장은 45년간을 산과 함께 살았다. 전쟁의 참화로 헐벗게된 대한민국의 산을 녹색으로 뒤덮게한 1세대 독림가 중의 한 명이다. 오로지 산이 좋아 산에 그의 모든 것을 투자했다. 땀과 눈물만이 아닌 '적지 않은'돈도 들어갔다. 기업가인 그가 경영의 논리로 본다면 단지 어렸을적 품었던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무모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산림투자의 자본회임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나무들이 묘목을 심어 벌채를 해서 다양한 용도로 판매, 돈이 만들어지기 까지 빨라야 20~30년, 길게는 100년이 걸린다.
실제 사람 같으면 18~29세 정도면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데 나무의 경우 벌기령에 따라 단기수인 목백합 20년, 소나무 40~50년, 편백 80~100년이 소요된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산림투자에 대한 주변의 반대와 만류도 심했지만, 그의 결단은 요지부동이었다.
소학교 시절 먼 곳까지 걸어 다니던 등하교 길 나무가 없어 비바람을 맞았던 '짠한 기억'이 나무를 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64년 강진 칠량면 명주리 일대 산 621㏊를 매입하고 독림가의 길에 들어섰다. 목포에 사업처를 둔 김 회장이 강진을 선택한 것은 그의 생활권인 목포와의 1시간 거리와 주변에 마을이 있고, 대단위 조림시 인력동원이 용이한 점이 고려됐다.
하루에 600명이 동원된 김 회장의 조림 사업장은 당시 일자리가 많지 않던 시대라 굉장한 인기였다.
어렸을 적 조림사업에 참여했다는 김 모 씨는 "지금 기억으론 하루에 나무를 심고 15원을 받은 것같다"면서 "그 시절엔 일자리가 많지 않아 서로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어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의욕을 갖고 시작한 조림은 예기치 못한 결과들이 나왔다. 한 해로 나무가 말라 죽거나, 동사에 죽거나 병해충에 죽는 경우가 많아 많은 손실을 입었다. 심어만 놓으면 잘 클 줄 알았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당연히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반대도 거셌다. 조림업에 뛰어 들었을 때보다 그 강도가 더 심했다.
그러나 김회장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본에 건너가 나무 키우는 방법 등의 전문 서적을 구입해 실력을 키우는 일에 매달렸다.
초당림의 조림 사업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된다. 분기점은 1980년도다. 64년부터 이 기간은 치산을 목적으로한 조림이었다. 1980년을 전후한 2기에서는 경영의 논리들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무작정 심는 것에서 편백, 백합나무 등 경제성 있는 수종들이 집중됐다.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뜻이 크다. 이렇게 볼 때 초당림은 2008년까지 총 506만주의 나무가 조림됐다. 이는 기후요건 등에 의해 나무들이 죽어 보식한 경우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두차례 정도 갱신된 나무 양이다.
뚝심으로 이어간 김회장의 조림 노력은 서서히 빛을 발해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개인 최대 규모의 조림 면적과 다양한 수종들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초당림에서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목백합은 국립산림과학원이 이곳에서 채종해 연구, 한국 10대 권장수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속성수인 목백합은 바이오매스를 생산해내는 주재료로서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 초당림은 목백합의 한국 최대 조림지다.
또한 지난 2007년 산림청의 녹색대상은 물론 2008년 산림청에서 한국 경영숲의 모델로 평가받았다. 대단위 산림을 깔끔하게 잘 키워낸 김회장에 대한 산림당국의 공식적인 찬사였다. 한국임학학회는 김회장이 가꾼 숲의 이름을 '초당림'으로 명명, 하기도 했다.
지금도 매달 한 차례 정기적으로 초당림을 찾아 나무들을 살피고 있는 김회장은 무엇보다 관리가 안되고 있는 주변의 산들을 보면 고치고 싶은 마음에 여전히 산에 투자하고 있다.
김영 초당림 농장장은 "회장님께선 해외 출장중에도 매일 국제전화로 초당 숲 관리에 대해 보고를 받으셨으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부들과 함께 톱 등 연장을 들고 나무가지치기 등을 하셨다"고 귀띔했다. 자체 제재소 까지 갖추고 한국의 대표적인 경영림으로 자리매김한 초당림은 이젠 산림의 공익적인 기여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동안 학교, 임학 관계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제공되던 숲을, 개인에게까지 개방을 서두르고 있다. 숲의 혜택을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하는, 김회장의 의지에 따라서다.
이용규 기자 yg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