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디스크 환자 양모(66)씨는 이달 초 전북 익산의 한 정형외과의원에서 진찰을 받고 인근 방사선과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했다. 100만원 넘게 들었다. 양씨는 1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받기 전 다시 MRI를 찍었다. 양씨의 아들은 “아버지가 돈이 많이 든다고 반대했지만 익산에서 찍은 MRI 화질이 좋지 않다고 하니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작은 병·의원을 거쳐 큰 병원으로 오는 환자의 상당수는 검사를 다시 한다. 의학적인 필요에 따라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지난해 CT·MRI·맘모그래피·양전자단층촬영(PET-CT) 장비는 2005년보다 50% 늘었다. 검사건수도 매년 10~50% 늘고 비용(검사료·영상진단료, 2009)은 4년 만에 78.6% 늘었다. 같은 기간 수술·처치료 증가(40%)를 훨씬 웃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중복 촬영이다. 환자의 20.6%가 같은 병으로 30일 내에 다시 CT를 찍었다(2008년 자료). 대형 대학병원 환자는 31.1%가 그랬다.
서울의 S대학병원이 최근 CT 재촬영 202건의 이유를 조사했다. 기존 CT의 질이 떨어지거나(13건), 특별한 이유 없이 다른 병원 CT를 믿을 수 없어(25건) 다시 찍었다. 둘 다 낭비다. 가장 많은 이유가 세밀한 검사를 위해서(62건)였다. 하지만 서울대 의료정책실 권용진 교수는 “일부 질환은 정밀 검사를 위해 다시 찍어야 하지만 상당수는 비싼 비용만큼 재촬영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병원장은 지난해 11월 국회 공개토론회에서 “수술비(수가)가 검사료보다 낮아 (의사들에게) 은근히 검사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 최수아(35·여)씨는 2월 말 아들(1)이 열이 많이 나 인근 종합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소변·혈액·신장초음파·방사성동위원소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아이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항생제 처방을 받아 정상으로 돌아왔다. 병명은 요로감염이었고 97만원을 냈다. 최씨는 “옆 병상의 감기 환자도 같은 검사를 받았더라. 열 나는 애가 오면 무조건 ‘세트 검사’를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상당수 검사 장비는 낡았다. CT의 21.6%가 10년이 넘었고 11.5%는 제작 시기를 알 수 없다. 맘모그래피의 43%, MRI의 19.4%가 그렇다(2009년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맘모그래피는 1977년산, CT는 85년산이 아직 쓰인다. 동네의원이 30억원을 호가하는 PET-CT 17대(전체 137대)를 보유할 정도로 장비 구입이 자유롭다. 이런 장비 도입 사실을 대형 현수막으로 내걸어 환자를 끌어들인다.
의사가 해야 할 일을 방사선사나 간호사가 대신하기도 한다. 지난해 동네의원이 시행한 간초음파 검사(암 검진용) 1333건 중 56건이 이런 경우였다. 21건은 누가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들이 시행한 검사의 부적합률이 의사의 두세 배가 넘었다.
“검사 종류·주기 기준 정해야 낭비 막아”
허대석 보건의료연구원장
1차 초음파, 2차 CT, 3차 MRI
의료기관 기능 걸맞은 장비를
-검사를 많이 하는 이유는.
“ 필름의 질이 떨어지거나 수술 후 추적할 때 다시 촬영한다. 재발이나 암 전이 등 의학적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수술 전후에 이런저런 검사를 한다. 병원들이 수익을 올리기 위한 측면도 있다. 수술 행위료(수가)가 낮아 검사로 벌충하는 면도 있다.”
-불확실성을 줄인다고 고가 검사를 해야 하나.
“양전자단층촬영(PET-CT)도 초기 위암에는 불필요하다. 그런데 암이면 대부분 PET-CT를 찍는다. CT로도 문제 없다. 이런 기준을 정해야 한다. 증상마다 어느 정도 자주 검사하는 게 좋은지 정하고, 그 기준을 따랐을 때는 의사의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
-동네의원이 PET-CT 등 고가장비를 갖고 있는 걸 어떻게 봐야 하나.
“동네의원이 PET-CT를 갖고 수술하는 것도 아닌데 억지로 수요(건강검진 등)를 창출할 위험이 있다. 환자가 많은 대학병원이 갖고 있어야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
-장비 규제를 강화해야 하지 않나.
“무조건 강화하면 반발이 따른다. 1, 2, 3차 의료기관별 기능을 정하고 난이도에 맞는 장비를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1차(동네의원)는 초음파, 2차(중소종합병원)는 CT, 3차(대학병원)는 MRI·PET-CT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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