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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의 새누리당' 연출한…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

화이트보스 2012. 4. 16. 16:27

'붉은색의 새누리당' 연출한…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

  • 최보식 선임기자

  • 입력 : 2012.04.16 03:08

    "선거판은 맹수들의 '정글'… 허점을 보이면 사정없이 물어뜯지만"
    “박근혜는 가끔 연설문 직접 써 강박 때문인지 문장 표현이 적확 민주당의 敗因은 승자의 자만심”
    내 별명은 ‘조변석개(早變夕改)’오늘 이랬다 다음 날 뒤집는다 권력이란 존재감을 맛보는 것

    "난 그렇게 생각 안 했다. 나는 승부사다. 이기려고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과반 의석을 넘길 줄은 나도 몰랐다고 대답했어야 하는데…. 조동원(55)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은 예상 답변을 비켜갔다.

    "내가 들어온 게 딱 100일 전이었다. 모두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잘해도 100석을 못 넘길 거라고 했다. 그때 나는 150석을 목표로 정했다. 여론조사에서 안 나타나는 '숨은 표'가 여당표라고 나는 믿었다. 투표 직후 출구조사가 나왔을 때 다른 당직자들은 '이 정도면' 안도했지만, 나는 충격을 먹었다. 나가서 폭탄주 석잔을 마셨다."

    그는 TV로 보던 모습보다는 약간 나았다. 선거에 이긴 뒤 당지도부에 끼여 현충원 참배를 했던 날이었다. 이 때문에 점퍼가 아닌 정장을 입었고, 수염 정리도 했다. 하지만 그 차림에 백팩을 메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이번 승리를 '박근혜 혼자의 힘'이라고 분석했다.

    "맞다. 그분이 정치 문외한인 나를 홍보수장으로 앉힌 것도 정당사에 없던 일이었다. 과거 천막당사에 버금가는 결단이었다."

    ―박근혜 위원장과는 그전에 인연이 없었다고 들었다.

    "내가 한나라당 성향이 아니었다. 제의가 왔을 때 두 번 거절하고서 만났다. 박 위원장이 웃으며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시험칠 때 곤욕을 치렀다'며 말을 건넸다(그는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등의 광고카피를 썼음). 순간 그에게 갖고 있던 선입견이 풀렸다.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잘못 본 것 아닌가. 박 위원장을 겪어본 사람들 중에는 '냉정한' '얼음 같은' '공주'라는 단어를 입에 많이 올린다.

    "지금까지 곁에서 지켜봐 왔지 않나. 따뜻한 사람이다."

    ―박 위원장의 '콘텐츠'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많다.

    "그는 가끔 연설문을 직접 쓰거나 일일이 고친다. 문장 표현이 적확(的確)하다. 자신이 내뱉는 말에 어김이 없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실제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다. 예측할 수 있다. 이는 훌륭한 보스의 덕목이다. 반면 내 별명은 '조변석개(早變夕改)'다. 오늘 이랬다 다음 날 뒤집는다. 내가 회사를 운영할 때 후배들의 원성이 높았다."

    ―서로 상반된 스타일이라면 안 맞는 것 아닌가?

    "새누리당을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는 목표는 같다. 그 안에서 나는 오늘은 짜장면, 내일은 팔보채 등 변화의 메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내게 절대적 권한을 줬다. 사실 내 나이에는 바깥에 나가면 일감도 안 주는데.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승부욕도 발동했다."

    그는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파란색을 붉은색으로, 선거 현수막의 디자인까지 바꿨다. 내용물은 몰라도, 소위 눈에 띄는 당(黨)의 간판류는 그가 모두 바꿨다. 당 안팎의 '정통'세력은 이런 그에게 분개했지만, 선거 결과는 그에게 유리하게 나왔다.

    ―당초 새누리당 당명에 대한 거부감이 만만찮았다.

    "외부에 새지 않기 위해 비밀 작업을 했다. 사전에 협의할 사안이 아니었다. 모든 걸 뒤집어쓰고 가야겠다는 똥배짱이 있었다. 비대위원회에서 뚜껑을 열었다. 3개 안을 후보로 올렸고, 이 중 나는 새누리당을 밀었다. 곳곳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메뚜기, 유치원, 강아지 얘기도 나오고. 김종인 위원은 '국민'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한 위원은 타협 정신을 발휘해 '새누리국민당이 어때?'라고 했다."

    ―박 위원장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몰리는 상황에서 내가 '국민 응모에서 나온 것을 골랐고 화합의 의미를 담고 있다'며 준비해온 글을 읽었다. 그러자 박 위원장은 '강아지 이름에 메리도 있지만 메리는 성녀 마리아에서 나왔다. 이름보다 이름의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때부터 분위기가 풀렸다. 김종인 위원은 '내키지 않지만 결정하면 따르겠다'고 물러났다."

    ―만약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그래도 밀어붙였을 것이다."

    ―끝까지 안 받아들여졌으면 그만뒀을 건가?

    "그건 전문가로서 할 태도가 아니다."

    ―무슨 소리인가?

    "안 받아들여졌다면 내 세일즈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광고전문가는 잘 만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기가 만든 것을 자기 상사에게 세일즈 못하면 끝난다. 고객에게 못 팔면 세상에 못 나온다. 첫째 덕목은 세일즈 능력이다. 그걸 못 하면 그 일을 그만둬야 한다."

    ―세일즈 방법은? 논리적으로 설득해도 안 먹힐 때도 많을 테고.

    "상사나 고객의 마음을 읽어야지, 그들이 원하는 바에 맞춰야 한다. 그런 설득에 나는 거의 실패한 적이 없었다."

    ―전문가로서 보기에는 최고의 작품인데, 고객의 생각과 상충되면 어떻게 하는가?

    "타협해야 한다.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차선'으로 가야 한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대세(大勢)에 지장이 없다면."

    ―당의 상징 색을 붉은색으로 바꿨다. '야당 색깔'이라고 반대도 심했지만, 어쨌든 빨간 점퍼의 후보들이 돌아다녔다.

    "우리가 변하겠다고 했으면 눈에 띄는 상징 색부터 바꿔야 했다. 선거가 끝난 뒤 붉은색 효과를 많이 봤다는 말을 들었다. 아픔과 환희의 감정을 공유하는 붉은색은 이미 월드컵 때 입증됐다. 국민들이 그쪽으로 가 있었다. 새누리당 사람들만 틀에 갇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좋은 게 좋다는 걸 싫어한다. 내부의 격론과 반대가 심할수록 속으로 웃는다. 파문을 일으키면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그 파문을 좋은 쪽으로 이끌면 성공이다."

    조동원씨는“민간인 불법 사찰문제가 터졌을때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foru82@chosun.com

    ―파란색은 문제가 많은가?

    "파란색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색이다.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들면 존립 자체가 어려웠다."

    ―당신은 '광고전문가는 소비자(국민)를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당시 관찰의 결론은?

    "비대위원회에 앉아 있으면 좌파 진영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많았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개혁을 많이 얘기했다. 박 위원장은 묵묵히 듣다가도, '타파' '이념 갈등' '편가르기' 같은 말에는 즉각 반응했다. '그래서 또 편가르기 하자는 말입니까'하는 식으로. 국민들의 생각도 그랬다. 정치판이 싸움하지 말고 국민들이 먹고 사는데 신경 써달라는 것이었다. '새누리당의 이념은 민생이다'라는 문안도 그렇게 나왔다."

    ―선거 홍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의사결정이었다. 우리 팀 체제와 운영을 그렇게 만들었다. 대선이 남아 있어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없지만."

    ―당신은 선거 구도를 '미래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새누리당' 대(對) '민주통합당은 대책 없는 당, 통합진보당은 위험한 세력'으로 몰고 갔다.

    "그런 구도를 만들고 싶다 해도 국민들이 이를 받아주느냐에 달렸다. 그때는 국민들 마음속에 이런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선거판을 '정글'로 봤다. 저쪽에 맹수들이 많다. 허점이 있으면 사정없이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대책 없이 달려들 것이다. 거기서 자기 페이스를 잃어버리면, 저쪽에서 대전제로 생각한 'MB심판'을 놓쳐버릴 것으로 봤다. 실제 그게 적중했다."

    ―민주당의 첫 헛발질은?

    "당 지도부에서 'FTA 폐기'를 주장한 것이다. '말 바꾸기'로 우리가 공격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터져 나왔을 때 새누리당의 참패는 확실해졌다.

    "당 이미지는 차곡차곡 쌓아온 것이다. 모든 사람의 노력으로 시간이 걸려서 이뤄졌다. 그걸 한방에 날려버리는 예상 밖의 악재는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막상 당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 됐구나 했다."

    ―청와대에서 "사찰자료 중에는 전(前) 정권의 것이 80%나 된다"며 바로 다음 날 반격했다. 당(黨)에서 청와대 쪽에 책임지라고 했나?

    "그건 모르겠다. 사실이 그렇다면 청와대로서는 당연히 대응해야 하지 않나."

    ―당신은 한 방송사의 '100분토론'에 출연해 "현 정부의 불법사찰은 모두 공개됐지만 전 정부의 불법사찰 자료는 숨겨져 있는데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대 토론자가 "증거를 갖고 말하느냐?"는 질문에, "저는 모르죠. 제가 자료를 접속하는 게 없는데 모르죠"라고 무책임하게 답변해 논란을 빚었다.

    "내가 망가진 거지. 나는 감성적인 사람이다. 토론에 맞지도 않고. 그때 '저는 모르죠, 그러니 특검해야 하는 거죠'라고 하려고 했는데, 뒷말을 못 했다."

    ―야당이 다 이겨놓은 선거에서 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승자의 자만심이다. 다 이겼다고 생각하고는 상대를 우습게 봤다. 대신 우리는 무서운 걸 아니까, '이만큼 온 것만으로 다행이다'라는 마음으로 임한 것이고."

    ―새누리당이야말로 '나꼼수' 김용민 후보를 찾아가 감사의 큰절을 올려야 한다는 농담도 있다.

    "민주당이 상식적인 생각을 했으면 코너에 몰리지 않았다. 그쪽은 득실 관계만 따졌다. '젊은 층은 우리 편인데, 젊은 표가 어떻게 되고, 이를 잃으면 어떻게 되나'는 식으로 계산하니 전체가 안 보인 것이다."

    ―반면 새누리당의 한계는 젊은이들이 투표소로 몰려오면 겁을 내는 것이다. 한심한 정당이라는 생각도 든다.

    "과거 선거의 외상(外傷) 때문에 그렇지, 극복해야 할 문제다. 내가 접해본 20대 상당수는 상식적이다. 무조건 저쪽 편은 아니라고 본다."

    ―선거판에 들어가보니 무엇이 재미있나?

    "그전에는 특정 제품의 소비자를 상대로 했는데, 이제는 5000만명을 상대로 한다. 살 떨리는 것이다. 정글은 상대를 잡아야 하지만, 동시에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어 흥미롭다. 박 위원장에게 '일생일대 해볼 수 없는 기회를 준 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 곁에 계속 남아 대선까지 갈 건가?

    "남아달라면 그럴 것이다."

    ―프로라면 제대로 몸값을 받아야 하지 않나?

    "약간의 활동비를 받았다. 이번 선거에서 증명이 됐다면 알아서 해줄 것이다.(웃음)"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에서는 졌다. 박근혜의 대선 전망은?

    "이번에 안 졌으면 다음 선거에서 더 한풀이가 일어난다. 얼마 정도 풀어준 것이 아닌가. 이제는 '변화 쇼'를 계속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정책 실천과 과감한 개혁으로 느끼게 해줘야 한다. 만약 과거의 한나라당으로 돌아가면 내가 그만둘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보이던가?

    "어떤 현안에서 당 전체를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이해 관계에서 따진다는 점, 그리고 다들 참 불쌍하다는 점."

    ―잘난 사람치고 못 해서 안달이다.

    "내 눈에는 3D 직업이다. 하지만 매스컴의 조명을 받고, 한마디 하면 금방 신문에 난다. 이런 존재감을 맛보는 게 권력이다. 그러다가 맛이 가지 않나."

    인터뷰 이틀 뒤, 그는 붉게 염색한 머리를 트위터에 공개했다. "새누리당을 지지해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TV토론에서 한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했다. 이제 그의 머리 염색도 매스컴은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