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호구잡힌 한국Ⅱ'
- 포스트 상세 정보
- 2010-07-22 08:55:39
- 조회 (2703) | 추천 (0)
앞의 글에 이어집니다. 혹 읽지 않으셨으면 다음 사이트에 들렸다 오세요.
*************
2002년 7월 DJ시절이었습니다. 한덕수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현 주미대사)이 낙마(落馬)합니다. 잘 나가던 분이 하루 아침에 옷을 벗게 된 겁니다.
뭔 일이었을까요?
그 해 들어 마늘 값이 폭락합니다. 중국산 마늘이 쏟아져들어온 때문이지요. 2000년 마늘협상의 여파였습니다. 6월들어 농민들이 일어섭니다. 전국 각지 농촌에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지요.
'이러다간 농민 다 죽는다, 중국 산 마늘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를 다시 연장하라!'
그런데 정부는 웬지 꿀먹은 벙어리였습니다. 가타부타 얘기가 없었지요. 농민 이익을 대변한다는 농협중앙회가 나섭니다. 중앙회는 당시 산자부 무역위원회에 '중국 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 연장'을 신청합니다. 그러나 농민들은 무역위로부터 엉뚱한 답을 듣습니다.
'2002년 말로 중국산 마늘 세이프가드 조치가 만료됐다'
뭔소리?
다시 2년 전 마늘 협상으로 돌아갑니다. 당시 중국은 '핸드폰'을 내세우며 한국 협상팀을 거세게 몰아갑니다. 그들은 협상을 질질 끌며 하나 얻으면 또 다른 것을 요구했습니다. '마늘 수입을 원래대로 해줄게'라는 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중국측은 '말 나온 김에 마늘 수입을 완전 자유화하라'고 밀어붙였습니다. 어쩌겠습니까. 호구잡혔으니 물러날 밖에요. 그래서 나온 게 바로 부속합의입니다. 그 합의서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2003년 1월1일부터 한국 민간기업이 (마늘을)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2002년 여름 서울에서 또 다시 '마늘 파동'이 일어납니다. 정확히 1년 사이로 세 번째 벌어진 일입니다. '치욕적인 협상이다', '다시 협상하라'는 등 여론이 들끓었지요. 농민들이 서울로 올라와 연일 데모를 벌였습니다. 언론에서는 졸속협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누가 협상 책임자지?'
'통상교섭본부장'
'당시 누구였지?'
'한덕수 경제수석'
'통상교섭본부장'
'당시 누구였지?'
'한덕수 경제수석'
그렇게 한 수석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겁니다. 그러나 농민들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재협상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국제적 망신이었으니까요. 정작 농민들을 주저 앉힌 것은 월드컵이었습니다. 월드컵 4강만 아니었으면 더 높은 사람이 자리를 내놔야 했을 겁니다. 딱한 일입니다.
한덕수 주미대사는 YS-DJ-노무현-MB 정권에 이르기까지 요직을 두루 거치고 있는 경제관료입니다. 지난 정권에서 총리에 오르기도 했지요. 그가 새로운 자리로 옮길 때마다 '마늘'이 발목을 잡습니다. 야당은 청문회에서 마늘파동을 물고 늘어지며 그를 공격하지요.
맞습니다. 마늘파동은 우리나라 외교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외교관들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습니다. 더 근본적인데 원인이 있었던 겁니다.
제3차 마늘파동이 한창 진행중이던 2002년 7월 20일 제주도 애월체육관.
이곳에서 민주당 지구당 개편대회가 열립니다. '리틀 DJ'라는 한화갑 당시 민주당대표가 참석해 축사를 합니다. 축사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내 지역구인 전남 무안·신안군이 전국 마늘 생산의 25%를 차지한다. 2000년 중국산 마늘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취한 것도 내가 주장한 것이다."
이건 또 뭔소리?
다시 2000년으로 돌아갑니다. 그 해 4월 초 정국은 총선을 2개월 앞두고 표심을 얻기 위한 정책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여당이었던 민주당 선거대책위가 '획기적인 안'을 내놓지요. 중국 산 수입 마늘에 대한 긴급 관세 부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민주당은 당정협의도 거치지 않은 이 '조치'를 밀어붙입니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무릇 정치인들은 '표'를 먹고 사는 존재니까요. 결국 총선을 10일 앞두고 세이프가드가 발표됩니다.
'농민표를 의식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난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야 마늘파동의 원인(源因)이 어디 있었는지 드러났습니다.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 지 우리는 이제 다 압니다. 세 차례의 마늘파동을 거치는 동안 우리는 중국에 호구만 잡혔을 뿐입니다. 마늘파동을 기점으로 한국과 중국의 외교적 위치는 역전되게 됩니다.
당시 마늘협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한 관리는 저와도 친합니다. 그는 마늘 협상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웠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외교건, 전쟁이건, 승패를 가르는 요인은 적의 역량이 아닌 내부 결집 여부에 있다."
천안함 사건이 터졌습니다. 중국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한반도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 '전쟁'을 치를 만한 내부 결집이 잘 갖춰졌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긴 문장으로 마늘파동을 언급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한우덕
Woody Han
Woody Han
저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는 '차이나 인사이트'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주 2회 중국 관련 다양한 뉴스와 이야기, 칼럼 등을 묶어 이메일로 전해드립니다. jci@joongang.co.kr로 신청하시면 보내드립니다. 보내실 때 성함, 하시는 일, 연락처(전화번호) 등을 간단히 보내주세요.
☞ Woody Han님의 추천 포스트
'산행기 > 신중국 6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억 함수의 반전 드라마' (0) | 2010.08.23 |
---|---|
중국 진출기업이 꼭읽어야 할 기사 (0) | 2010.08.16 |
수출공장' 중국, 내수로 눈 돌려 (0) | 2010.06.26 |
'소비폭발' 중국내륙으로 뛰어들라 (0) | 2010.06.24 |
'세계의 공장' 중국, 저임금 시대의 종언] [1] 中 '연쇄자살 충격' 임금인 (0) | 2010.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