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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은 발가벗어라

화이트보스 2012. 4. 2. 15:06

통합진보당은 발가벗어라

  • 신정록 정치전문기자

  • 입력 : 2012.04.01 22:40

    신정록 정치전문기자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1년 1월 10일, 당시 집권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의 장재식 의원이 탈당, 자민련에 입당했다. 장 의원은 동교동계 출신은 아니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한 공신이었다. 그런 그가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긴 것은 당시 19석이던 자민련을 원내교섭단체(20석)로 만들어주기 위한 집권층 내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 열흘여 전인 2000년 12월 30일, 역시 민주당의 배기선·송석찬·송영진 의원 등 3명이 자민련으로 '이적(移籍)'했다. 17석이던 자민련 의석을 채워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연대를 반대하던 자민련 강창희 의원이 교섭단체 등록을 거부하자 1명이 부족하게 됐고, 결국 장재식 의원을 한 명 더 빌려주기로 양당 간에 합의한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이 이런 몰상식한 일까지 하면서 자민련을 도와준 것은 자민련의 도움 없이는 국회 운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민주당은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준 뒤 한나라당 의원 빼오기, 무소속 의원 입당시키기 등 온갖 일을 다 하고도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자민련에 의원을 꿔줘 원내교섭단체를 만들어준 것은 자민련을 친여(親與)로 묶어두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개개인이 독립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임대 물건(物件) 비슷하게 된 셈이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국회 과반(過半)을 확보하지 못한 집권당은 대개 비슷한 일을 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모두 수단과 방법의 차이만 있었을 뿐 똑같은 일을 했다. '이적료'를 주거나 약점을 잡아서 협박했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돌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2004년 17대 총선 이후의 열린우리당, 2008년 18대 총선 이후의 한나라당은 행복한 정당이었다. 17대 때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어 '절반+2'였고, 18대 때 한나라당은 153석을 얻어 '절반+3'이었다. 특히 한나라당은 친박연대, 친여 무소속을 더하면 180석 안팎이나 됐다. 의원 빼오기 같은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이번 19대 총선은 의석구도로만 보자면 16대 때와 비슷하게 될 것 같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과반에 훨씬 못 미치는 제1당을 다투고, 통합진보당이 제3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차이점은 자민련이 통진당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자민련은 캐스팅보트를 쥐는 제3정당이었던 반면, 통진당은 제3당이 아니라 민주당의 '견인 정당'이 될 전망이다. 통진당 없이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게 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 것'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이제 한국 정치는 통진당을 새로운 식구로 맞을 수밖에 없게 됐다.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통진당을 빼놓고 한국 정치를 얘기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문제는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통진당이 정녕 원내교섭단체가 되기를 원하고 12월 대선에서 야(野) 공동정권의 한 축이 되기를 원한다면 발가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 10년 전, 20년 전의 과거까지 말이다. 이를 '철 지난 이념공세'라고 한다면 '비겁한 역(逆)색깔론'이라는 심판이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