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사회 , 경제

'원룸세대'에 대한 잘못된 진단

화이트보스 2010. 8. 10. 11:38

'원룸세대'에 대한 잘못된 진단

  • 손용중 학원강사

입력 : 2010.08.09 23:11 / 수정 : 2010.08.10 11:17

7일자 A6면의 '한나라, 원룸 공포증'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여기서 '원룸'은 젊은 층의 환유(換喩)이다. 기사에서 한나라당 관계자는 지난 지방선거 때 원룸 밀집지역에서 야권에 몰표를 던졌다고 우려를 토로했다. 또한 그들(젊은 층)의 정치적 성향을 함수관계로 분석한 것은 적절했다. 한나라당이 그들 원룸 세대를 정치적 우군으로 돌려세우지 않으면 앞으로의 정치 일정이 험난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젊은 층과의 소통이라는 한나라당 고민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김성식 의원의 "청년실업 문제와 경제성장에서 소외돼 있다는 젊은 층의 불만이 원룸에서 폭발한 것"이라는 진단은 허술한 느낌이다. 청년실업 문제와 젊은 층의 경제성장에서의 소외 문제는 지금이나 전 정권 혹은 그전 정권 시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즉, 함수관계에서 독립변수로의 폭발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우리의 문화적 현실이다. 언급된 독립변수의 개선이 바람직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로 되돌아가면, 그 독립변수의 개선이 그래프의 눈금을 얼마간 흔들 수는 있어도 그 흔들림은 미동(微動)에 그치고 말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새로운 유권자로 편입될 지금의 고등학생들 중에 한나라당에 투표하지 않을 확률이 70%를 상회한다면, 그것이 지나친 과장일까? 필자의 생각으론 개연성 짙은 예측이다. 이런 엄연한 현실을 진단하는 데에 주저하거나 무딘 날을 들이댄다면 그 어떤 처방전도 쓸모없는 휴짓조각이 될 것이다. 그럼 이 '엄연한 현실'을 유발한 동인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교육 현장이다. 교육 환경의 헤게모니가 너무 한쪽으로 왜곡된 채 쏠려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공교육 현장에서, 사교육 현장에서, 방송이나 인터넷 강의에서 한쪽 성향으로 매만져지고 주조(鑄造)된 상당수 젊은이들에게 유연한 사고의 탄성(彈性)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고등학생인, 필자의 딸에게 학교에서 제공한 '논술·심층면접 자료집'의 도를 넘은 편향적 편집에도 필자는 놀라지 않았다. 필자에게는 이미 익숙했기 때문이다.

교육의 가능성을 지지하는 중요한 전제는 가소성(可塑性: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하는 성질)이다. 우리 교육환경의 거푸집이 심하게 왜곡됐다면 그것부터 바로잡을 일이다. 불행히도 이미 호미로 막을 상황이 아니다. 가래로도 막을 수 없다면 그 어떤 대수술이라도 각오해야 한다. 교육은 가치지향적이다. 하지만 그 가치는 중립적이어야 하고, 다양한 사고의 유연성을 내포해야 한다.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특정 정파를 염려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