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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꽁치·삼치… 씨 마르는 '국산 3치'서귀포=김남인 기자 kni@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화이트보스 2012. 3. 27. 11:10

갈치·꽁치·삼치… 씨 마르는 '국산 3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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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3.27 03:03

제주 서귀포수협 르포
수산물 소비 10년새 두배로, 치어까지 잡아 어장 황폐화… 명태·새우처럼 사라질 위기
고유가 겹쳐 조업포기 속출, 아예 경매조차 없는 날도 "40년간 요즘 같은 적은 처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갈치뿐 아니라 삼치·꽁치 다 안 잡혀요. 40년간 배를 탔지만 요즘 같은 적은 처음입니다."(홍석희 남성수산 대표)

지난 23일 제주도 서귀포수협 공판장에서 만난 어민들은 한결같이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연근해에서 생선이 통 안 잡혀 경매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7시. 예정대로 경매는 시작됐지만 40분 만에 끝났다. 2~3년 전만 해도 이 공판장에는 하루에 생선 20마리들이 2000상자가 깔렸다. 경매에만 4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선장 강모(48)씨는 "선원 12명을 데리고 일주일간 동지나해까지 나갔지만 갈치를 지난해의 3분의 1(1000마리)밖에 못 잡았다"며 "기름값도 안 나온다"고 말했다. 이날 공판장 앞 항구에 들어온 어선 3척이 다 비슷했다. 전에는 8~9척이 생선을 풀었지만 지금은 어업 자체를 포기한 채 항구에 정박해 있다. 어민들은 최근 한우값이 30% 떨어진 것을 언급하며 '수산물 수요가 줄어들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심각한 것은 한국인의 밥상 메뉴 어종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 서민들 밥상에 자주 오르는 대표 어종(魚種)인 갈치·꽁치·삼치 등 이른바 '3치'가 연근해 바다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 어민들은 "바다에 물고기 씨가 말랐다"고 아우성이고, 시중에서는 국내산 생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다.

갈치·꽁치·삼치는 정부가 물가 관리를 위해 비축 품목으로 따로 관리한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 세 어종의 어획량이 급감해 가격이 치솟는 추세다. 수협중앙회가 최근 발표한 '주요 수산물 현황'에 따르면 갈치 생산량은 2010년 6만t에서 지난해 3만t으로 반 토막 났다. 같은 기간 삼치는 15%가, 꽁치는 20% 이상 줄었다. 올해 상황은 더 안 좋다. 올 1~3월 꽁치 어획량(표본조사)은 지난 5년간 평균의 15% 안팎에 그쳤다. '꽁치도 명태나 새우처럼 국내산이 사라질 날이 올지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반면 국내산 생선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26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도매가 기준으로 갈치(5㎏·중)는 11만6000원으로 1년 전(9만1650원)보다 25% 이상 올랐다. 삼치(6㎏·중)는 2만원에서 3만9000원으로 배 가까이 뛰었다. 냉동 꽁치(10㎏·중)도 1년 전 2만원에서 2만2000원으로 올랐다.

24일 오전 7시 제주도 서귀포수협 공판장에서 고등어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갈치·꽁치·삼치는 최근 어획량이 급감해 이날은 경매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서귀포=이종현 객원기자 grapher@chosun.com
지난해 초에는 수온 저하 현상으로 고등어 생산량이 급감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고등어가 '금값'이 됐다가 하반기에 수온이 회복되면서 가격이 안정됐다.

'3치'는 고등어보다 더 심각하다.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어획량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강수경 연구원은 "단순히 수온 문제가 아니라 세 어종 모두 전체적인 자원량이 굉장히 적다"고 말했다. 수산과학원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갈치는 한 번도 산란하지 못한 미성어(未成魚)가 대부분이었다. 서울시농수산물공사 수산팀 정원교 차장은 "국내 수산물 소비량이 10년 전과 비교해 두 배 늘어난 데다 어업 기술이 발달해 치어(稚魚·어린 물고기) 상태에서 사전에 포획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물고기가 제대로 크기도 전에 다 잡아버리니, 바다에서 물고기가 사라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꽁치·삼치 등은 저렴한 생선이어서 양식도 하지 않는다. 채산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의 기름값 급등도 어민들 발목을 잡고 있다. 수산과학원 강수경 연구원은 "꽁치는 가까운 바다에서는 어장 형성이 안 돼 동해 먼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기름값이 오르니 어민들이 조업을 포기한다"고 설명했다.

유통업체들은 유통 단계 축소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 이마트는 수산물 바이어들이 산지를 찾아다니며 유통 단계를 기존 5단계에서 '산지 위판장→소비자'로 줄여 갈치값을 기존 소매가보다 30% 저렴하게 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