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2.01 22:22
주용중 정치부 정당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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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에서 제일 기죽은 집단 중 하나가 당원일 것 같다. 내 손으로 당 대표 뽑고 대선 후보 뽑는 맛에 당원 했는데 이젠 영 아니다. 당비 한 번 낸 적 없고, 당 행사 한 번 참석하지 않은 '시민'이 당 선거의 주인인 것처럼 지도부가 떠받든다. 시대가 변했으니 흥행을 위해 그렇게 하는 걸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아무렴 당이 잘되는 일이라는데…. 그래도 홀대당하는 것 같아 서글프다. 여도 야도 마찬가지다.
요즘 당원은 미운 오리 새끼다. 지난 세월 전당대회 때마다 두툼한 돈봉투 받으며 호사해온 양, 도매금 취급을 받고 있다. 솔직히 먼 길 나선 일부 당원들이 교통비, 식비 정도 지원받는 게 관례였다. 시대가 변했으니 그런 것도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치자. 그렇다고 모든 당원이 무슨 큰 비리를 저지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아무래도 심하다. 여도 야도 마찬가지다.
기죽은 걸로 치면 한나라당 쪽이 더하다. 요즘 어디 가서 한나라당 당원이라고 말하기가 면구스럽다. 당명마저 싹 바꾼다는데 총선·대선은 불안하기만 하다. 20년간 서울에서 한나라당 열성당원이었다는 P씨는 "우리가 뭐 잘못한 게 있나요"라고 했다. 당이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당이 민심에서 멀어지자 그 책임을 아래로 떠넘기려는 것 같아 서운하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2010년 선관위에 신고한 당원은 209만명이다. 지금 이들에게 당원이냐고 묻는다면 과연 몇 %가 그렇다고 답할까.
민주통합당은 지난달 지도부 경선 때 대의원과 당원 15만명, 시민 65만명이 참여하는 호황을 맛봤다. 민주통합당의 기록상 당원은 205만명이다. 구(舊) 민주당 당원 192만명의 당적이 자동이체됐다. 그런 만큼 유령당원도 적지 않다. 전당대회 후 당원들이 별로 늘지도 않는다. 당원 아니어도 선거 때면 '당원 행세'할 수 있는데 귀찮게 당원이 될 필요가 뭐 있는가.
정당정치의 일부 기능을 SNS에 기반을 둔 직접민주주의가 대체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직접민주주의는 여론의 쌍방향 소통에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여론에만 휩쓸리는 정치는 순간순간 재미를 볼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중심을 잃게 된다. 그 중심을 잡는 것이 정당이고 정당의 기둥이 당원 아닌가.
유력 대선주자 스트로스 칸의 성추문으로 타격을 입은 프랑스 사회당이 반전하게 된 계기는 작년 말 대선 후보 경선에 일반 시민들을 참여시킨 것이다. 2006년 경선 땐 당원 18만명이 투표했지만 작년엔 당원과 일반시민 280만여명이 투표했다. 사회당은 이들에게 그냥 투표만 하도록 한 게 아니다. 1유로(1471원)를 내고 '가치 헌장'에 서명하도록 했다. 헌장은 '나는 자유, 평등, 박애, 정교분리 원칙, 정의, 연대를 수반한 진보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좌파와 공화국의 가치를 신봉한다'는 내용이다.
민주통합당 원혜영 전 대표는 지난달 전당대회를 준비하면서 프랑스 사회당처럼 헌장을 만들어 서명을 받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모바일 투표를 하려면 그런 게 거추장스럽다는 당내 의견에 밀려 채택되지 않았다. 원 의원은 요즘 자신의 지역구에서 입당원서를 받을 때 '나는 민주통합당의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 한반도 평화와 통일, 비정규직 차별 철폐 정책에 동의한다'는 내용에 서명을 받고 있다.
여든 야든 국민 지지를 받기 전에 당원의 신뢰를 받아야 승리한다. 그런데 지금 여야는 당의 가치에 동조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당원들을 잃어 가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