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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특사, 칙사 대접할 필요 없다"

화이트보스 2010. 12. 9. 11:24

중국 특사, 칙사 대접할 필요 없다"

입력 : 2010.12.06 16:49 / 수정 : 2010.12.06 17:02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닷새만인 지난달 27일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서울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직후 일각에서는 “중국이 엄청난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다이빙궈 국무위원은 외교적 관례를 어기고 일방적으로 방한한 뒤 사전 양해도 없이 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무례를 범했다. 게다가 중국 측이 제의한 6자회담 재개에 이 대통령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이빙궈를 수행했던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특별대표는 중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6자회담 재개를 재차 제의했다.

이와 관련, 박승준 인천대 초빙교수는 주간조선 기고문을 통해 “조선시대 청나라 칙사를 대하듯 중국 특사를 대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그 주요 내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1월 28일 청와대에서 다이빙궈 중국 국무위원을 접견한자리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다이빙궈 중국국무위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칙사(勅使)’란 조선시대에 청나라 황제의 서신을 가지고 오는 사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청나라에서 칙사를 보낸다는 통보를 받으면 조정에서는 ‘원접사(圓接使)’를 지금의 신의주로 보내 맞이하고, 신의주에서 한양 사이 길 5곳에 ‘선위사(宣違使)’를 파견해 곳곳에서 잔치를 열어 주었다. 칙사가 영은문을 통과해서 한양에 입성하면 ‘하마연’을 베풀어 입경을 축하했다.

입경 다음날부터 왕세자와 의정부 육조(六曹)의 고관들이 차례로 연회를 열고 칙사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 광경을 보는 조선 백성들이 속이 뒤틀려 하던 말이 ‘칙사 대접’이라는 말이었다.

지난 11월27일 밤 전세기를 타고 서울로 날아와 28일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간 다이빙궈 중국 국무위원이 하고 갔다는 말이 연평도 포격을 당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설명은 “다이빙궈 국무위원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의 명을 받고 방한하여 중국 지도부의 입장을 전했고, 연평도 사태로 인한 한국 측의 희생에 애도와 위로를 표하고, 남북간 평화를 위해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전했으며, 앞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중간 전략적인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한국 정부는 6·25 전쟁 이후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을 계속 인내해 왔지만 이번에 북한이 추가로 도발해온다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점을 밝히고, 최근 북한이 그동안 부인하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공개한 데 이어 이번에 민간인까지 무차별 공격한 것은 중대한 사태의 변화임을 지적하고, 중국이 앞으로 남북관계에 있어 보다 공정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갖고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데 기여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연평도 포격을 맞은 직후 방한한 다이빙궈 국무위원과 대통령이 무슨 말을 나눴을지 귀가 솔깃해 있던 우리 국민에게는 말 그대로 ‘뚱딴지 같은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는 회담 내용이었다.

더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다이빙궈와 함께 서울에 왔다가 28일 베이징으로 돌아간 우다웨이 ‘조선반도사무 특별대표’가 오후 4시30분 베이징 주재 외국 특파원들을 비상 연락망을 통해 외교부로 오라고 해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진 것이었다. 다이빙궈를 수행해 서울로 가서 이 대통령을 만나고 베이징으로 돌아오자마자 가진 긴급 기자회견이라 ‘틀림없는 중대발표’를 예상하고 외교부 기자회견장으로 달려간 특파원들에게 우다웨이가 내놓은 것이 6자회담이었다.

연평도가 북한의 포격을 당해 4명의 군인·민간인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난 마당에 6자회담이라니 베이징 주재 한국특파원들로서는 실로 어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2003년에 시작된 6자회담이라는 것이 진행되는 동안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의 북한 핵실험으로 속을 만큼 속았고, 지난 3월26일 천안함 폭침에 이어 이번에는 다시 연평도 포격까지 당해 슬픔에 빠져 있는 한국인들에게 중국이 흔들어 보인 카드가 6자회담이라니, 주한 대사까지 지낸 우다웨이의 발표는 한국인들의 감정을 모독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2월8일 “곧 북한이 핵실험을 할 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후진타오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북한 김정일은 함흥으로 오게 해서 만난 일이 있다. 중국에서 특사가 온다는 전갈을 받고도 자신의 지방 시찰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하면서 중국 특사를 지방도시로 오게 해서 만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중국에 ‘압력은 싫다’는 의사표시를 한 셈이었다. 그리고 5월에 예정대로 핵실험을 실시했다.

김정일을 예로 들어 이상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중국의 특사라고 해서 우리 대통령이 과거 조선시대 청나라 칙사 대하듯 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특사라고 해도 우리 총리가 만날 수 있는 일이며, 외교통상부 장관 차원에서 면담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기고문 전문은 <주간조선> 최신호(2134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