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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부인해도 ‘독자출마설’ 솔솔… 다 이유 있었다

화이트보스 2012. 9. 5. 11:05

안철수 부인해도 ‘독자출마설’ 솔솔… 다 이유 있었다

기사입력 2012-09-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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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대선 3자구도 살펴보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안팎에서 안 원장의 대선 ‘독자출마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안 원장이 우리와 후보단일화를 하지 않고 대선이 3자 대결(안 원장-민주당 후보-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로 가면, 야권 성향표 분열로 박 후보가 일방적으로 유리해진다. 안 원장도 이를 알 것”이라며 독자 출마 가능성을 낮게 보는 분위기다. 1987년 대선 직선제 도입 이후 정치권의 정설처럼 굳어진, ‘비슷한 세력끼리는 반드시 연대해야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는 ‘3자 필패(필승)론’을 다시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5차례의 역대 대선 결과를 보면 이런 주장이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확실한 양자대결 구도(노무현 대 이회창)로 진행된 2002년 대선을 제외한 4차례의 대선에서는 제3후보가 모두 15% 이상을 득표해 의미 있는 성적을 냈다. 그러나 이들 대선이 모두 3자 대결구도로 진행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1위 후보와 3위 후보의 득표율 차가 10%포인트 이내였던 진정한 의미의 3자 대결은 1노2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이 맞붙었던 1987년 대선밖에 없었고, 나머지 대선에서 제3후보는 1, 2위 후보와 큰 격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1992년과 2007년 대선에서는 제3후보가 대선 승패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992년 대선에서는 정주영 후보가, 2007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각각 16.3%, 15.1%를 득표하면서 보수 성향의 표를 분열시켰지만 김영삼, 이명박 후보는 압승을 거뒀다. 1997년 대선 당시에도 여당을 탈당한 이인제 후보가 19.2%를 득표하며 친여·보수 성향의 표를 가져갔지만 김대중(40.3%) 이회창 후보(38.7%)는 박빙 승부를 펼쳤다. 두 후보 간 표차는 겨우 39만 표로 외환위기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등 당시 여권에 불리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이인제 후보의 이탈이 이회창 후보의 결정적인 패인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보면 역대 대선은 결국 1987년 대선을 제외하고는 사실상의 양자대결로 치러진 것이다.

이는 대선이 치열해지고 시간이 갈수록 양자대결화하면서 제3후보는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율은 새누리당 박 후보와 안 원장이 선두 다툼을 벌이고 민주당 후보가 뒤처진 양상이다. 안 원장과의 후보 단일화에 목을 매고 있는 민주당과 달리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를 등에 업고 있는 안 원장으로서는 민주당과 연대했을 때 생기는 정치적 득실을 더욱 냉정하게 따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blog_icon