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2.09 23:18 | 수정 : 2012.02.09 23:27
민주통합당 현역 의원과 총선 예비 후보 100여명이 8일 미국 대사관 앞에 몰려가 한미 FTA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상·하원 의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미국 대사관 측에 전달했다. 민주당은 편지를 통해 "4월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면 한미 FTA 폐기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12월 대선에서 승리하면 FTA 협정은 자동 종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망(輕妄)스럽기 짝이 없다. 이런 당(党)이 권력을 쥐고 이 나라를 10년 동안이나 쥐고 흔들었다는 게 사실인가 믿기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론 민주당이 이렇게 빨리, 이렇게 난폭하게 자기네 뜻을 밝히고 행동에 나선 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른다. 민주당이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승리하면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어떻게 취급받을 것인가 하는 점을 확실하게 내다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4월 총선에서 다수당이 될 거라는 게 굳어가는 상황이다. 민주당 말대로라면 민주당이 다수당인 국회는 이미 발효(發效)된 한미 FTA의 전면 재협상을 결의하거나 작년에 국회를 통과한 15개 부수(附隨) 법안을 원래 상태로 재개정하는 방식으로 FTA 협정의 효력을 중단시킬 것이다. 이 소식은 단번에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대통령이 민주당의 FTA 부수 법안 재개정이란 정치적 태클에 거부권을 행사해도 불신받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국제정치적 신용도(信用度)는 회복되지 않는다. 민주당의 다음 집권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 대한민국과 협정을 맺고있는 나라들은 대한민국을 다시 보고 유사시(有事時)에 대비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 12월 대선에서 민주당 집권이 확정되면 대한민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언덕에서 굴러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두 당사국(當事國) 간에 조인되고 비준된 국제 협약은 국내법과 같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몇 달도 채 안 돼 스스로 폐기하면 그 국회와 그런 정치는 국민의 불신과 배격을 받을 게 분명하다. 국제사회는 더 냉혹(冷酷)하다. 대한민국은 세계 100개국과 각종 조약을 체결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조약 당사국 상호 간 의무와 권리를 규정한 각종 협약의 보호 아래서 상품을 팔고 원자재를 사들인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통상 관련 협약을 헌신짝 취급하면 상대국도 우리에게 그런 대접을 할 게 분명하다. 신용이 하락하면 돈을 빌리는 금리(金利)도 올라간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외화 고갈(枯渴) 같은 절박한 경제 위기를 당했을 때도 한국의 약속을 그대로 믿고 도와줄 나라는 사라질 것이다.
지금 민주당에서는 미군 기지 평택 이전(移轉)을 반대하고 본인이 현장에서 난투극을 벌였거나 가족이 그 사태에 깊이 개입했던 인물들이 당의 핵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통합진보당과 합당하거나 선거에서 정책 연대(連帶)를 형성할 경우 이런 색깔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한미 안보 조약도 손대고 싶어 만지작거리는 세력의 목소리도 더 커져간다는 말이다. 한미 안보 조약도 FTA처럼 당사국 한쪽이 효력 정지를 상대국에 통보하면 1년 후 자동 폐기되도록 돼있다.
민주당 주도 아래 한미 안보 조약도 한미 FTA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밟게 되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안보적·경제적 발판을 잃고 정처 없이 표류(漂流)하게 될 것이다. 5000만 국민이 이리와 승냥이가 날뛰는 무정부적 약육강식의 국제정치 속에 아무런 자기 보호 장비 없이 내던져진다는 말이다.
한미 FTA는 기적의 묘약(妙藥)도, 독극물(毒劇物)도 아니다. 대한민국 생존을 모색하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민주당의 정신적 아버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협상을 시작해 끝맺고, 중국과 일본이 한국과 같은 시도를 하는 걸 보면 너무나도 자명(自明)한 이치다. 그러나 한미 FTA 앞에서 민주당은 귀를 닫고 눈을 감아버렸다. 차기 집권 세력으로 유력시되는 정당이 국민의 현재와 미래를 내동댕이치면 국민이 눈과 귀를 떠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