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영도
등산의 세계는 生과 死가 공존하는 별세계다
등산은 과학이나 증명이 필요한 게 아니고
육체적 노동을 거쳐 도달하는 정신적 고양의 세계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기분이 착잡해진다. 남다른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60년 전 9월 14일은 학도병 중대 분대장으로 당시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경주의 북방 형제산을 공격하다가 친구들 60명 가운데 40명가량이 숨진 날이고, 33년 전 9월 15일은 내가 이끈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고상돈 대원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태극기를 날렸던 날이다. 형제산은 높이 285m의 야산인데, 여기서 말 그대로 생지옥을 체험했으며, 에베레스트에서는 인생 최고의 환희에 젖었다. 그러나 6·25는 이제 사어(死語)가 되었고, 에베레스트는 평범한 고산의 하나로 평가절하됐다. 그토록 '접근 불허'라던 히말라야 요새가 요즘에는 하루에 100여명이 오른다니 할 말이 없다. 어느 산악인이 "에베레스트는 이제 산악인의 산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에베레스트는 과연 그런 곳일까.30여년 전 에베레스트에서 돌아오니, 전국 각 신문이 연일 우리의 세계 최고봉 등정을 대서특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에는 대참사라도 있기 전에는 에베레스트 관련 기사를 좀처럼 보기 어렵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최근 들어 언론에서 오은선 기사를 자주 다루고 있다. 히말라야 자이언트 14봉을 우리나라 여성이 세계 최초로 올랐느냐, 아니냐는 얘기다. 하지만 알피니즘이 무엇인가 아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는다. 등산이 무상(無償)의 행위이며, 경주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은선의 히말라야 오디세이는 순수한 개인의 문제다. 등산가로 자기가 꿈꾸는 이상을 향해 가는 길이며 인생의 과정이다. 그가 여성으로 누구보다 앞서 그 8000m 고소, '죽음의 지대'를 14회나 체험했다는 것은 놀라운 이야기며 높이 평가할 만하다. '죽음의 지대'가 어떤 곳인지는 가본 사람 아니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세계 최고의 등산가로 16년에 걸쳐 히말라야 자이언트 14봉을 역사상 처음으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네팔 카트만두에서 오은선과 만나 그녀의 성취를 주저 없이 축하했다. 나는 그 기사를 보며 메스너의 모습을 머리에 그렸다. 1978년 그는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오른 뒤 하산 길에 8000m 사우스콜에서 설맹(雪盲)과 추위, 피로를 견디다 못해, 파트너인 페터 하벨러에게 울며 매달렸던 일이 있다. 그러한 체험이 있었기에 오은선을 바라보는 메스너의 감회는 남달랐으리라고 나는 본다.
알피니스트는 휴머니스트여야 한다. 죽음의 지대에서 자기의 한계 상황과 대결하는 인간이라면,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을 인식하고 동정하며 관용할 줄 알아야 한다. 불세출의 알피니스트 헤르만 불이 1953년 낭가파르바트봉을 단독으로 첫 등정하고, 가까스로 고소(高所) 캠프로 돌아오자, 그를 기다렸던 친구가 불을 껴안고 울었다. 등정 여부는 묻지도 않았다. 다만 살아 돌아온 것을 기뻐했던 것이다. 헤르만 불이 남긴 '8000m 위와 아래' 책에 나오는 눈물겨운 장면이다.
등산의 세계는 경쟁과 관계없이 생(生)과 사(死)가 공존하는 별세계다. 오은선의 문제를 놓고 지금 국내·외가 제법 시끄러운 모양인데, 나는 여기서 철학의 빈곤을 본다.
등산은 과학이 아니며, 증명이 필요한 세계가 아니다. 육체적 노동을 거쳐 도달하는 정신적 고양(高揚)의 세계다. 그렇지 않고서는 250년의 세계 등산사 속에 부침(浮沈)한 위대한 선구자들의 의식과 행위를 설명할 길이 없다.
전세기 중엽은 등산계의 거인들이 운집했던 보기 드문 시대였다. 하인리히 하러, 리카르도 카신, 헤르만 불, 발터 보나티, 리오넬 테레이 그리고 가스통 레뷔파 등, 이 기라성 같은 존재들은 모두 떠나고 지금 보나티만 남았다. 그런데 그는 당시의 산악계가 시기와 질투로 남을 비방하고 폄하하는 것을 견디다 못해, 1965년 마터호른 북벽을 겨울철에 첫 단독 등정하고 알피니즘의 세계를 영원히 떠났다.
나는 오은선의 히말라야 오디세이를 완벽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사실 세상에 완벽은 없다. 서구사회에서 꼬집는 알파인 스타일 등반 문제는 그쪽의 주장이 옳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와 조건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진 등산국과 후진 등산국인 우리 사이에는 넘어야 할 갭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4000m의 알프스가 있는데, 우리는 2000m도 안 되는 야산밖에 없다. 오은선은 여기서 자랐다.
1977년 에베레스트에 갔을 때,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1000달러 정도였고, 등정하고 돌아오니 수출고 100억달러를 달성했다고 국내가 떠들썩했다. 일본의 경우 1956년 그들이 히말라야 자이언트의 하나인 마나슬루(8156m)를 세계에서 처음 등정했을 때 역시 수출고가 100억달러였다.
우리가 오은선 문제를 놓고 시시비비하기보다는, 세계 250년 등산의 역사 속에서 뒤늦게 출발한 우리 한국이, 고미영과 오은선이라는 뛰어난 여성 등반가를 세계무대에 내세우게 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인식을 새로이 갖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