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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기획'을 마치며

화이트보스 2010. 7. 13. 11:28

'사다리 기획'을 마치며

입력 : 2010.07.13 03:16 / 수정 : 2010.07.13 09:52

김경근 고려대 교수

풀죽은 제자들에게 '희망의 사다리' 보여주고 싶다

나는 1978년 대입을 치르려 광주광역시에서 올라와 서울 땅을 처음 밟았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가난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었다. 동기 중에 이름난 재벌집 아들이 있었지만 졸업한 뒤에야 알았을 만큼 표 내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 시절 시골 출신 고학생들에게는 '어려운 환경에서 이만큼 왔다'는 자부심,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대학은 다르다. 2000년대 초반, 사범대학 재외국민전형과 농어촌특별전형 출신 학생의 지도교수를 동시에 맡았을 때 그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개인차가 있지만 재외국민전형은 가정 배경이 좋은 학생이 많고 농어촌특별전형은 시골에서 가난을 맛본 학생이 많다. 두 집단 사이에 수능 점수는 큰 차이가 없다. 과외 안 하고 대학에 붙은 후자 쪽이 어쩌면 더 우수한 인재들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재외국민전형 학생들은 활달하고 여유가 넘치는 반면, 농어촌특별전형 학생들은 눈에 띄게 풀이 죽어 있었다.

농어촌특별전형 출신 A군을 연구실에 불러 상담하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격려해주려 불렀건만, A군은 불안한 얼굴로 "저…. 제가 농어촌특별전형이라는 걸 다른 애들도 알고 있나요?"라고 했다. A군은 캠퍼스 내에서 마주쳐도 대부분 모른 척하고 지나쳤다. 재외국민전형 B군이 내 얼굴을 보면 멀리서부터 "선생님!" 하고 달려와 넙죽 인사하는 것과 너무 달랐다.

내가 사다리가 무너지는 현상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그때 경험이 있다. 저소득층 제자들은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무척 힘들어했고, 입학 단계에서 받은 조그만 배려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을까 늘 불안해했다.

이런 현실을 목도하면서 숱한 어려움을 헤치고 여기까지 온 이 학생들마저 주저앉고 만다면 우리 사회에 희망의 사다리는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사다리가 사라진다' 기획을 통해 정부와 정치권과 기업이 이 문제가 얼마나 절실한지 관심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한다. A군처럼, 가난하다는 이유로 위축되는 젊은이가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의 앞날도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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