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8.20 22:55
새누리당은 20일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 박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大)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여성이 우리나라 주요 정당 대선 후보가 된 것은 박 후보가 처음이다. 박 후보는 1961년부터 1979년까지 집권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드문 기록도 세웠다.
박 후보는 이번 경선에서 84%를 득표했다. 2002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대세론'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 68%보다도 훨씬 높다. 반면 이번 경선 투표율 41.2%는 2007년 경선의 70.8%는 물론, 2002년 경선의 53.3%보다도 크게 밑돈다. 경선이 일방적 승부로 흐르면서 국민 관심이 그만큼 멀어진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열기를 본선거를 위한 동력(動力)으로 이용하는 전당대회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박 후보는 "국가의 성장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 시대로 바뀌었다"면서 "경제 민주화와 복지, 일자리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박 후보가 5년 전 대선에 도전할 때 내걸었던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우겠다'는 공약과는 크게 다른 내용이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낳은 신(新)빈곤층 출현, 노후 불안, 청년 실업 확산 등으로 사회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돼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이란 70~80년대의 정치 구호가 되살아나는 듯한 우리 사회의 현실이 박 후보에게 정책적 대전환을 압박한 결과다. 박 후보의 정책과 노선의 변화는 박 후보, 새누리당, 전통적 지지층 3자 사이의 정치적 일체감(一體感)을 흔들어 놓을지 모른다는 일부 지적도 따른다.
그러나 박 후보가 풀어야 할 더 어렵고, 대선 승패와 직결되는 숙제는 박 후보 지지층과 비(非)지지층 사이에 절벽처럼 벌어진 간격을 어떻게 건널 것이냐는 점이다. 박 후보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영남권과 50대 이상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 대선 승부의 흐름을 주도하는 수도권·20~40대 유권자들과 박 후보 사이에 파인 깊은 골을 메울 뚜렷한 방책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12월 19일 대선은 이제 4개월도 채 안 남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는 야권 선두 주자인 안철수 교수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더욱이 박 후보는 밋밋하게 진행된 경선 과정에서 새로운 추진력을 확보하지 못한 반면, 이번 주부터 순회 경선을 시작하는 민주당은 안 교수와 후보 단일화라는 큰 흥행을 통해 현상 타파에 필요한 새 동력(動力)을 충전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박 후보의 정치적 성패(成敗)와 새누리당의 운명은 박 후보와 새누리당이 앞으로 4개월 동안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구별해서 바꿀 수 있는 것만이라도 최대한 변화시켜 유권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서느냐에 달렸다.
당장 박 후보는 캠프를 감싸고 있는 낡고 노후(老朽)한 분위기부터 쇄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박 후보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경영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적·정책적 틀이 필요하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묶여 있는 사람들에게서 신사고(新思考)가 나오기는 힘들다. 박 후보는 주변을 둘러보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를 직시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박 후보는 그런 점에서 경선의 흥행 참패를 가져온 지난 몇 달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 후보와 측근들은 선수가 규칙에 따라야지 규칙이 선수에 따라 변하면 안 된다는 원칙만을 붙들고 그런 자기들만의 원칙이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를 내다보지 못했다. 대선을 앞에 둔 새누리당에 새누리당 후보의 대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원칙보다 중요한 원칙은 없다.
박 후보는 어려서부터 정치(政治) 속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박 후보가 목격하고 경험하고 그로부터 정치를 배웠던 1970년대와 오늘 사이엔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었다. 유권자 인구 구성, 권력 문화, 언론 환경 등 모든 것이 변했다. 박 후보는 후보로 지명된 이 순간 비장한 각오로 이런 변화를 수용하고, 그 변화를 넘어설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박 후보가 먼저 변해야 당이 변할 수 있고, 박 후보와 당이 함께 변해야 지금 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