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4.30 22:06
원자력 발전의 '본향' 울진·월성 병원·마트·영화관도 없는 '오지'
그들에게 原電은 생명줄이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흉물 취급
비과학적 오해·선동이 뒤흔들어 발전소만 덩그러니… 앞길 막막
문갑식 선임기자

돌아올 때는 더했다. 지름길이라 여겨 영양~봉화 쪽을 택한 게 실수였다. 재를 넘으면 영(嶺)이 앞을 막았고, 그 뒤에는 산이 버티고 있었다. 인적이 드물어 길을 물어볼 사람도 찾기 힘들었다. 북부 경북은 그야말로 '무인지경(無人之境)'이었다.
8년 만에 그 길을 다시 밟았다. 이번엔 가족 대신 경북도청 김승열 사무관과 함께하는 1박2일 코스였다. 신(新)경주역에 도착해 영덕~울진을 달려보리라 마음먹은 것은 과학자인 이인선 경북 정무부지사를 만났을 때였다. 그가 말했다. "서울 분들은 원자력발전소를 혐오시설로 여기는데… 원전(原電) 동네를 가본 적이 있나요?" 그 말을 새기며 나선 여정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울진에서 만난 김중권 부(副)군수는 양팔을 등 뒤로 돌려 대각선으로 맞잡는 자세를 취했다. 그의 권유에 따라봤지만 굳어진 몸이 거부했다. "안 되지요? 두 팔이 닿지 않는 거기가 울진이라고 보면 됩니다."
울진은 이 땅에 남은 마지막 극지(極地) 비슷한 땅이다. 원시림이 울창해서가 아니다. 지형이 유독 험난해서도 아니다. 서울에서 며칠 가야 할 만큼 떨어져 있지도 않다. 울진을 가는 방법이 국도 7호선, 외통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국도 7호선은 부산~원산선이었다. 1963년 부산~온성을 잇는다 해서 부온선(釜穩線)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동해간선선으로 불린다. 총연장 56㎞인 이 도로는 2년 전에야 4차선으로 확장됐는데 울진 쪽만 2차선이다.
한국 원자력발전의 본향(本鄕)은 그 끝에 있었다. 1982년부터 2005년까지 건설된 원전이 6기다. 지금은 2기의 신(新)울진원전이 건설 중이며 다시 2기가 추가될 예정이다.
원전이 생긴 지 30년 됐지만 나아진 게 별로 없다. 울진원전 직원은 "쇼핑은 삼척, 영화 보려면 포항에 가야 하고, 주말이면 다 대구나 울산으로 빠져나간다"고 했다. 다른 직원은 "이곳에는 변변한 병원도 없다"고 했다.
사정이 이러니 자녀 둔 가장에게 울진은 영락없는 유배지다. 오면 빠져나갈 궁리부터 하는데 그걸 비난할 수도 없다. 오죽하면 한국수력원자력은 신입사원 선발 때 '울진에서 10년 근무 가능자 우대'라는 조건을 붙인다고 한다.
경상북도는 '원전(原電)북도'로 불린다. 그렇게 불리는 데는 경주의 몫도 크다. 월성원전은 울진과 같은 6기가 가동된다. 여기에 신월성원전 4기가 추가될 예정이다. 지척에선 2014년 완공을 목표로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짓고 있다. 현재 가동 중인 국내 원전은 21기다. 울진과 경주의 12기만으로도 전체 원전의 절반이 넘는다. 경주에서 지척인 부산 고리원전과 신울진·신경주에 짓고 있는 8기까지 합치면 경북 동해안은 한국 에너지의 심장인 것이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다. 이런 곳에 원전과 방폐장(放廢場)을 유치한 이유가 있다. 몇 푼 안 되는 박물관 입장료로는 지역 발전을 꾀할 수 없었다. 그나마 경주는 울진보다 사정이 낫다. 울진이 내세울 건 온천과 겨울 한 철 반짝하는 대게밖에 없다. 먹고 살려고 남들이 외면하는 원전을 유치한 두 지역이 꾸어온 꿈이 작년 3월 이후 올스톱됐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에 놀란 이들이 원전을 흉물 취급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겐 원자력 발전이 태양광·풍력보다 이산화탄소 같은 환경 오염물질을 덜 낸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수력·화력보다 발전 단가가 현저히 낮다는 자료도 보일 리 없다. 오로지 타도해야 하고 뜯어내야 할 혐오시설일 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울진과 경주 사이에 낀 영덕은 새 원전을 끌어오겠다며 나섰다. 김성락 영덕군 기획감사실장은 "10만명이 넘던 인구가 4만명으로 줄었는데 원전 외에 무슨 방도가 있겠느냐"고 했다. 그들에게 원전은 생명줄인 것이다.
경상북도는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Cluster)'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발전소만 덩그러니 있는 곳에 원자력산업진흥원, 제2원자력진흥원 같은 시설과 원자력마이스터고, 원자력 기능인력교육원 등 교육시설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런 꿈이 후쿠시마 한방에 치명상을 입었다. 여기에 총선·대선 등 정치 행사가 줄줄이니 원전의 '원'자도 입에 담기 어렵게 됐다. 남들이 싫어하는 시설을 받아들여 나라를 먹여 살리는 고장에서 목격한 것은 봄볕에 널린 오징어와 그것을 뒤흔드는 거센 해풍(海風)이었다.
원전 관련 시설을 유치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에너지 수도'로 키우려는 꿈도 지금 오징어 신세와 다를 바 없다. 다만 그것을 뒤흔드는 것은 동해의 바람이 아니라 비과학적인 오해와 무책임한 선동과 말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