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이 대안이다/자주 국방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방개혁’

화이트보스 2011. 4. 27. 16:25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방개혁’

 

 

기고자 : 신양호 전 육군 소장, 청와대 국방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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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작전권 전환 3년 앞둔 지금이 적기다”

 

 지휘구조 개편 통한 신속한 의사결정체계 구축이 핵심…문민통제원칙

위배되지 않아

상부지휘구조 개선을 화두로 내건 ‘307계획’을 둘러싸고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게 하루 빨리

개선이 필요하다는데…. 1988년 노태우 정부 당시 현 합동군 체제의기틀을

마련한 ‘818계획’을 주도했던 신양호 전 청와대 국방비서관이 307계획의

 당위성을 풀었다. 
   
  국방개혁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어서 그동안 국방개혁이 발표될 때마다 예비역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국방개혁을 단골 메뉴로 들고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늘 소리만 높았지 별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번 ‘307계획’은 다르다.

국방부 장관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최초로 생방송 토론장에 나가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를 본 필자는 307계획을 다시 보게 됐다. 전역한지 15년이 지나 군의 실정에 어두운 면

이 있어 글을 쓰는데 두려움이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1988년 필자는 장군으로 진급하면서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보임됐다. 이후 2년간 우리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도 엄두를 못 냈던 한ㆍ미 간의 예민한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해결

해 나가기 시작했다. 용산 기지 서울외곽 이전, 미군으로부터 작전권 전환, 그리고 이번

307계획의 핵심으로 떠오른 상부지휘구조 개편과 같은 군 구조 개혁이었다. 이른바 ‘818

계획’이었다. 휴전 후 37년 만에 미군으로부터 작전권을 전환할 것에 대비해 자주국방의

 틀을 새로이 만드는 일의 첫 삽을 뜨는 작업이었다.

 

 당시 국방개혁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정열을 쏟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잘 알려진 바

와 같이 노태우 정부는 ‘통합군’ 형태의 강력한 지휘구조로 국방 참모총장을 신설해 군의

전쟁수행능력을 높이고 방만한 군 조직을 효율화하려 했다. 그러나 3군의 반발과 전 예비

역 장성들을 동원한 압력이 심했다.

 

 결국 최초 의도에서 한발 물러나 ‘합동군제’로 변화를 마무리했다. 818계획은 1990년 국

군조직법으로 통과돼 시행됐다. 이후 21년이 지난 시점에서 307계획으로 다시 손을 대는

셈이다.

 

 818계획을 기획할 당시 육ㆍ해ㆍ공군의 팀장들은 거의 필자와 같은 해 임관한 준장급이

었으며, 실무는 대령급 장교들이 담당했다. 818계획을 만들면서 각 군 본부를 대폭 축소

하는 모습으로 진행되자 각 군 본부의 핵심 참모부장들이 반대 논리를 개발해 집요한 투

쟁을 전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감대가 형성되자 반대 논리는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러자 각 군은 어떻게든 축소의 폭을 줄이기 위해 매달렸다. 이번 307계획 역시 마찬가

지 과정을 겪으리라 생각한다. 시행되기까지 많은 장애가 있겠지만 공감대 형성에 성공하

리라 본다. 

 

 서글픈 ‘집단의 본능적 태도’

 

 307계획은 작전 중심의 전투형 군대 건설, 적극적 억제 전략, 합동성 강화, 효율성 제고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분야는 상부지휘구조 개편이다. 우리

군 구조는 창군 당시 2군제(육ㆍ해군)였다. 6·25 전쟁 때에는 ‘3군 병립제’였으나 이승만

대통령 지시로 육군총장이 육ㆍ해ㆍ공군총사령관을 겸직해 사실상 단일군제였다.

 

 1954~90년까지는 3군 병립제로 합참의장의 권한이 극히 미약해 3군의 합동성이 제한되

고 통합작전이 불가능했다. 특히 국방자원관리의 비효율성이 문제점으로 부각되면서, 전

술한 바와 같이 미군으로부터의 작전권 전환과 관련해 818계획을 추진해 1990년 합동군

제를 채택했다.

 

 20여 년간 지속된 현 합동군제는 합참의 작전지휘권 행사로 합동성에 대한 인식을 향상

시켰다. 하지만 각 군 본부는 군정(軍政) 기능만을 수행해 왔고, 군정 중심의 사고 틀은 더

욱 고착돼 가고 있다. 또 군정과 군령(軍令) 요소의 중복으로 군령부서가 작전지휘의 완전

성을 위해 군정적 요소를 편성하고, 군정부대 또한 자원의 효율성을 위해 정보·작전 등 군

령부서를 편성하는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런 폐해를 일소시키기 위해 307계획은 합동군제의 비효율성을 없애고 신속한 의사결

정체계 구축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합참이 고유의 역할과 합동군사령부의 기능을 동시

에 수행하고, 합참의장이 각 군 참모총장을 작전지휘해 전력의 통합 운용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또 합동작전수행에 필요한 제한된 군정기능을 합참의장에게 부여하나, 3군 체제는 그대

로 유지해 각 군 고유의 전문성과 특성을 보장한다. 이런 상부지휘구조 개편뿐 아니라 합

동성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체계 개선, 북한 국지도발에 대비하기 위한 비대칭전력의 우선

적 보강, 지휘 계선의 단순화, 장군 정원 감축 등 많은 과제를 선정하고 있다.

 

 필자는 이번 개편을 보면서 만시지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시작전권 전환을 3년

앞둔 시점이다. 또 북한의 핵 개발이 기정사실화돼 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권력 계승에

따른 불안전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런 안보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일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

 

 307계획 발표 이후 정치인을 비롯해 예비역 장성 등에 이르기까지 벌집을 쑤신 것처럼

반대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수긍 가는 바도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의 지식과 정보로 판단하는 양상이다.

 

 반대론의 기저에는 기존 틀을 흔드는 어떤 변화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기 보존의 정서

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우리 군을 기존 질서로 지키고 싶어 하는 집단의 본능적 태도로

표출되고 있어 몹시 서글프고 안타깝다.

 

 우선 예비역들은 각군의 자군이기주의에 편승하는 듯하다. 육군은 타군 대비 조직과

 장군 정원의 감축 폭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 여기에 일부 예비역 장성

들이 가세하는 모습이다. 해ㆍ공군의 경우 지난 818계획 때와 유사한 형태로 변화를 거부

하고 있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육군 위주의 구조개편안을 반대한다. 해·공군 예비역들은

대부분 이런 반대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고 본다.

 

 사실 해ㆍ공군의 반응에는 수긍 가는 부분이 있다. 그간 군 구조와 남북이 휴전선을 연해

대치한 상황에서 합참의장은 육군에 보임될 수밖에 없었다. 해ㆍ공군이 실질적으로 육군

의 지휘를 받는다고 생각하게 한 대목이다.  

 그러니 변화를 찬성할 리 없지 않겠는가? 때문에 늘 육군과 대등한 관계 정립을 기대하

던 해ㆍ공군은 현역과 예비역 모두가 일심동체로 반대하는 상황이다. 창군 이래 피해의식

에 시달린 해ㆍ공군의 반대는 그만큼 뿌리가 깊고 해법이 간단치 않다. 육군과의 관계 문

제는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장기 계획으로 합참의 의사결정 주요 직위를 3군이 비슷하게 보직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변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적어도 1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추진해

야 한다. 307계획에서는 지난 ‘국방개혁 2020’에서 정한 ‘2 : 1 : 1’을 최대한 준수하는

방향으로 최종 목표를 정했다고 보여진다. 물론 인위적으로 비율을 정하기 보다 해·공군

 장교들이 중요 보직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보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군 개혁 위한 문민통제의 전형


 307계획의 반대논리에 ‘문민통제의 원칙’이 등장했다. 참으로 시대착오적 논리 전개다.

문민통제의 원칙이란 국가의 군사·국방정책에 관한 의사결정권을 직업 군인이 아닌 민간

정치인에게 부여하는 민주주의 군사·정치 원리다. 대한민국은 문민 책임 아래 직업군인

집단을 헌법과 법규를 통해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에서 군의 효율성 제고 문제가 정치적 불안을

일으킨다는 발상은 너무도 터무니 없는 사고다.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에 의한 문민통제가

충분히 제도화되고 보장된 시점에서 어찌 구시대적 발상으로 궤변을 토로하는지 모르겠

다.

 

 군 안팎에서 이견이 상존하는 상황 속에서 선진국의 경우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선진국에선 군 내부보다는 대통령과 그 보좌진, 그리고 국회에서 주도해 군 개혁을

성공시키고 있다.

 

 우리 군은 창군 이래 전략·전술적 부대운용, 군 구조, 교리 및 교육훈련ㆍ인력양성 등

정·군령 전 분야에서 미군 제도를 답습하고 일부 한국화를 진행시켜 왔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유독 미 의회의 문민통제의 전형을 주목하지 않는다. 우리 군에는 다행인가?

불행인가?

 

 1986년 미 의회에서 제정한 ‘골드워터 니콜스 법안’의 배경과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미군은 세계 1·2차 대전과 6·25전쟁·베트남전쟁을 치르며 각 군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3군이 상호 경쟁적으로 전투력을 확충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급기야 과도한 경

쟁으로 베트남전쟁, 이란 인질 구출작전, 그라나다 침공작전 등 작전을 실패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심지어 국방부 장관이 3군 간의 알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당시 미군은 합참 조직의 기능과 역할이 미미해 지휘계통이 혼란스러웠다. 각 군 총장의

자군 중심주의가 팽배해 합동 의제 취급 시 자군에 유리하게 주장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또 각 군에서 보낸 합참 요원들도 자군 연락관 역할에 머물러 자군 이익을 대

변하는데 급급했다. 오늘날 우리 군이 처한 상황과 너무도 유사한 점이 많다.

 

 이런 사태가 1980년대 초까지 지속되자 미 의회가 발벗고 나섰다. 이 법안의 제정 배경

역시 ‘합동성 결여’였다. 법이 제정되는 동안 엄청난 반대와 격론이 일었다. 발의 4년 만에

 통과되고 1986년 10월에 공포돼 시행에 들어갔다.

 

 법안에서는 무엇보다도 합참의장의 역할을 대폭 강화했다. 가령 합참의장의 위상이 합동

참모회의의 1인에서 대표자로 높아졌으며, 장관급 장교 인사에 개입하게 됐다. 또 통합사

령관의 권한을 보장했고, 합동부서 근무 장교의 인사관리 지침을 작성해 보직 및 진급에

서 자군 소속 장교에 비해 불리하지 않도록 관리했다. 이를 매년 의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이런 사례를 감안할 때, 307계획이 문민통제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지를 펴는 분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군대로

 

 우리는 굳건한 한ㆍ미 동맹체제로 전쟁억지력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킬 경우 초기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개전 초기에 북한군이 보유한 화력수단

을 완전히 무력화시켜야 하는데, 전쟁을 지휘할 상부지휘구조 변화를 갖고 3군의 갈등이

불거져 나오는 것은 자중지란이요, 군 전력의 심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우려스런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국민에게 마치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서야 되겠는가?

 

 북한은 전면전 위협뿐 아니라 한미연합 첨단 전력의 강점을 회피하기 위해 핵 및 미사일

개발과 보유, 20만 명 정도의 특수전 병력, 잠수함, 사이버전 수행 등 다양한 형태의

비대칭 위협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이런 불안정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권한과 책임이 단일화된 지휘체제(구조)로 하루빨리 변신해야 한다.

 

 체험적으로도 그렇다. 육군본부 작전과장으로 재직할 때 2회에 걸쳐 을지포커스렌즈

(UFG) 훈련 주무를 담당한 적이 있다. 훈련이 시작되자 작전부대들은 작전계획상 상황

 전개에 따라 숨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헌데 각 군 본부의 참모총장과 수많은

장군·대령들은 외곽에서 지원업무만 했다.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경험을 하면서 권한과

책임이 단일화된 지휘체제에 대한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전쟁이 발발해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가장 우수하고 경험이 많은 각 군 최고

수뇌부 집단이 지원업무만 해서야, 이 얼마나 한심스럽고 해괴한 일이겠나? 307계획은

기존 합동군 체제를 작전 중심의 전투형 군대로 강화해 합동작전의 효율성을 증대시킨다

는 차원에서 꼭 필요한 개선이라고 본다.

 

 하지만 북한의 전격전에 대응하는 전쟁 수행체계로는 아직도 느슨하고 비효율적인 면이

있다. 물론 한술에 배 부를 수 있겠나? 창군 이래 3군 병립제로 성장해온 그 타성이 너무

커서 일순에 권한과 책임이 단일화되기는 어려울 터다.

 

 우선 계획대로 신속히 개편하고, 차후 군이 스스로 못하면 선진국처럼 국회가 나서서 군

의 개혁을 법안으로 만들어 나가리라 예상한다. 선진국에서는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민

간 전문가를 임명해 국방개혁을 만들고 추진해 왔다. 군 스스로 본질적인 개혁을 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307계획에서 다루지 못한 중요 개혁 과제가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1990년대 3군 본부의 계룡대 이전은 전략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게 아니다.

5공 초기에 행정수도를 이전할 목적으로 추진한 사업을 중지하면서, 그 수습 방편으로

각 군 본부를 이전했다. 당연히 3군 본부는 국방부와 같은 건물 내, 또는 근거리에 위치시

켜야 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이 과제는 20년이 지난 현재도 거론되지 않고 있다. 3군

본부가 계룡대에 안주하는 있는데, 군 스스로 개혁을 거론하기는 힘들다.

 

 또 한가지 국방예산의 안정적 확보, 또는 예측 가능한 국방비 규모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이 역시 군 스스로 접근할 수 없는 과제다. 일례로 1980년대 독일은

부통령을 국방개혁위원장으로 임명해 군 구조 연구를 진행했다. 대통령 재가를 거쳐 국회

동의를 얻어 10년 후 군 모습을 만들었는데, 이때 국방예산이 국가예산의 일정 비율로

확정됐다. 이 예산 범위 내에서 군은 큰 변경 없이 군 구조를 지속적으로 개편시켰다.

 

 이제 307계획에 선정된 과제부터 실행에 옮기면서 더 근원적인 개혁 대상을 찾아가야

한다. 훗날 남북 간 긴장이 사라지고 평화가 정착되면서 육ㆍ해ㆍ공군의 특성이 잘 조화

를 이루고, 합참의장과 합동군사령관이 3군 윤번제로 임명되는 법안이 상정돼 통과될 날

이 오기를 기대한다.

 

※ 필자 프로필 : 1944년생. 육군사관학교 22기.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부장, 국방부

정보체계국장, 청와대  국방비서관 등 역임. 육군 소장으로 예편. 현 영일S&T 상임고문. 

※ 원문 : 월간중앙 2011년도 5월호 (104~10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