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 격랑이 인다
기사입력 2012-06-07 03:00:00 기사수정 2012-06-07 04:02:13
폰트 뉴스듣기

이철희 정치부 차장
냉전시대 소련군이 대규모 작전기동군(OMG)을 운용한 것도 전격전에 대한 맹신과 무관치 않다. OMG 전략은 필요하면 전술핵을 쏴서라도 전선에 돌파구를 마련한 뒤 몇 개 사단의 기갑부대를 신속하게 적진 후방 깊숙이 진입시켜 핵심시설을 마비시키는 작전이다. 전략적 목표물을 일거에 파괴해 적군을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뜨리기 위함이었다.
이에 맞서 미군이 개발한 것이 공지전(空地戰·AirLand Battle) 교리다. 육군과 공군이 긴밀한 통합작전을 펼쳐 개전 초기에 적 선봉의 공격을 방어하는 동시에 적 후방에 포진한 주력부대를 막강한 화력으로 격파해 전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작전을 말한다. 적 전력의 양적 우위에 맞서 질적 우위의 타격수단으로 대응하는 것이었다.
최근 미국 국방부는 ‘공해전(空海戰·AirSea Battle)’ 교리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올해 초 새로운 국방정책지침을 통해 미국 대외전략의 중심축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기겠다고 선언하면서 군사전략 차원에서 내놓은 대응책이다.
중국은 1980년대 수세적인 연안 방어에서 적극적 근해 방어로 전환한 이래 중요한 이해가 걸린 해역에 잠재적 적의 접근을 차단하는 ‘반접근·지역거부(anti-access/area-denial)’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의 공해전 개념은 이런 중국의 방어선을 수중, 수상, 공중, 우주, 사이버 무기들로 뚫고 중국 연안 깊숙이 군사력을 투사하겠다는 구상이다.
당장 중국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해군 함정의 60%를 태평양에 배치하겠다는 미국의 계획에 대해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남중국해 분쟁에도 “역외 국가는 나서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관영 매체는 “중국을 악마화해선 안 된다”는 전직 미군 고위인사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중국은 첫 항공모함 바랴크의 취역도 서두르는 분위기다.
사실 공해전 개념이 확립된 교리로 구체화되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예산 감축 압박에 시달리는 미군이 이를 추진할 여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과거 공지전 교리가 만들어질 때 그랬듯이 미군의 작전교리가 바뀌면 전 세계적으로 군사혁신의 거센 물결이 일었다. 동맹인 한국의 군사정책에 미칠 여파도 지대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둘러싼 미중 간 신경전이 서태평양 패권 다툼의 전주곡이라는 점이다. 당장은 남중국해 및 동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이 갈등의 불씨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작 가장 위험한 화약고는 서해가 될 수 있다. 중국이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서해를 사실상 자기네 내해(內海)로 여기며 미 해군의 진입에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그 예고편이었을 뿐이다.
미국은 최근 중국을 겨냥해 일본과 ‘동적방위(動的防衛) 협력’에 합의했다고 한다. 일본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탐지를 내세워 이지스함을 서해에 배치하겠다고 밝힌 것도 속내는 중국 견제를 위한 서해 진출의 발판 마련에 있을 것이다. 한국은 북한 도발도 경계해야 하지만 태평양에서 이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타고 넘어야 하는 버거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철희 정치부 차장 klimt@donga.com
'경제,사회문화 > 정치, 외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충일 아침에 태극기를 달며 (0) | 2012.06.07 |
---|---|
국내외 경제현실에 눈감은 年 114조 복지공약 (0) | 2012.06.07 |
이해찬, 임수경 질문 이어지자 생방송 인터뷰 중 전화 끊어 (0) | 2012.06.05 |
생방송 인터뷰하던 이해찬, 임수경 질문에 '전화 뚝' (0) | 2012.06.05 |
이해찬 "'리틀 노무현' 김두관, 친노 중에서도 아주 핵심" (0) | 2012.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