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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부활하는 '造反有理'

화이트보스 2011. 12. 12. 10:52

한국서 부활하는 '造反有理'

  • 김태훈 국제부 차장

  • 입력 : 2011.12.11 23:17

    김태훈 국제부 차장

    1966년 6월, 중국 칭화(淸華)대부속중학교에 "혁명은 곧 조반(造反)이다"라며 문화대혁명을 찬양하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조반'은 마오쩌둥(毛澤東) 어록에 수록된 "마르크스주의는 복잡하기 짝이 없지만, '조반유리(造反有理)'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에서 따온 말이다. '이유가 있으니까 반항한다'는 뜻인 이 사자성어(四字成語)는 그 후 10년간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다.

    문화대혁명의 행동대원이었던 홍위병들은 옛 왕조의 궁궐과 사당을 부수고 사람들을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추종자)로 몰아 죽이면서 "조반유리"를 외쳤다. 조반유리는 그들에게 편리한 면죄부 노릇을 했다. 무슨 행동을 하든 '반항을 할 이유'만 있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류사오치(劉少奇)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맹목적인 규탄 행위는 혁명운동을 훼손시킨다"며 '반항의 이유'를 대는 것 못지않게 그 이유가 타당한지도 묻고 행동할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학생운동을 진압하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말로 대중을 선동하고 류사오치를 반혁명으로 몰아 숙청했다. 그 후 마오가 죽을 때까지 누구도 홍위병을 말리지 못했다. 문혁 말기에는 홍위병들이 저마다 '반항의 이유'를 내세워 서로 충돌하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빚어졌다.

    1989년 10월 연세대에서 모 대학 학생 설인종(당시 20세)씨가 대학생들에게 끌려가 몽둥이로 구타당해 숨진 사건은 비록 홍위병식 조반은 아니라 해도,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유사했다. 당시 설씨를 정보기관이 대학에 심은 프락치로 오해한 운동권 학생들은 무고한 또래 청년을 불법적으로 납치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자 학생들은 교문 옆에 사과 대자보를 붙였다. 그 대자보를 읽다가 눈에 걸렸던 '시대의 아픔'이란 표현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부에서 운동권의 정보를 캐려고 학교에 프락치를 심어 학생들 사이에 불신을 조장하는 바람에 빚어진 사고이니 시대의 아픔"이라는 취지였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자신의 행위가 적절했는지 따지기보다는 자기 신념이나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한 뒤 그런 행위의 원인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이들이 있다. 지난달 26일 발생한 박건찬 서울 종로경찰서장 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경찰서장 폭행이라는 불법행위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박 서장이 시위대 안으로 들어간 행동이 폭행을 유도한 꼼수라느니, 흥분한 시위대를 자극한 잘못이 먼저라느니 하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일부 의원들은 "정부·여당이 한·미 FTA를 강행처리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조반유리식 '행위 유발론'을 들고나왔다. 이유가 있어서 반항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FTA에 찬성하는 의원이 최루탄을 터뜨리고 "야당이 무작정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대면 어쩔 것인가. 그때에는 "너는 틀렸고 나는 맞았다"라고 우기기라도 할 것인가.

    자기주장이 옳다는 판단만 서면 제멋대로 행동해도 좋다는 식의 독선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국회의원이고 입법부고 필요 없다. 그냥 완력의 벌판에서 힘으로 승부를 가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