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건설업자 한만호·모친 간 면회 녹취록 공개
한명숙은 "한푼도 안받았다"… 한만호 "제가 오버했을 수도"
檢 "곽영욱 발행 100만원 수표11장 중 3장이 한 前총리 남동생 통장 입금"
건설업자 한만호씨에게 불법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4일 공판은 검찰의 반격 무대였다. 한씨는 작년 12월 20일 공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검찰에서의 진술은 꾸며낸 것"이라고 진술해, 재판결과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날 ▲한 전 총리와 주변인물들 금융계좌추적 결과 ▲한씨가 2009년 모친(母親) 등과 교도소·구치소에서 면회하며 나눈 대화기록을 물증(物證)으로 제시하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수감시설에서의 면회는 녹화·녹취하게 돼 있다.양측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이날 오후 2시 시작된 공판이 5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 ▲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4일 오후 3차 공판을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한만호씨, 수사받기 1년 전엔 법정에서와 다르게 말해
검찰이 이 사건 수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한씨는 다른 사건으로 수감돼 있었다. 검찰이 이날 법정에 증거로 제출한 콤팩트디스크(CD)에 녹음된 대화를 담은 녹취록에 따르면 한씨는 2009년 5월 18일 모친에게 "(김문숙씨가) 특별면회로 왔었어요. 내가 '한명숙에게 잘 얘기하라'고 했으니…"라고 했다. "명숙이가 10여일 후에 미국에서 귀국하는데 상의하고 전화 준다고 하더라"는 모친 말에 대한 답변이었다. 김씨는 한 전 총리의 비서로, 한 전 총리와 함께 기소돼 있다.
한씨는 2009년 6월 13일엔 모친에게 "내가 3억원을 요구했다"고 말했고, 6월30일엔 "3억 얘기했는데 답이 오긴 올 거예요. 한명숙 서울시장 나오는 것 같던데 될지 안될지 모르니까"라고 녹취돼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한씨는 또 11월 27일 모친이 "문숙이하고 얘기 확실히 해"라고 다그치자, "예"라고 답한 것으로 돼 있다.
이런 대화가 있던 때 한씨 부모가 살던 집은 경매처분될 위기였는데 한씨가 이 때문에 한 전 총리에게 건넸던 돈을 되찾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은 말했다. 한씨는 부도 직후인 2008년 2월 한 전 총리측에서 2억원을 돌려받았는데 그와는 별개의 일이라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한씨는 작년 12월 20일 2차 공판에서 "김씨에게 3억원을 빌려줬을 뿐이며 2억원은 돌려받고 1억원은 다른 채권자들에게 뺏기지 않게 보관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녹취록대로라면 '3억만 빌려줬다'거나 '1억은 보관해달라고 했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한씨는 그러나 이날 공판에서 녹취록 내용과 관련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만약 3억을 요구했다면 제가 오버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곽영욱씨 수표, 한 전 총리 남동생 통장에 입금
검찰의 계좌추적 결과에 따르면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2009년 6월 은행직원 명의를 빌려 인출한 100만원권 수표 11장 가운데 3장이 한 전 총리 남동생 통장에 입금됐다. 3개월 후인 9월에는 1장이 한 전 총리와 아는 정치인 통장으로 들어갔다. 곽씨는 "2009년 6월 한 전 총리에게 1000만원(100만원권 수표 10장)을 줬다"고 진술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곽씨는 이번 사건과 별개로 "2006년 12월 한 전 총리에게 5만달러를 줬다"고 진술해 기소된 사람이다. 한 전 총리는 "한 푼도 안 받았다"고 주장해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계좌추적으로 두 사람의 수상한 금전거래가 입증됐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검찰은 불법정치자금 9억원과 관련해서도 한씨가 2007년 3월 인출한 1억원권 수표가 2년 뒤인 2009년 3월 한 전 총리 여동생의 전세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계좌추적에서 드러났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8월 하나은행에서 2억5000만원을 대출했는데 그중 1억원을 2008년 7월 1만원권 현금으로 은행에 갚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한씨, 이해찬 전 총리 이름 적어 면회온 친구에게 보여줘
검찰에 따르면 한씨는 작년 9월 구치소로 찾아온 고교동창 정모씨와 면회했다. 당시 한씨는 종이쪽지에 누군가의 이름을 쓴 뒤, 쪽지를 손바닥 안에 넣고 정씨에게만 보여줬다. 한씨는 이날 법정에서 쪽지에 이해찬 전 총리의 이름을 적었다고 진술했다. 한씨가 이 전 총리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 전 총리는 한 전 총리를 지원하는 '한명숙 대책위' 좌장으로 공판이 열릴 때마다 방청을 거르지 않고 있다. 이 전 총리는 한씨의 고교선배다. 한씨는 "당시 정씨에게 '고립무원'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은데 선배를 찾았던 것은 회사문제를 종합적으로 상의하기 위해…"라고 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