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장학재단 수사 마무리]
검찰, 황 군수에 기소유예… 자치단체·경찰 극한 갈등 "고통 컸지만 묻고 가겠다"
광주지검 특수부(부장 김호경)는 지난 18일 군민장학재단 기금 불법조성(직권남용 등) 혐의로 입건된 황주홍(黃柱洪·59) 강진군수에 대해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이로써 지난 3월 장학재단 운영 과정의 불법 여부를 둘러싼 자치단체(장)와 감사·수사기관 간의 극한 갈등이 세간에 알려진 지 5개월여 만에 매듭지어졌다.
검찰은 장학기금 모금과정 등에 일부 위법행위가 있었지만, 타 지역의 자치단체에서도 강진군과 유사하게 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있고 황 군수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아 기소에 따른 실익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또 경찰 수사 단계에서 거론된 뇌물수수와 업무상 배임에 대해서도 무혐의로 결론내렸다.
- ▲ 황주홍 강진군수가 4월 1일 오전 광주시 광산구 소촌동 광주지방경찰청 앞에서 주민들과 지지자들이 둘러싼 가운데 경찰수사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읽고 있는 모습.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앞서, 광주경찰청은 강진군청을 압수수색하고 공무원을 소환하는 등 수개월간 수사를 벌인 끝에 지난 4월 황 군수에 대해 공익법인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과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직권남용 등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의 이번 결정으로 강진장학재단은 그동안 3차례의 감사원 감사와 2차례의 경찰 수사에도 '사실상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
◆강진군, 일간지에 광고 실어
수사를 받고 있는 자치단체장이 일간지에 수차례 의견광고를 싣고, 기자회견을 통해 감사원과 경찰의 감사·수사를 정면 공격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번 사건의 발단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강진군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 2009년 9월과 10월 1·2차 감사에 이어 지난해 3월 세 번째 감사를 받았다. 이어 지난해 4월에는 전남경찰청 수사를 받았다. 1·2차 감사에서는 별다른 지적사항이 없었고, 경찰 수사도 내사종결 처리됐다.
그러나 올초 광주경찰청이 다시 수사에 나섰고, 감사원은 3차 감사에 나선 지 11개월 만인 지난 2월 22일 검찰에 기부금품 불법모금 및 직권남용 혐의로 황 군수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다.
거듭된 감사에 이어 경찰마저 두 번째 수사에 나서자 강진군이 발칵했다. 강진군 공무원들과 황 군수는 지난 3월 일간지에 2차례 광고를 내 억울함을 호소하고 수사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 번째 광고에서 강진군은 "3차례 감사와 2차례 수사를 통해 확보된 자료만도 한 트럭은 될 것"이라며 "공직사회를 오랫동안 숨죽이며 일손을 놓게 하지 말고 조속히 수사를 종결지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이 강진군청을 두 번째 압수수색하자 황 군수는 지난 3월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광주경찰청이 '황야의 무법자'처럼 법치주의를 유린하고 있으며, 자신들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강진군수를 반드시 잡고 말겠다는 과잉의지를 불태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감사원·경찰 "적법 절차"
하지만, 감사원과 경찰의 설명은 강진군과 달랐다. 감사원은 "지난 2009년의 두 차례 감사는 자치단체의 무사안일과 소극적 업무처리 실태에 대한 감사였고, 지난해 3월 장학재단 감사는 전국 139개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감사였다"고 밝혔다.
광주경찰청은 황 군수가 회견을 가진 다음날 '강진군수 수사' 관련 입장이라는 자료를 내 "관급공사 수주업체 수사과정에서 나온 진술과 감사원의 수사의뢰에 따라 적법절차를 준수하며 정당하게 수사하고 있다"며 "황 군수가 '경찰 수사관들이 강진지역 정치세력과 내통하고 있다'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한 데 대해 수사를 마친 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었다.
◆"지역 정치세력 간 불신·갈등"
이번 사건이 자치단체(장)와 수사기관의 극한 대립으로 치달은 배경에는 강진지역 정치를 둘러싼 뿌리깊은 불신과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황 군수는 감사원 감사와 경찰 수사가 5차례나 이어진 데 대해 "지역 정치세력이 나를 겨냥해 감사원에 청탁성 압력을 넣었다. 감사원 주변에서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해왔다.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지역 정치세력'이라는 표현은 황 군수(무소속)와 경쟁관계에 있는 민주당 쪽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당시 민주당 강진군지역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강진 민주당은 위원장을 비롯해 누구도 감사원에 청탁성 압력을 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황 군수는 지난 지방선거 때 민주당적을 버리고 '자치단체장 정당공천제 폐지운동'을 앞장서 이끌어왔다. 다음 총선, 또는 지방선거 전남지사 출마예상자로도 거론된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특정 정치세력이 '잠재적 정적(政敵)'을 견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흠집을 내려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나돌았다.
◆"신중한 수사로 갈등 줄여야"
검찰 결정으로 이번 사건은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광주경찰청 간부는 "불법 혐의가 있었고 감사원 수사의뢰가 있었기 때문에 수사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당사자로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라며 "검찰의 결론에 대해 특별히 언급할 것은 없다"고 밝혔다.
황 군수는 "감사원과 경찰이 무리한 감사와 수사를 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을 확인했으나, 갈등을 매듭짓기 위해 모두 묻고 가겠다"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인격적 고통을 당하는 동안 성원해준 주민과 시민단체 등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치단체 공무원들을 상대로 같은 사안에 대해 감사와 수사가 5차례나 이어진 데다 수개월에 걸쳐 압수수색과 소환 등 수사가 진행되면서 초래한 갈등과 행정력 낭비 등은 적잖은 시사점을 남겼다.
경찰이 강진의 상황과 함께, 다른 자치단체의 장학재단 운영실태 등을 충분히 검토해 수사 방향을 신중하게 결정했더라면 이번 사건으로 치러야 했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