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2.16 22:27
한갑수 21세기에너지연구회 회장

저렴한 친(親)환경 에너지로 매력적인 혜택을 주지만 엄청난 재앙도 안겨줄 수 있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어떤가. 에너지 자원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 발전량 기준 34%를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나라, 이산화탄소를 2009년 기준 연간 5.3억t 배출하여 세계 여덟째 온실가스 배출국이 된 나라…. 한국은 원전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특히 지난해 9월 대규모 정전 사태 이후 블랙아웃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는 우리 에너지 수급 구조에서 원전 비중을 감소하거나 제외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우리의 원전 산업은 안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제도적·기술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며 재정적으로도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정책과 사업 결정이 투명하게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지난해 대통령 직속으로 출범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을 더 강화하여 안전 관리의 실효성이 확실하게 담보돼야 하며, 설계 기준을 초과하는 중대 사고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 계획 확보와 지진·해일에 의한 구조물·기기의 안정성 확보, 침수 발생 시 전력·냉각·화재·방호 계통의 건전성 확보 강화 등 사고 사례 분석을 통한 대비는 물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에 대한 예방 조치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우리 원전 산업의 현안은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대책이다. 방사선 방출량이 자연 상태로 돌아오는데 수만년이 소요되는 사용 후 핵연료는 원자로에서 방출된 이후에도 뜨거운 열을 계속 방출하므로 40~50년 동안은 지상(地上)에서 안전하게 보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중간 저장 시설을 만들어 상당 기간 저장 보관한 후 재활용할 때에는 재처리하고도 남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직접 처분할 때에는 사용 후 핵연료 자체를 안전한 금속통에 넣어서 400~500m 지하 저장 시설에 영구 보관해야 한다. 지금 원자력발전소 수조 안에 저장되어 있는 사용 후 핵연료의 저장 포화 연도가 2016년이었으나 이를 다시 조밀 저장 등의 방법으로 2024년까지 늦출 수 있다. 그러나 경북 경주시에 건설되고 있는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의 뼈아픈 경험을 감안할 때 중간 저장 시설은 지금 당장 공론화 과정을 거쳐 부지 선정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용 후 핵연료 관리의 모범 국가인 스웨덴과 핀란드는 1980년대 초부터 사용 후 핵연료의 최종 처분 방안을 국민에게 알리고 일관되고 투명하게 추진해왔다. 그 결과 두 나라는 2020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심지층(深地層) 처분장을 건설하고 있다. 유럽공동체는 최근 모든 회원국에 사용 후 핵연료 최종 처분장의 건설·운영 방안을 국가 프로그램으로 제출하라고 규정하였다. 우리도 국민이 공감하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방안을 만들어보자는 시도는 5년 전에 시작됐으나 아직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후손의 번영과 안위를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의 뒤편에 쌓여있는 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정책에서도 국가적 진보를 이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