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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과 진보의 붉은 장미

화이트보스 2012. 5. 14. 13:56

유시민과 진보의 붉은 장미

기사입력 2012-05-14 03:00:00 기사수정 2012-05-14 03:00:00

1년 전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죄인’이었다. 4·27 재·보선 경남 김해에서 벼랑 끝 전술 끝에 야권 단일후보로 내보낸 자당 후보가 패하자 “큰 죄를 지었다”고 했다.

그 유시민이 지금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로 거의 영웅이 됐다. 그가 없었으면 통진당의 반(反)민주적 행태도 안 드러났다. 진보정치를 혁신할 정치인은 유시민밖에 없다고 일각에선 감동의 도가니다.

마키아벨리, 從北정당 몰랐을까


그의 화려한 부활에 큰 몫을 한 사람이 그제 통진당 공동대표직을 사퇴한 이정희다. 두 사람의 대담집 ‘미래의 진보’를 기획한 인터넷신문 ‘민중의 소리’ 이정무 편집장은 “작년 3월 이정희-유시민 토크쇼에 2000여 명이 운집한 것을 보고 충격 받았다”고 했다. 민중의 소리는 통진당 당권파와 가깝고, 비례대표 2번 이석기가 이사를 지낸 매체다.

‘진보정치의 붉은 장미’로 칭송받은 이정희, ‘촌철살인, 삐딱해 보이는 몸가짐, 뛰어난 글솜씨가 동급 최강’인 유시민. 이들의 연합은 ‘2013년 체제’를 꿈꾸는 세력에 대박상품으로 보였을 거다.

그 전략기획의 결실이 작년 7월의 대담집 출판기념회이고, 연말의 통진당 창당이다. 이정희만큼 관심을 못 끌었던 민주노동당은 한때 야권 대선후보감으로 첫손에 꼽혔고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유시민과 손잡고 통진당으로 변신함으로써, 비로소 대중적 진보정당이라고 주장하게 됐다. 당권파인 NL계(민족해방계열) 주사파는 당초 계산대로 몸집과 지지층을 늘렸다. 통합 전 유시민에 반대하던 세력을 제압하면서 패권도 확장했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혈혈단신이던 유시민 역시 재기의 발판을 찾았다.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할 수 있는 확실한 필살기가 야권연대지만 참여당은 자신이 없고 이 대표께서 기적을 이뤄 달라”고 간청한 대로 드디어 야권연대에 편입될 수 있었다. 영남 출신이어서 지역구도 양당정치의 희생양으로 자처했던 정치적 한(恨)도 통진당 덕분에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뜻밖에 문재인에다 안철수까지 떠올랐다. 지금은 유시민이 이정희와 당권파를 뿌리째 흔들 만큼 우뚝 섰지만, 야권 단일후보로서의 유시민을 거론하는 사람은 없었다. 통진당 경선 부정이 불거지기 전까지는!

그래서 궁금해지는 거다. 유시민은 통진당의 몸통인 민노당이 원래 그런 정당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합쳤단 말인가? 몰랐다가 이제 와서 구국의 전사처럼 나선 건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제가 이 대표님보다 훨씬 마키아벨리적”이라고 책에서 고백했듯 그는 정치가 기본적으로 권력투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이 말은 자기 자랑이기도 했을 것이다). 2010년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왔을 때 주사파 경기동부연합 핵심들의 선거운동 도움까지 받았는데 그 속성을 몰랐다면 유시민도 아니다.

통진당 위헌 해산에 앞장서라

이정희는 대담에서 “중요한 핵심은 (앞으로 생겨날) 진보통합정당은 그냥 정당, 그러니까 국민정당으로 표현되는 정당이 아니라 진보정당”이라고 강조했다. 국민보다 ‘진보’가 상위개념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유시민도 통합 전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같은 통진당 강령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방송을 통해 만방에 밝혔다. 북한 3대 세습에 대해선 “연대 협력하는 정치세력 간에는 던져서는 안 될 질문 형식”이라며 이정희 편에 확실히 섰다.

10일 유시민이 통진당의 애국가 거부 문제를 제기한 것은 결코 지나가는 말로 한 게 아니었다. 총선 결과가 실망스러운 이유로 “우리 당의 정책 이념 행동방식 문화양식 등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통진당의 아킬레스건인 ‘이념’을 거론하고는 애국가를 꺼내들었다.

마키아벨리적 감각을 타고난 그가 현 상황에서 국민이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를 리 없다. 경선 부정이 민주주의 원칙을 어겼다는 점을 조목조목 밝혔던 7일, ‘왕년의 스타’가 모처럼 받은 스포트라이트를 유시민은 다시 놓치기 싫었을 터다.

기회주의여도 좋고, 뒤늦게 깨달은 애국심이라도 좋다. 통진당 종북세력이 대한민국 국회에 들어가 그제 같은 패악을 부리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유시민밖에 없다. 그는 “부정 경선에 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권한이 없어 공개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 자료를 근거로 검찰에 당당히 수사를 요구해 통진당이 위헌정당으로 해산 명령을 받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

분당(分黨)은 절대 안 한다고 몇 번씩 공언한 것, 안다. 그러나 유시민의 말 바꾸기가 한두 번인가. 수차 당을 깨고 나갔는데 한 번 더 깬다고 망신스러울 것도 없다. 오히려 재승덕박이네, 싸가지 없네 같은 비판에서 벗어나 우리 시대 가장 절실한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다.

혹시 또 아는가. 대통령이 안 된다 해도 현생에 나라를 구했으니 다음 생에선 사랑받는 정치인으로 태어날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