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국정원장은 28일 국회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물 건너간 것이냐'는 질문에 "금강산 사업과 같은 실무적·개별적 수준의 해법으로는 남북관계의 변화가 어렵다. 보다 큰 틀의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 원장은 "이벤트성 정상회담은 안 할 것"이라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는데 잘 진척이 안 된다"고 했다.
남북 간에는 최근 적십자회담, 군사회담 같은 실무회담이 열렸지만 천안함 폭침과 북한 핵 같은 대형 이슈가 남북관계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북한 체제에서 천안함 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핵 포기 같은 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일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정상회담이 남북관계를 푸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일의 입맛대로 의제(議題)가 결정되고, 김정일의 '통 큰 결단'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면 과거 회담이 왜 '퍼주기' 논란으로 이어졌고 이산가족 문제 같은 인도적 사안에 대해 제대로 논의조차 못했는지 먼저 냉철히 살펴봐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을 넉 달 앞둔 2007년 10월 김정일과 만나 '10·4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합의 이행에 50조원이 넘는 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명박 정부는 10·4 공동선언이 북한 핵 같은 당면한 현안을 풀지 못하면서 우리측에 엄청난 부담만 안기는 합의라고 비판했고, 합의 이행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북한은 "10·4 합의 이행 없이는 남북관계의 근본적 개선은 없다"는 입장이다. 다음 번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은 똑같은 요구를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여기에 어떤 논리로 대응할 것인지 준비해야 한다.
이 정부의 임기도 2년 조금 넘게 남았다. 만약 정상회담에서 정부가 대규모 대북 경협(經協)을 약속한다면 다음 정권이 어떻게 나올지도 미지수다. 남북 정상회담은 결코 남북문제를 푸는 만능열쇠가 아니고, 무리하게 서두를 경우 역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김정일과) 만남을 위한 만남은 하지 않겠다. 임기 중 한 번도 안 만나도 된다는 입장을 일관성 있게 지키겠다"고 했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대통령의 이 다짐을 되새겨가며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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