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4.18 23:01 | 수정 : 2012.04.18 23:29
현행 헌법에 따라 1988년 이후 일곱 차례 치러진 총선에서 다수당이 과반 의석을 얻은 것은 단 세 차례였고, 그중 최다 의석은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이 차지한 153석이었다. 앞으로 바뀔 국회법을 거슬러 적용해 보면 88년 이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의안(議案) 단독 처리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게 된다. 우리 정당이 모든 사안에 대한 찬반(贊反)을 당론으로 정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내는 구습(舊習)이 바뀌지 않는 한, 개정 국회법 아래선 여야가 대립하는 의안은 아무것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국회법 개정은 18대 국회에서 해머, 전기톱, 최루탄까지 등장하는 원시적 충돌이 벌어지자 '몸싸움 방지 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국회법 개정안은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폭력 행위에 대해 최장 3개월 동안 세비(歲費)와 활동비의 절반 또는 전액을 삭감한다는 것을 도입했을 뿐이다. 개정 국회법이 다수당의 단독 처리를 사실상 봉쇄하는 내용을 담았다면, 폭력을 사용하는 소수당 의원에 대해서도 즉각 국회에서 퇴출시키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조항을 도입하는 게 균형 원칙에 맞는다.
우리 국회는 그동안 여야 입장이 다른 안건에 대해서는 절충안을 마련해 처리하는 합의 훈련을 받지 못했다. 절충안 마련이 실패할 경우 다수결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관례도 없다. 여야가 처음엔 강경 대치하는 쇼로 시작해서 국회 파행에 대한 여론이 따가워질 때쯤 상호 묵계하에 강행처리·결사저지 쇼로 마무리를 짓는 것이 쟁점 법안을 처리하는 해묵은 공식이었다.
다음 국회는 한미 FTA 재협상 여부와 같은 여야가 맞서온 쟁점에 대해 결론을 내야 하고, 복지 확대를 통해 나라 운영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합의도 해야 한다. 이런 과제를 앞에 둔 국회가 몸싸움 몰아내려다 의안 처리 기능이 마비된 '식물 국회'를 만들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