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동 조선내화·전남일보 명예회장 별세, ‘우리나라 내화물 산업의 영원한 리더’타계 |
입력시간 : 2010. 10.30. 1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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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내화물 제조 그룹인 조선내화 창업주이자 조선내화 및 전남일보 명예회장인 성옥(聲玉 ) 이훈동(李勳東) 선생이 30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1917년 10월 11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성옥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내화물(높은 온도에도 견디는 물질) 원료인 납석 광산의 직원으로 취업한 이래 평생을 한 우물만 판 국내 내화물 업계의 산 증인이었다. 성옥 선생은 목포상공회의소 회장을 21년 동안 역임했으며 성옥문화재단과 전남일보사를 설립해 호남권 경제 활성화와 인재 육성 및 언론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인을 일러 ‘국민 모두가 본받을 만한 일생을 사신 분’이라고 칭송한 바 있다.
고인은 일제하인 1932년 당시 16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 전기공업주식회사에서 운영하던 해남 성산의 쇼와(昭和) 광업소의 견습사원으로 특채돼 평생의 업인 내화물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 해방 후인 1947년 창립된 조선내화화학공업주식회사의 상무로 경영에 참여했다가 1953년 37세 때 조선내화 대표이사에 취임,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에 들어섰다. 조선내화는 중공업 중흥에 필수적이지만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특수성 때문에 6·25 전쟁 당시 완전히 파괴됐으나 고인의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에 재건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고인은 1974년과 1978년 잇따라 조선내화 포항 1, 2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1986년 광양공장을 세워 우리나라 제철사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한·중 수교와 함께 조선내화는 중국 합자공장을 설립하여 현재 국내외 19개 공장을 거느린 글로벌 내화물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또한 일찍이 장학 사업을 통한 인재 육성에 남다른 열정으로 헌신해 오던 중 1977년 회갑을 계기로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과 지역 인재 양성을 위해 사재를 털어 성옥문화재단을 설립하기도 했으며 지금까지 학생 4000여 명에게 35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고인은 1988년 민주화 열기 속에서 지역발전을 선도하고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차남인 고 이정일 회장과 함께 전남일보를 창간, 호남의 대표정론지로 키워내기도 했다.
고인은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새마을훈장 근면장, 동탑산업훈장, 은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또한 2008년10월에는 조선내화를 연간 3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국내 내화업계의 선두 주자로 키워낸 가운데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을 위해 노력한 기업가 정신을 인정받아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인촌상(제22회)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이화일 조선내화 회장 등 6남4녀가 있다. 고인의 장례는 조선내화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층 20호, 발인은 11월2일(화) 오전 5시, 영결식은 11월2일 오전 11시 목포 성옥기념관(목포시 유달동 4-2번지)에서 지낸다. 분향소는 조선내화 광양· 포항 공장, 목포 성옥기념관 등 3곳에 마련됐다. 장지는 해남군 황산면 부곡리 선영. 연락처:(02)3010-2631(빈소) (031)710-3312(조선내화(주)), (061)244-2527(성옥문화재단), (061)798-8114(조선내화 광양공장), (054)285-2201(조선내화 포항공장) 김기봉 기자gb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