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6.08 22:57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

최근 우리 노동시장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고용형태와 생산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는 점이다. 기간제·시간제·파견 같은 비정규직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사내하도급을 통한 생산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기업 근로자 간의 양극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19대 국회가 시작되기 무섭게 '희망 사다리' '민생 최우선'이라는 이름으로 여야가 앞다투어 비정규직·사내하도급·최저임금 관련 법안들을 제출하고 있다.
물론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급한 법 개정에 앞서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실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의 본질은 정규직 고용에 대한 과보호와 고임금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한 합당한 처방 없이 무조건 정규직으로만 근로자를 고용하고, 모든 차별을 없애고,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직접 채용하라는 요구는 정치적인 대증요법(對症療法)에 지나지 않는다. 비정규 고용에 대한 규제가 일자리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OECD의 권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정치권의 비정규직 대책은 취약계층 보호라는 이상적 목표만 내세우고 있다. 정규직 직접 고용이 아니면 안 된다는 노동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비정규직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겠다는 야당의 입법안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비정규직을 선택한 과반수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대다수 기업이 해마다 자동으로 급여가 오르는 연공급(年功給)을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하기도 어렵다.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해 차별을 금지하는 여당의 법안 또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사내하도급 근로자는 협력업체의 근로자인데, 서로 다른 회사의 근로자들을 비교해서 차별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처우를 원청업체 근로자와 동일하게 할 경우 조선업종에서만 연간 인건비의 24%에 해당하는 2조3000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 규모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은 없으며, 이는 사실상 해외로 생산기반을 이전하라는 말이다.
최저임금을 정액급여 평균의 50% 수준으로 하자는 야당의 법안 역시 실현 불가능하다. 최저임금을 현재 정액급여 평균의 절반인 시급(時給) 5600원으로 정할 경우 중소기업이 연간 부담해야 하는 추가인건비는 5조5000억원에 달하고, 이 가운데 5조원은 30인 미만 사업장이 부담해야 한다. 통계상의 정액급여 평균을 최저임금 결정의 법적 기준으로 설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실제 그렇게 규정하는 나라도 없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정책들이 필연적으로 고용악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유럽 재정위기로 전 세계 경제에 거대한 암운(暗雲)이 몰려오고 있고, 전망도 매우 비관적이다. 기업들도 이미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자칫 정규직·비정규직을 막론하고 대규모 실업사태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히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화려한 정치적 수사는 일자리 축소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