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사회 , 경제

내 평생 못 찾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화이트보스 2010. 9. 17. 11:08

내 평생 못 찾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 세스 쇼스택(Shostak)·SETI(외계지적생명체탐색) 연구소 선임 천문학자

입력 : 2010.09.16 22:21

세스 쇼스택(Shostak)·SETI(외계지적생명체탐색) 연구소 선임 천문학자

머나먼 행성 어디엔가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지 않을까
外界 생명체 탐사에 나선 한국·이탈리아·미국
지금껏 어떤 신호도 찾은 게 없다
설령 신호를 못 찾더라도 그게 바로 탐험의 본질 아닌가

지구 대기권 너머 어디엔가, 우주의 캄캄한 허공 한구석에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바로 지금, 우리만큼 똑똑한 다른 생명체가 밤하늘의 한 점 빛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느 별 주변을 빙빙 돌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외계(外界) 지적생명체 탐사'라고 부르는 연구에 참가 중인 천문학자다. 정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정교한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하늘을 훑으며 천체 어디선가 그 어떤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보내는 신호를 잡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머나먼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공상과학소설 속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사실 외계생명체는 그동안 수많은 소설·게임·영화·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다뤄졌다. 가상의 외계생명체가 많이 등장하다 보니 사람들은 종종 이들이 실제 존재하며 인류가 광활한 우주를 다른 사회와 공유한다고 믿어버린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5%가 우주에 인류 외에 다른 문명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나도 그런 믿음을 갖고 있었다. 열한 살 때부터였던가. 매주 극장을 찾던 나는 기괴하게 생긴 외계인의 비행체가 지구를 방문하러 오는 모습을 캄캄한 극장 안에서 홀린 듯 지켜보곤 했다.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물론 첫 번째 버전!)', '그들은 다른 공간에서 왔다(They Came from Outer Space)', '지구 최후의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외계인들은 못생겼을 뿐만 아니라 아주 험악하게 묘사됐다. 이 영화들은 엉터리 줄거리와 싸구려 시각효과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린 마음에 천문학 그리고 외계생명체에 관한 꿈을 심어주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나는 대학에서 천문학을 공부하게 됐고 전파 망원경의 사용법을 배웠으며 머나먼 은하에서 전해오는 우주 잡음을 연구하게 됐다. 그런 연구도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나는 망원경을 지구와 가까운 별로 살짝 틀어서 차디찬 성간(星間)물질에서 나오는 지루한 신호가 아닌, 다른 생명체가 보내는 신호를 찾고 싶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마다 남몰래 실험용 전파망원경을 가까운 별로 돌려 몇 분씩 외계생명체의 신호를 잡아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수상한' 신호는 한 번도 찾아내지 못했다.

1990년 우연히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게 되고 이어 지구 밖 생명체를 탐구하는 비영리 기구인 'SETI 연구소'에 자리를 잡았다. 인류 외의 생명체를 찾아나서는 탐사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이다.

수십 년 동안의 탐색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삑' 소리 하나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수천 개의 채널을 동시에 가동할 수 있을 정도로 장비가 막강한데도 말이다. 텔레비전이나 위성에서 오는 신호가 아니라고 판명돼 우리를 흥분케 했던 수천 개의 그 특이한 파동들…. 하지만 이들 중 그 어떤 것도 외계생명체가 보냈다고 증명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낙관적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5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넓은 분지엔 외계생명체 탐사 전용 안테나인 '폴 앨런 전파망원경'42개가 밤낮없이 '그들'을 찾고 있다. 계획대로 이 안테나가 350개로 확대된다면 20년 안에 수백만 개의 별에서 오는 신호를 살펴보게 된다. 지난 50년간 인류가 살펴봤던 별의 무려 1000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 정도로 많은 별을 들여다본다면 외계에서 누군가가 보내는 신호를 잡아낼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

연세대의 이명현 박사 연구팀처럼 한국에서도 비슷한 탐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나를 낙관론자로 만든다. 전문 과학자들로 이뤄진 외계생명체 탐사 팀이 있는 나라는 한국·이탈리아·미국 세 나라뿐이다. 지난해 대전을 찾았을 때 만난 한국 SETI 관련 과학자들의 열정은 한국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리스트에 올리게 했다.

혹시라도 신호가 잡히게 된다면…. 내가 만나본 많은 언론인은 외계생명체로부터의 신호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뉴스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외계생명체가 엄청나게 흥미로운 지식을 전파에 실어 보내오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을 모두 뒤집을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될지 모른다. 수백 광년 떨어진 곳에서 전파망원경으로 신호를 보낼 정도면 기술이 인류보다 훨씬 진보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고의로 보낸 것이 아니라 어쩌다 흘린 전파를 우리가 포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더라도 그 메시지는 우리가 어릴 때 믿어 의심치 않던 그 꿈을 현실로 바꿔줄 것이다. 우주 저 멀리 누군가 존재함을 깨닫는 것.

그 어느 날 외계생명체의 신호를 찾아낸다면 인류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탐험이 그렇듯 내가 찾는 그 무엇을 결국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닿지 못할 수도 있는 그 무엇을 열성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 그것이 바로 탐험의 본질 아니겠는가.

(이 글은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던 세스 쇼트택씨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것으로 국제부 김신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