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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아이들이 사라진다

화이트보스 2011. 2. 17. 19:05

서울 도심 아이들이 사라진다

주간경향 | 입력 2011.02.17 14:02 | 누가 봤을까? 40대 여성, 서울

 




ㆍ중구·종로구 초등신입생 고작 7명 학교도…저출산·공동화 현상 탓

2월 17일 6학년 21명 졸업, 3월 2일 1학년 7명 입학. 강원도 산골이나 어느 섬마을 초등학교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도심의 한복판 종로구 교동초등학교의 2011년 졸업식과 입학식 풍경이다. 서울시내 초등학교 중 재학생이 가장 적은 교동초등학교는 올해 단 7명을 신입생으로 받았다.

↑ 서울 도심에서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종로구 교동초등학교에서 4·6학년 아이들이 어울려 공을 차고 있다. 각 학년별로 한 반씩이다 보니 “우리 학교에 반 대항 축구는 없다”는 게 아이들의 이야기다. |조득진 기자

학교에 아이들이 줄다보니 일대에선 교육시설이나 보육시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교동초등학교가 자리한 종로1·2·3·4가동에는 소아과는 물론이고 보습학원과 문방구도 찾아볼 수 없다. 찾아올 고객이 없으니 판을 벌이지 않는 시장논리가 반영된 것이다. 교동초등학교 근처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또래집단이 부족하고 아이들을 위한 시설마저 찾기 힘들어 자녀를 둔 가구가 우리 동네에 새로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다"며 "게다가 최근엔 임대료마저 부쩍 올라 오히려 이사를 나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소아과·보습학원 대신 유해시설만


서울 도심에서 아이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다 도심 공동화 현상이 겹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980년대 후반 도심 개발로 인해 주거지가 줄어들고 각종 상업시설이 늘어나면서 현재 이들 초등학교가 자리한 중구와 종로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주민등록인구가 가장 적다. 종로1·2·3·4가동 주민센터의 박상서 동장은 "도심지역 개발 여파로 주거지가 줄어드는 대신 상가와 오피스텔, 식당 등이 들어섰다"며 "이곳 임대료가 급히 오르자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서울 주변 도시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인해 아이들이 줄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서울 교보문고에서 종묘공원까지 이어지는 대로의 북쪽 지역에 해당하는 종로1·2·3·4가동의 인구는 2011년 1월 31일 현재 8004명이지만 초등학교 재학에 해당하는 8~13세 어린이는 197명에 불과하다. 연령대별 인구 분포를 보면 50대가 1638명(20.5%)으로 가장 많고, 40대가 1337명(16.7%), 30대가 1211명(15.1%), 60대가 1175명(14.7%)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9세 이하는 293명으로 전체 인구의 3.7%, 10대는 382명으로 4.8%에 불과했다. 연령별 균형이 크게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 동장은 "아이들이 줄다보니 우리 관내엔 소아과는 물론이고 보습학원과 문방구도 찾아볼 수가 없다"며 "아동시설, 보육시설이 부족해 우리 지역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근심도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동초등학교 주변엔 보습학원이나 예능학원은 물론이고 문방구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동네엔 그런 거 없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구청에 등록된 소아과가 없다"고 말하자 "정말이냐?"고 묻는 주민도 있었다.

반면 어린이·청소년 유해시설은 상당하다. 도심 한가운데다 보니 유흥주점이 즐비하고 골목 안까지 모텔 등 숙박시설이 찾아들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데다 탑골공원과 종묘공원 등에선 밤늦게 취객들의 싸움이 잦아 지역주민들조차 통행을 꺼리는 실정이다. 전체 면적이 2.37㎢로 타 동에 비해 비교적 좁은 면적이지만 관내에 경찰서 2곳(종로경찰서·혜화경찰서), 파출소 4곳, 6개의 자율방범대가 운영되는 이유다.

교동초등학교는 1894년 관립교동소학교로 개교한 국내 최초의 근대식 초등학교로, 1970년대에는 5000명이 넘는 학생들로 2부제(오전·오후)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입생은 2009년에 15명, 2010년 12명, 올해 7명으로 줄었다. 현재 전체 학생 수가 107명이니 17일 졸업식이 끝나고 나면 총학생 수는 93명으로 줄게 된다.

학군 교체 요구 보다 국가정책 절실


한 학년에 한 반, 전교생 100명 남짓의 도심 속 초등학교의 모습은 어떨까? 교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지난해 종로구에서 열린 초등학교 축구대회를 떠올렸다. 다른 학교의 경우 6학년, 5학년 등 한 학년의 단일팀이 나왔지만 교동초등학교는 4~6학년으로 편성된 연합팀이 출전했다고. 지난해 5월엔 서울 중부교육지원청 관내 교동·매동·숭신·운현초등학교 5·6학년생 196명이 함께 강원도 철원 한탄강에서 래프팅 체험을 하고, 철원 노동당사 등 안보 전적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한 학년 숫자가 너무 적어 전세버스 회사로부터 외면당하고 래프팅 회사한테도 거절당해 현장 체험학습을 할 엄두가 나지 않은 학교들이 공동체험을 모색한 것이다.

교동초등학교 교사들은 언론이 신입생 수를 보도하면서 '폐교 위기' 운운하자 상당히 민감한 분위기다. 한 교사는 "신입생 문제가 한두 해의 일도 아닌데 언론이 위기감을 조성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며 "언론의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인터뷰를 거부했다. 학급 수가 많은 서울 목동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의 규모와 상관없이 한 학교가 처리해야 할 업무는 일정하다"며 "학생 수가 줄면 교사 수 역시 줄게 되고, 그러면 업무량이 많아져 교사들이 몹시 바쁠 것"이라고 말했다. 교동초등학교 교사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학생 수가 더 줄어들 경우 폐교 등 통·폐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침 학부모 모임이 있어 학교를 찾았다는 홍모씨는 "선생님이 아이들 하나하나를 파악하고 있는 것은 장점이지만 학생 수가 적다 보니 학교 행사가 상당히 제한적"이라며 "주변에 변변한 학원 하나 없어 아이들을 먼 학원까지 보내는 등 불편함이 많다"고 말했다. 위장전입 논란도 있다. 학부모 김모씨는 "일부 학부모들이 중구의 덕수초등학교에 아이들을 진학시키려고 주소지를 옮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종로1·2·3·4가동의 초등학교 1~6학년에 해당하는 인구는 197명이지만 교동초등학교에 재학하는 인원은 100명 남짓이다. 김씨는 "지역 내 아이들이 다른 학교에 가지 않고 교동초등학교로 모이면 웬만한 학교의 인원이 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신입생 감소는 교동초등학교뿐만이 아니다.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 등에 따르면 종로구 재동초등학교는 입학생이 2009년 56명, 2010년 51명에서 올해는 38명으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1970년엔 졸업생 830명을 배출했던 학교지만 올해 70명이 졸업하면 학교 정원은 더 줄어든다. 인근 매동초등학교 역시 2009년과 2010년 각각 49명, 42명이 입학하더니 올해 37명으로 줄었다. 도심에 자리한 중구의 남산초등학교와 광희초등학교도 신입생 감소현상이 두드러져 올해 각각 33명, 40명을 받았다.

이 때문에 소규모 학교에서는 학군 교체 등을 통한 학생 유치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의 류재천 초등교육지원과장은 "현재로선 학군 조정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소규모 주변 학교들 또한 재학생이 줄고 있어 마찬가지라는 것. 류 과장은 "수영장 등 특화시설, 밴드부나 축구부 등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군 내 어린이들을 수용해야 한다"며 "교동초등학교 문제도 교육청이 학교와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심 공동화로 인한 소규모 학교 문제는 저출산, 주택 문제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가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학생 수 감소는 서울 도심뿐 아니라 농촌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라며 "개별 학교의 노력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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