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춘 서부지검장 돌연 사표… 검찰 충격파] 재벌 수사 둘러싼 논란… "칼잡이 시대 끝났다" 검찰 뒤숭숭
조폭수사로 잔뼈 굵고 대선자금 수사로 부활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법원과 마찰 빚기도
조선일보 | 이명진 기자 | 입력 2011.01.29 03:09 | 수정 2011.01.29 06:55 | 누가 봤을까? 40대 남성, 전라
28일 한화 ·태광그룹 수사를 진행하던 남기춘 < 사진 > 서울서부지검장이 돌연 사표를 던지면서 검찰은 충격에 빠졌다.
일주일 전부터 남 검사장이 문책받아 경질될 거라는 말이 검찰 에서 돌았다. 하지만 법무부는 "그럴 계획은 애초에 없었고, 남 검사장에게 통보했다"고 말한다.
숱한 검찰 선·후배들이 사직 만류차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가까운 지인은 "이번 사건(한화·태광 수사)을 끝으로 검사생활을 마무리하겠다고 생각해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검사들은 검찰 안팎에서 쏟아진 비판이 자존심이 강한 그를 흔들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검사들은 청와대와 법무부가 실제 그를 경질하려 했고, 사표 제출을 사실상 종용했다고 의심했다.
그의 주변에선 "그간 남 검사장에 대한 검찰 안팎의 압박이 간단치 않았다"고 말한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뒤지면 어떻게 기업을 해먹느냐"는 재계(財界)의 불만이 정치권에 전달됐고, 검찰 안에서도 "조직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못마땅해하는 기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기류를 의식한 듯 그는 작년 말 검찰 내부 통신망에 '살아 있는 권력보다 살아 있는 재벌이 더 무섭다'고 썼고, 최근 주변에 "외롭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날 오후 서부지검을 돌면서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는 앞서 검찰 내부 통신망에 사퇴의 변(辯)도 띄웠다.
그는 글에서 '검사시보 시절 열정적으로 수사하면서도 한가족처럼 지내는 분위기에 끌려 검사가 됐고, 청춘을 바쳤다'고 썼다. 그는 이어 '훌륭한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지낸 덕분에 정의감, 바른 자세 등 귀중한 가치를 배웠고, 그 대신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시간을 버렸다'고도 썼다.
그는 검사들 세계에선 '남 검객(劍客)'으로 통했다. 심재륜 전 고검장이 이끄는 서울지검 강력부 창설 멤버로 조양은·김태촌 등 조폭 두목들을 잡아들였다. 1998년 당시 심 고검장이 김태정 총장을 겨냥해 이른바 '항명(抗命) 파동'을 일으켰을 때 대구에서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까지 심 고검장을 수행했다. 검사직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로 그는 결국 감찰 조사를 받고 한직(閑職)을 떠돌았다. 심 전 고검장은 사표 소식을 듣고 "그 사람 길을 가는 거지만 안타깝다"고 했다.
'남 검객'이 부활한 계기는 2003년 대검 중수1과장으로 발탁돼 맡은 대선자금 수사였다. 현직 대통령과 야당 대선 후보의 금고(金庫)로 치고 들어간 수사는 국민의 갈채를 받았다.
그는 '살아 있는 권력'에도 껄끄러운 존재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때는 여당인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을 수사했고, 서산지청장으로 옮겨 같은 당 문석호 의원을 수사했다. 작년 7월까지 울산지검장을 하면서 여당인사를 야당보다 더 많이 구속했다.
그는 여럿이 회식할 때 밥 먹는 속도가 가장 빠르고, 꾸미지 않는 '싱싱한 언어'를 구사하는 편이다. 탱크처럼 밀어붙여 끝장을 보는 그의 수사 스타일은 여러 번 마찰음을 내기도 했다. 한화·태광 수사뿐 아니라 과거 김희선 의원 수사 때도 영장 기각 때문에 법원과 마찰을 빚었다.
그래도 그의 사퇴의 변에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등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댓글이 100건 넘게 달렸다.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는 "한시대가 저무는 것 같다. '칼잡이의 시대'는 갔나 보다"라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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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부터 남 검사장이 문책받아 경질될 거라는 말이 검찰 에서 돌았다. 하지만 법무부는 "그럴 계획은 애초에 없었고, 남 검사장에게 통보했다"고 말한다.
숱한 검찰 선·후배들이 사직 만류차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가까운 지인은 "이번 사건(한화·태광 수사)을 끝으로 검사생활을 마무리하겠다고 생각해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 [조선일보]28일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이 사표를 내고 고검장 인사가 실시돼 검찰이 하루종일 뒤숭숭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청사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 [조선일보]
그의 주변에선 "그간 남 검사장에 대한 검찰 안팎의 압박이 간단치 않았다"고 말한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뒤지면 어떻게 기업을 해먹느냐"는 재계(財界)의 불만이 정치권에 전달됐고, 검찰 안에서도 "조직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못마땅해하는 기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기류를 의식한 듯 그는 작년 말 검찰 내부 통신망에 '살아 있는 권력보다 살아 있는 재벌이 더 무섭다'고 썼고, 최근 주변에 "외롭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날 오후 서부지검을 돌면서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는 앞서 검찰 내부 통신망에 사퇴의 변(辯)도 띄웠다.
그는 글에서 '검사시보 시절 열정적으로 수사하면서도 한가족처럼 지내는 분위기에 끌려 검사가 됐고, 청춘을 바쳤다'고 썼다. 그는 이어 '훌륭한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지낸 덕분에 정의감, 바른 자세 등 귀중한 가치를 배웠고, 그 대신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시간을 버렸다'고도 썼다.
그는 검사들 세계에선 '남 검객(劍客)'으로 통했다. 심재륜 전 고검장이 이끄는 서울지검 강력부 창설 멤버로 조양은·김태촌 등 조폭 두목들을 잡아들였다. 1998년 당시 심 고검장이 김태정 총장을 겨냥해 이른바 '항명(抗命) 파동'을 일으켰을 때 대구에서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까지 심 고검장을 수행했다. 검사직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로 그는 결국 감찰 조사를 받고 한직(閑職)을 떠돌았다. 심 전 고검장은 사표 소식을 듣고 "그 사람 길을 가는 거지만 안타깝다"고 했다.
'남 검객'이 부활한 계기는 2003년 대검 중수1과장으로 발탁돼 맡은 대선자금 수사였다. 현직 대통령과 야당 대선 후보의 금고(金庫)로 치고 들어간 수사는 국민의 갈채를 받았다.
그는 '살아 있는 권력'에도 껄끄러운 존재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때는 여당인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을 수사했고, 서산지청장으로 옮겨 같은 당 문석호 의원을 수사했다. 작년 7월까지 울산지검장을 하면서 여당인사를 야당보다 더 많이 구속했다.
그는 여럿이 회식할 때 밥 먹는 속도가 가장 빠르고, 꾸미지 않는 '싱싱한 언어'를 구사하는 편이다. 탱크처럼 밀어붙여 끝장을 보는 그의 수사 스타일은 여러 번 마찰음을 내기도 했다. 한화·태광 수사뿐 아니라 과거 김희선 의원 수사 때도 영장 기각 때문에 법원과 마찰을 빚었다.
그래도 그의 사퇴의 변에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등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댓글이 100건 넘게 달렸다.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는 "한시대가 저무는 것 같다. '칼잡이의 시대'는 갔나 보다"라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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