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겨례의 지도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화이트보스 2012. 8. 20. 16:48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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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2.08.20 15:44 | 수정 : 2012.08.20 15:48

    20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통령 선거 후보자 지명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전당대회에서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연합뉴스

    박근혜(60) 새누리당 전 대표가 20일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세 번의 대권 도전 끝에 얻은 성과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딸로 일찍이 정치를 체득한 그는 1998년 국회에 입성해 5선에 성공하기까지 질곡있는 정치 인생을 걸어왔다.

    오랜 정치 경험으로 쌓인 안정감이 그의 무기이지만 '유신'이라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단 한차례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나는 나라와 결혼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혀왔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되면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다.

    ◇양친을 흉탄에 잃은 '비운의 공주'

    박 전 대표는 1952년 2월2일 경북 대구에서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2녀1남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는 1961년 9살이라는 나이에 청와대 생활을 시작, 일찍이 원칙과 신념, 애국애족 등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장충초등학교, 서울 성심여중·고를 졸업한 뒤 당시 여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어 선택한 길이었다.

    졸업 후인 1974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으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그해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피격 당하면서 급하게 귀국해야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22살의 나이에 박 전 대통령 곁에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청와대 직원들의 보고를 빠짐없이 메모하는 등 나중에 '수첩공주'로 발전하는 꼼꼼한 면모를 보여줬다.

    그러나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마저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서거하자 박 전 대표는 18년 간 지내왔던 청와대를 떠나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은 박 전 대표의 첫 마디가 '전방의 상태는 괜찮습니까'였다고 한다. 오랜 청와대 생활로 다져진 의연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청와대를 나온 박 전 대표는 걸스카우트 명예총재, 육영재단 이사장, 영남대학교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을 맡으며 부모의 유지 계승에 전념했다.

    ◇1998년 정계 입문…'선거의 여왕'되기까 

    박 전 대표가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97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도우면서부터다.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 전 대표는 '박정희 향수' 등에 힘입어 수월하게 당선돼 본격적인 정치 인생에 발을 들여 놓았다.

    정계 입문 2년만인 2000년에는 한나라당 부총재로 선출되면서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16대와 17대 대선 등 두차례에 걸쳐 대권을 노렸지만 매번 당내 경선에서 패배, 본선에는 오르지 못했다.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대세론에 대항해 당내 개혁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2002년 3월 탈당을 선언,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다시 돌아와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도왔다.

    2007년에는 당시 이명박 후보와의 당내 대선후보 경선 결과, 일반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투표에서 앞섰지만 여론조사에서 뒤지면서 아깝게 패배했다.

    그런 박 전 대표의 또 다른 수식어 중 하나가 아이러니하게도 '선거의 여왕'이다.

    박 전 대표는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누구도 하지 못할 구원투수 역할을 해왔다.

    2004년 3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역풍을 맞으며 국민들에게 외면을 받았을 때, 당시 대표를 지내던 박 전 대표는 전국을 누비며 눈물로 한 표를 호소해 121석을 확보, 이른바 '천막당사의 기적'을 이뤄냈다.

    2006년 5·31 지방선거 때 서울 신촌 유세 과정에서 '커터칼 테러'를 당해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있으면서도 "대전은요?"라고 말해 열세였던 대전 지역에서 한나라당 당선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박 전 대표는 홍준표 전 대표 등 당지도부가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파문 등으로 사퇴하자 비등한 당내 요구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나서 19대 총선 국면을 전두지휘하며 152석을 획득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정책적으로는 2009년 9월~2010년6월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해 결국 무산시켰다. 이 일을 계기로 박 전 대표는 충청권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10여년 동안 의원 5선을 이루면서 박 전 대표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강단 있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공천 헌금 등 각종 파문에도 단단했던 '대세론'

    박 전 대표의 이번 대선 슬로건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였다.

    '국민 행복'이라는 그의 평소 정치 철학을 담은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일찌감치 '대세론'을 굳히며 대선 후보 당선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경선 초반부터 경선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이재오 의원과 경선 룰 변경을 두고 갈등을 벌였다.

    박 전 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는 안된다'는 원칙을 고집, 결국 두 의원은 경선에 불참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 친박(친박근혜)계 주류 측도 경선 룰 변경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사당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본격적인 대선 경선 가도에 들어가서는 공천 금품 수수 의혹이 불거지면서 비박 후보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당 지도부의 책임을 요구한 임태희·김태호·김문수 후보 등이 '경선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토론 일정이 무산되는 등 파행을 겪기도 했다.

    또 박 전 대통령 시절 5·16 군사 쿠데타 등 박 전 대표의 역사 인식 논란 등도 계속해서 논쟁의 대상이 됐다.

    이런 과정 속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당내 지지율에서는 굳건한 1위 자리를 지켰다.

    원칙과 신뢰에 대한 특유의 고집 때문에 때로는 권위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불통 이미지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가 이번 대선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려면 아버지의 정치를 극복하고 새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경력

    △경북 대구(60) △장충초 △서울성심여중 △서울성심여고 △서강대 전자공학 학사 △퍼스트레이디 대리 △걸스카우트 명예 총재 △영남대 이사 △육영재단 이사장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 △15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부총재 △16대 국회의원 △한국미래연합 대표최고위원 △한나라당 대선 선대위의장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 △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18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19대 국회의원(비례대표)

    ◇박근혜는 누구?

    △생년월일 : 1952년 2월2일

    △출생지 : 경북 대구

    △신체 사이즈 : 키 162cm·허리 26인치 반

    △혈액형 : B형

    △가족 관계 : 미혼, 동생 박근영·박지만

    △학력 : 서울 장충초·서울성심여중·서울성심여고·서강대 전자공학 학사

    △주량 : 소맥 4잔

    △흡연 여부 : 비흡연

    △종교 : 없음

    △좌우명 :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자

    △취미·특기 : 산책·단전호흡·요가·탁구·테니스

    △애창곡 : 천생연분(솔리드)·빙고(거북이)

    △존경하는 인물 : 부모님·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

    △재산 신고액 : 21억8100만원(2012년 3월)

    △주요 경력 : 퍼스트레이디 대리·걸스카우트 명예 총재·영남대 이사·육영재단 이사장·한국문화재단 이사장·정수장학회 이사장·한나라당 대표·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15~19대 국회의원

    △주요 저서 : 내 마음의 여정(1995)·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 삼아(1998)·나의 어머니 육영수(1999)·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