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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의 馬山을 가슴에 묻어야 하나

화이트보스 2010. 8. 10. 11:39

'가고파'의 馬山을 가슴에 묻어야 하나

입력 : 2010.08.09 23:11 / 수정 : 2010.08.10 11:03

정미경

이름을 잃는 것은 존재를 잃는 것이다
도시는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만의 것 아니다
그곳을 스쳐간 사람들의 삶과 추억이 녹아있다
천상병 시인이 즐거이 소풍 갔던 곳 '잔잔한 고향 바다'
가곡 가고파가 탄생한 내 영혼의 안식처
馬山이란 이름은 영영 가슴에 묻어야만 하나

얼마 전 편집자 J가 전화를 했다. 책을 다시 찍는다며 혹 수정할 것이 없느냐 물었다. "작가 약력에서 '마산 생(生)'이라는 부분을 지워주세요" 했더니 내 심사를 알 리 없는 그녀는 그러겠노라 시원스레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새로 찍은 책이 도착했다. 나는 책의 표지를 열고 몇개의 글자가 사라져버린 부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마음 한구석이 툭 뜯어지고 그곳으로 무언가가 술술 쏟아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밀려왔다.

근래에 나는 고향을 잃은 여자가 되었다. 고향이 북녘도 아니고 수몰이 된 것도 아닌데,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대답할 수 없다는 어느 유행가의 주인공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해던가. 마산과 창원·진해를 통합한다는 얘기를 흘려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는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신문에서 그 후속 기사를 보았다. 통합은 기정사실이었고 이름마저 바꾼다는 것이었다. 뒤늦게 고향 마산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펄펄 냈다. "너희들, 바보 아니야? 이 지경이 되도록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 수화기 너머에서 친구는 말이 없었다. "그러는 너는?" 묻고 싶었겠지.

통합의 까닭이 수긍할 만한 것이었다면 그렇게 화가 나진 않을 것이다. 행정적 편의와 경제적 이득이라니. 모든 가치의 기준이 돈이 되어버린 시대지만 한 도시의 가치를 전자계산기로 간단히 산출하고 땅따먹기 하듯 합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폭력적 사고방식이 나를 아프게 했다.

도시의 이름이 없어진다 해도 그 땅과 사람은 변함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은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이름을 잃는 것은 존재를 잃는 것과 같다. 한 도시는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 이름에는 그곳을 스쳐간 사람들의 삶의 조각과 내밀한 추억들이 응축되어 있다. 내 안에도 마산의 그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자화상(自畵像) 하나가 들어 있다.

바닷물이 밀려나간 개펄에 여자 아이 하나가 엎드려 있다. 종아리엔 뻘이 잔뜩 묻은 채 자잘한 게나 고둥 같은 걸 집어 봉지에 조심스럽게 담곤 한다. 수그린 단발머리 저 너머로 밀물이 밀려든다. 마음을 온통 개펄에 빼앗긴 아이는 그걸 알지 못한다. 맨발에 파도가 와 닿고서야 아이는 달리기 시작한다. 파도는 한순간 허리를 감는다. 바닷물이 그리 힘이 센 줄을 미처 몰랐다. 가까스로 기슭으로 나왔을 때 물가에 벗어놓았던 신발은 자취가 없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와 엄마 앞에 서서야 목놓아 울었다. 울면서도 파도에 휩쓸려 죽을 뻔했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는다. 그때까지도 움켜쥐고 있던 봉지 안의 게들은 죽거나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엄마는 쓸데없는 걸 줍느라 옷을 버렸다고 지청구를 하시며 그것들을 마당가 포도나무 아래 묻어버렸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먹는 것 외엔 아무 관심이 없던 어린 내가 우주 안의 외로운 단자인 자신의 존재와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인식한 날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너무도 강렬해서 내 존재의 일부가 되었다. 이 기억은 다시 맨발로 걸어오던 언덕길 주변으로 확장된다. 길가에 있던 친구의 집.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3·15학생의거 기념탑. 팥빙수가 맛있던 분식집. 관람 불가 영화를 보다 어깨에 조용히 내려진 선생님 손길에 기절할 뻔했던 극장. 또, 또….

그랬다. 내게 고향은 흙과 공기와 바다가 어우러진 영혼이었다. 그 도시에서는 어디서나 바다가 보였다. 산기슭의 여학교에서도 고개만 돌리면 고요한 바다와 앙증맞은 섬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한없이 무딘 자의 영혼마저 일깨울 만한 그 도시의 어떤 기운이 나를 결국 문학으로 이끌었다고.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음모론은 꽤 널리 퍼져 있다. 지난해 여름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 있는 그의 생가를 찾았을 때다. 인파에 떠밀리며 삐걱거리는 마루를 걷는데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가 가공의 인물이라 하더라도 영국은 국운을 걸고 그 사실을 은폐하려 들겠구나. 그가 아니라면 불로초를 나눠준다 한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구석진 곳으로 달려왔을까. 당대 양식을 재현한 극장에서는 밤마다 그의 연극이 상연되었지만 표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그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우산과 찻잔을 샀다. 그 찻잔에 커피를 마실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비 내리던 그 거리의 풍경이 떠오른다. 셰익스피어로 가득 차 있던, 작아서 더 살갑던 그곳이….

마산 역시 그 못지않게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해준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했다. 귀천(歸天)의 시인 천상병은 마산에서 자라나 학창 시절을 보냈다. 천진난만하게 살다 세상을 떠난 그에게 마산은 즐거이 놀다 돌아간 '소풍지'였을 것이다. 마산중학교 시절 어린 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일깨워준 국어선생님이 김춘수 시인이다. 그는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고향 떠난 자들의 향수를 촉촉이 적셔주던 가곡 '가고파'를 지은 이은상 역시 마산에서 태어나 그 쪽빛 바다를 보며 자라난 사람이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고향을 잃은 자, 이 노래를 부르며 그 이름을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것인지. 머지않아 그 이름을 다시 부를 날이 있으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