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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적자 1조원 시대 (상) 검사 왕국

화이트보스 2011. 3. 24. 13:03

건보 적자 1조원 시대 (상) 검사 왕국[중앙일보] 입력 2011.03.24 03:00 / 수정 2011.03.24 03:00

MRI·CT, 병원 옮길 때마다 찍고 찍고 또 찍고 …건강보험 적자액이 불어나고 있다. 지난해 1조3000억원, 올해 1~2월에만 1500억원이다. 고령화 때문에 의료비가 많이 들기도 하지만 비효율적인 의료체계 때문에 돈이 새나가는 게 문제다. 의료기관들은 고가장비를 들여놓고 검사를 남발한다. 인구 100만 명당 컴퓨터단층촬영(CT) 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위, 유방촬영장치(맘모그래피)는 1위가 됐다. 불필요한 검사에다 보험이 안 되는 진료가 늘다보니 환자의 부담이 줄지 않는다. 비효율 실태를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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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디스크 환자 양모(66)씨는 이달 초 전북 익산의 한 정형외과의원에서 진찰을 받고 인근 방사선과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했다. 100만원 넘게 들었다. 양씨는 1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받기 전 다시 MRI를 찍었다. 양씨의 아들은 “아버지가 돈이 많이 든다고 반대했지만 익산에서 찍은 MRI 화질이 좋지 않다고 하니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작은 병·의원을 거쳐 큰 병원으로 오는 환자의 상당수는 검사를 다시 한다. 의학적인 필요에 따라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지난해 CT·MRI·맘모그래피·양전자단층촬영(PET-CT) 장비는 2005년보다 50% 늘었다. 검사건수도 매년 10~50% 늘고 비용(검사료·영상진단료, 2009)은 4년 만에 78.6% 늘었다. 같은 기간 수술·처치료 증가(40%)를 훨씬 웃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중복 촬영이다. 환자의 20.6%가 같은 병으로 30일 내에 다시 CT를 찍었다(2008년 자료). 대형 대학병원 환자는 31.1%가 그랬다.

 서울의 S대학병원이 최근 CT 재촬영 202건의 이유를 조사했다. 기존 CT의 질이 떨어지거나(13건), 특별한 이유 없이 다른 병원 CT를 믿을 수 없어(25건) 다시 찍었다. 둘 다 낭비다. 가장 많은 이유가 세밀한 검사를 위해서(62건)였다. 하지만 서울대 의료정책실 권용진 교수는 “일부 질환은 정밀 검사를 위해 다시 찍어야 하지만 상당수는 비싼 비용만큼 재촬영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병원장은 지난해 11월 국회 공개토론회에서 “수술비(수가)가 검사료보다 낮아 (의사들에게) 은근히 검사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 최수아(35·여)씨는 2월 말 아들(1)이 열이 많이 나 인근 종합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소변·혈액·신장초음파·방사성동위원소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아이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항생제 처방을 받아 정상으로 돌아왔다. 병명은 요로감염이었고 97만원을 냈다. 최씨는 “옆 병상의 감기 환자도 같은 검사를 받았더라. 열 나는 애가 오면 무조건 ‘세트 검사’를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상당수 검사 장비는 낡았다. CT의 21.6%가 10년이 넘었고 11.5%는 제작 시기를 알 수 없다. 맘모그래피의 43%, MRI의 19.4%가 그렇다(2009년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맘모그래피는 1977년산, CT는 85년산이 아직 쓰인다. 동네의원이 30억원을 호가하는 PET-CT 17대(전체 137대)를 보유할 정도로 장비 구입이 자유롭다. 이런 장비 도입 사실을 대형 현수막으로 내걸어 환자를 끌어들인다.

 의사가 해야 할 일을 방사선사나 간호사가 대신하기도 한다. 지난해 동네의원이 시행한 간초음파 검사(암 검진용) 1333건 중 56건이 이런 경우였다. 21건은 누가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들이 시행한 검사의 부적합률이 의사의 두세 배가 넘었다.

“검사 종류·주기 기준 정해야 낭비 막아”

허대석 보건의료연구원장

1차 초음파, 2차 CT, 3차 MRI

의료기관 기능 걸맞은 장비를


허대석 원장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허대석(서울대 의대 교수) 원장은 “암 수술 후 어떤 주기로, 어떤 검사를 해야 할지 표준을 정해야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검사를 많이 하는 이유는.

 “ 필름의 질이 떨어지거나 수술 후 추적할 때 다시 촬영한다. 재발이나 암 전이 등 의학적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수술 전후에 이런저런 검사를 한다. 병원들이 수익을 올리기 위한 측면도 있다. 수술 행위료(수가)가 낮아 검사로 벌충하는 면도 있다.”

-불확실성을 줄인다고 고가 검사를 해야 하나.

 “양전자단층촬영(PET-CT)도 초기 위암에는 불필요하다. 그런데 암이면 대부분 PET-CT를 찍는다. CT로도 문제 없다. 이런 기준을 정해야 한다. 증상마다 어느 정도 자주 검사하는 게 좋은지 정하고, 그 기준을 따랐을 때는 의사의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

-동네의원이 PET-CT 등 고가장비를 갖고 있는 걸 어떻게 봐야 하나.

 “동네의원이 PET-CT를 갖고 수술하는 것도 아닌데 억지로 수요(건강검진 등)를 창출할 위험이 있다. 환자가 많은 대학병원이 갖고 있어야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

-장비 규제를 강화해야 하지 않나.

 “무조건 강화하면 반발이 따른다. 1, 2, 3차 의료기관별 기능을 정하고 난이도에 맞는 장비를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1차(동네의원)는 초음파, 2차(중소종합병원)는 CT, 3차(대학병원)는 MRI·PET-CT가 맞다.”

신성식 선임기자, 박유미·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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